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쉬운 선택, 어려운 선택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314회 작성일 2019-11-24 21:47
*** 쉬운 선택, 어려운 선택 / 마태복음 20:20-28
 
 마태복음 20:20-28,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들어가는 말
 
본문말씀은 마가복음 10:35-45절과 병행구절인데,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두 아들을 위하여 높은 자리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이 본문으로 여러 번 말씀을 전했는데 전부 마가복음 본문을 사용했었습니다. 마가복음을 사용한 이유는 마가복음의 중심이 10:45절인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말씀인데 섬김의 길에 대한 내용을 더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마태복음 본문을 통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이라는 주제로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를 거의 마치실 무렵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실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인류를 위한 고난과 대속적 죽음인 십자가에서 죽으실 일 때문에 마음이 괴로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마음과는 정 반대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이제 왕이 되실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렜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제자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겠다.’는 욕망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마음으로는 물밑 전쟁이 치열했지만 감히 표현하지를 못하고 있을 때에 세베대의 어머니가 과감하게 예수님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위하여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구했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면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동상이몽(同床異夢)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베대의 어머니와 두 아들뿐만 아니라 제자들 전부가 이런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미 얼마 전에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는 일로 다투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이런 문제가 붉어졌습니다. 이는 그만큼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예로 들어 가르치셨습니다. 혹시 우리는 이런 마음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자기 버림을 통한 영원한 영광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세상적인 성공과 부귀영화를 원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과연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소망
 
우리가 만일 그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면 우리의 마음은 그 제자들과는 달랐을까요? 만일 처음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알았다면 그래도 예수님을 선택하고 따랐겠습니까?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 지구촌의 모든 기독교인들을 다 모아놓고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길이다.’고 했을 때에 그래도 주님을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요즘 들어 이러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내가 소망하는 것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소망하는 것에 비하여 지금의 삶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소망한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낮은 자리, 섬김의 자리, 종의 자리를 선택해야 하고, 자기 욕망과 생각을 버리고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보다 쉬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 고민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아직 마음깊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간증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2년 전에 이 간증을 들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조금 긴 내용이지만 생각하면서 들어보십시오.
 
‘브라이언’이라는 열일곱 살짜리 학생이 경험한 것을 간증한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이 학생은 사고를 당하여 죽음 직전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천국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께서 학생에게 보여주신 어떤 방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꿈과 현실의 중간 정도에서, 어떤 방 안에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쪽 벽면에 작은 카드들이 꽂혀 있는 서류 정리함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각 파일에는 행위의 제목들이 적혀 있었고, 안에는 제가 세상에서 행했던 모든 행위들이 다 적혀 있었습니다. 그 일들이 커든지 작든지 하나하나 세밀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 이라는 파일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배반한 친구들’ 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목들은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읽은 책들’, ‘평안함, 위안을 주었을 때’, ‘내가 웃었던 농담들’, 어떤 것들은 너무나도 정확한 나머지 웃음까지 나왔습니다. ‘내가 내 형제들에게 고함질렀던 것’ 그 밖의 것들은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화가 났을 때 했던 것들’, ‘내가 나의 부모님들 앞에서 중얼거리며 속삭인 말들’, 그 안에 씌어 있던 내용물들 때문에 놀라움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살아온 인생 때문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때의 그 순간이 기록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메스꺼웠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마음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아무도 이 카드들을 봐서는 않되! 아무도 이 방을 보아서도 않되! 나는 이 방을 없애버려야겠어!’ 저는 극도로 흥분하여 파일들을 잡아 당겼습니다. 크기가 얼마큼 컸던 간에 저는 이 카드들을 다 꺼내어 불태워버려야 했습니다. 제가 파일들을 잡아 당겨서 바닥에 내려치려 했지만, 저는 단 하나의 카드도 없애지 못했습니다. ‘내가 본 T.V show’ 라고 씌어있는 파일을 꺼내보았습니다. 저는 이 파일들이 그것에 해당하는 자료들을 담기 위해 계속해서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카드들은 단단한 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2-3(약2-3미터) 야드 후에는 저는 파일의 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닫았습니다. 창피했습니다. 제가 본 T.V show 들의 질 때문이라기보다는 제가 T.V를 본 시간이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란 제목을 잡아당기는 손잡이가 다른 것들의 손잡이 보다 더욱 빛이 났습니다. 그리고 거의 사용하지 않은 새 손잡이였습니다. 저는 그 손잡이를 잡아당겼습니다. 그리고 3 인치(약 8cm)도 안 되는 카드 박스가 제 손안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카드의 수를 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깊이 운 까닭에 아파왔습니다. 그 아픔은 제 배에서 부터 시작해서 저를 꿰뚫어 지나갔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저는 창피함에 울었습니다(이와 거의 같은 간증이 계속 있었음).
 
이 학생의 결말은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를 입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학생은 세상의 것을 비우지 못하고 세상의 것으로 가득한 채로 주님 앞에 섰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면 학생처럼 그러한 사실에 직면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기록한 방에는 어떤 내용들의 파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사실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 슬픔도 눈물도, 죽음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기쁨의 나라를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죄와 부끄러운 일들은 잊어버리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13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분명히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외에 다른 책들 즉 행위를 기록한 책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을 위하여 좋은 기록만을 남겨야 함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우리의 소망을 위하여 좋은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치고 좋은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고민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분명히 예수님을 따르는 좋은 쪽을 선택했습니다. 본문 앞장인 19:27-30절을 봅시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큰 보상이 있는 좋은 쪽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탁월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부분이 30절에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더 나은 보상과 그렇지 못한 상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을 따르면서 쉬운 길을 선택했느냐? 어려운 길을 선택했느냐?’라는 상황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요구했던 것, 예수님의 제자들 전부가 마음에 품었던 욕망인 ‘이 세상에서의 높은 자리, 좀 더 편하고 좋은 삶’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고 제시하신 길은 ‘자기 버림과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과 낮은 자리의 섬기는 삶’인 어려운 길입니다. 쉬운 길이든지 어려운 길이든지 어느 길을 선택하든지 그 결과는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게 되고, 그 보응도 받게 됩니다.
 
목사인 저는 오래 전부터 이 사실에 대하여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때로는 너무 깊이 생각한 나머지 강박증이 생길 지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쉬운 길, 편안한 길, 안일한 삶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잠시 쉬는 것이나 한가한 것이 죄인 것처럼 여겨졌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보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잠도 설칠 지경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것인지 아십니까? 의무적인 섬김은 기쁨도 평안도 없이 오로지 일을 위해 사는 것처럼 전투적인 삶이 됩니다. 이러한 저를 주님께서는 이런 시골 골짜기로 보내셨습니다. 거의 20여년을 하루 24시간 잠 잘 시간도 제대로 없이 바쁘게 살아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시골에 교회개척을 시작하니 갑자기 멍해지면서 ‘이렇게 해도 되나?’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지나온 걸음들이 돌아봐지면서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주님의 뜻보다는 내 열정으로 일했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세상을 조금 넓게 보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여유를 회복하면서 주님으로 인한 기쁨과 평안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낮은 자리의 섬김의 삶도 즐겁게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로마서 10:2-3절(“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과 마태복음 7:21-23절(“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고, 지금도 이 말씀들은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도록 내 생각보다는 주님의 뜻에 마음을 기울이는 훈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버림과 십자가의 길이라고 해서 무작정 힘들고 어려운 길이 아니며, 어려운 선택도 아닙니다. 억지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하면 기쁨과 평안이 아니라 부담과 마음의 고통이 더 심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구원하시고 함꼐 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주님의 뜻을 기쁘게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마음을 예레미야 29:1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시며, 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길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기쁨으로 주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자원하는 마음의 순종이 매일을 기적의 삶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비록 때로는 힘들고 어려움이 주어질지라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을 믿고 주님의 길을 선택하셔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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