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기도와 응답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151회 작성일 2020-12-14 13:20
*** 기도와 응답 / 마가복음 11:20-25
 
 마가복음 11:20-25,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중세 때, 어느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하여 수련을 하던 많은 수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수도원을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한 수련자가 수도원을 떠나가는 자기 동료들을 말리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원장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왜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으십니까?” 원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냥꾼이 많은 사냥개를 풀어 토끼를 잡으러 갔다. 그 가운데서 맨 처음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는 마구 짖어대며 그 토끼를 쫓아간다. 그러면 토끼를 보지 못한 다른 사냥개들도 짖어대며 그 사냥개를 따라간다. 그러나 토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던 개들은 힘이 들거나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포기하고 되돌아온다. 그렇지만 토끼를 직접 본 개는 자기 목표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토끼만 보며 쫓아간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수련자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꼭 맞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길은 자신이 체험하지 않고서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달리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는 ‘구성원들이 싫다.’ ‘믿는 사람들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 ‘믿기가 너무 힘 든다.’‘아무런 감동이 없다.’등. 자신의 생활 속에서 만나는 고충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고충 중에는 신앙의 여러 요소 중에서 ‘기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포기하거나 형식만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없는 것만큼 지루하고 힘겨운 노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기도하는 시늉만 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영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29:12-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기도입니다.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는 성도들의 많은 고심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기도와 응답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서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베다니에서 쉬셨으며, 이튿날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에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셨습니다. 시장하시던 차에 혹 무화과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셨지만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장사꾼들과 돈 바꾸어주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정작 기도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고 하시며 채찍으로 짐승들을 몰아내시고 돈 바꾸는 상들을 엎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베다니로 가셨으며 다음 날,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데 제자들이 어제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은 하시지 않고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적의 사건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중요한 의미 중의 하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 마른 것처럼, 목적을 잃은 성전도 저주를 받을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며, 또 다른 의미는 본문말씀의 내용처럼 ‘확신 있는 기도에 대한 분명한 응답’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용서’에 대하여 말씀을 곁들이십니다.
 
※ 응답이 약속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요소는 여러 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기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향에 대하여 말씀을 전했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조건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의 응답이 약속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전적 신뢰’입니다. 본문 24절의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이 전적 신뢰와 응답에 대한 약속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습니까? 전적 신뢰라는 것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 100%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는 야고보 선생도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야고보서 1:5-8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어떻게 불안이나 두려움, 염려, 걱정을 전혀 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오래 전에 한 청년의 간증 속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청년은 시골에서 살았는데, 읍내로 가기 위하여 항상 지나는 길에 쓰러져 가는 자그마한 초가집이 있었습니다. 가끔은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이 일하시는 것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날 때마다 거의 대부분은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든지,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청년도 읍내의 교회에 다니는 터라 그 집에 누가 사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그 날은 시간도 넉넉히 남았고 해서 청년이 그 집을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 날도 여전히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열려져 있는 사립문을 지나서 “계십니까?”라고 인기척을 냈습니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면서 할머니가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지나는 길에 들리는 찬송소리가 좋아서 한 번 방문했노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자그마한 방에는 오래 된 장농 하나와 이부자리가 전부였습니다. 정말 가난한 살림살이였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로는 ‘혼자 사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염려나 걱정이 전혀 없는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청년은 가끔 이야기 소리가 들렸던 것을 생각하면서, “할머니, 손님이 종종오시나 보지요. 가끔 지나다 보면 이야기 소리가 들리던데…”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아하, 내가 주인과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었구먼.”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청년은 “할머니가 집 주인이 아니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주님이 내 주인이시고, 이 집의 주인이시라우.”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주님이 늘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야기도 하고 찬송도 하고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고, 가난하지만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청년은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모셨고, 할머니처럼 주님을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할머니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을 느끼셨습니까? 성경에서도 자주 언급하는 전적 신뢰의 표본이 되는 분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15-18절을 봅시다.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 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이 한나의 마음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는”것이며,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는”것입니다. 그러면 한나의 이 전적 신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어떠했습니까? 사무엘상 1:19-20절입니다.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라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 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한나를 생각하시고 그의 믿음대로 아이를 주셨습니다.
 
전적 신뢰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의 생활에서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라고 생각하여 당연시 하는 행동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 ‘오늘 하늘이 내려앉지는 않을까!’ ‘갑자기 땅이 꺼지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지요. 이런 것에 대하여 우리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생활합니다. 이것은 하늘이나 땅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우리가 잘 사용하는 등기편지나 소포 같은 것도 우체국에 가서 이것을 보내면 상대방이 며칠 내로 받는다는 신뢰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내놓고 ‘안가면 어쩌나’ ‘분실되기라도 하면 어쩌나’하고 굳이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내 기도 등기편지를 보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받으신다.’고 신뢰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 등기편지를 받으시고 적절한 때에 응답을 등기로 보내십니다. 주로 천사들을 통하여 보내시겠지만 직접 보내시든지, 다른 사람을 통하여 보내실 것입니다. 다니엘 9:21-23절입니다.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드릴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이처럼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는 우리가 일상 의심 없이 숨을 쉬듯이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 기도를 방해하는 의심을 어떻게 제거할까요?
 
기도에 응답이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의심을 제거하려면 의심하게 되는 요소를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의심하게 되는 절대적인 요소는 ‘집착(執着)’입니다. 집착이란 ‘어떤 것에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집착은 진정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심각한 요소입니다. 세상 적으로도 남편이 아내에 대하여 도를 넘은 집착을 할 때 ‘의처증’이라고 하며, 반대로 아내가 남편에 집착하게 되면 ‘의부증’이 됩니다. 기도의 집착이라는 것은 ‘기도해야 한다.’ ‘응답을 받아야 한다.’ 는 마음이 지나쳐서 강박관념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몸이 너무나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는데 ‘기도하는 시간이다.’는 생각 때문에 졸면서도 기도하는 상태입니다. 또는 전혀 기도하기에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 - 다툼이 있었거나, 원망하거나 받을 일이 있거나, 죄의 요소를 회개하지 못함 - 임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강행하려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 14: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용납하랴!
 
기도의 집착은 마치 농부가 씨를 뿌려놓고 싹이 빨리 나지 않는다고 씨앗을 파보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의 씨를 뿌렸으면 당연히 싹이 나고 때가 이르면 결실이 된다는 것을 믿고 수확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심을 일으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혹 이렇게 의심이 일어나고 집착이 되면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의심이 되는 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 오셨을 때에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고쳐주시기를 부탁하며 미심쩍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막 9:22)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미심쩍은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막 9:23)고 의심하는 아버지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때 그 아버지가 재빨리 고백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바로, 이 아버지의 고백처럼 주님께 내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고 집착됨을 있는 그대로 아뢰고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의심을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더 집착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응답이 속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계속 꾸준하게 기도하면 어느 순간엔가 응답의 확신을 주십니다.
 
기도는 훈련입니다. ‘내가 몇 번 기도했는데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던데!’라는 생각으로 기도를 포기하면 정말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께 정직하고 진실한 것입니다. 아플 때는 아프다고, 용서가 안 될 때는 용서가 안 된다고, 실망이 될 때는 실망스럽다고, 간절한 소망이 있을 때는 간절하게 원한다고 그렇게 아뢰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가식, 외식은 가증스러운 죄로 더 큰 징벌을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은 기도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어떤 투정까지도 받아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꾸준한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생활 속에 충만하여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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