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조급한 마음이 일어날 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539회 작성일 2019-11-14 21:40
*** 조급한 마음이 일어날 때 / 로마서 8:18-25
 
 로마서 8:18-25,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 들어가는 말
 
이제 2019년도 몇 주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흔히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연말연시를 기다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의 기쁨을 기다립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이어서 뭐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날들이지만 괜스레 마음이 들뜨고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다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의 기다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조급해졌습니다. 마치 뒤에서 누가 좇아오기라도 하는 듯 사람들의 마음이 바쁩니다.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진행되어야 하고 자기 뜻대로 이루어져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런데 조급한 마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 5:2절에서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특히 조급한 마음은 자신의 뜻을 세우는 것이어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며칠 전 ‘따뜻한 하루 편지’라는 인터넷 편지 사이트에 올라온 정겨운 글 한 편입니다.
오래전 어느 시골길 허름한 버스정류장에는 한 번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그런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 앞에 군인이 손을 흔들고 서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도 아니지만 버스 기사는 흔쾌히 버스를 세워 군인을 태웠고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질 대로 달궈져 찜통 같은 버스가 다시 출발해야 하는데 버스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더위에 슬슬 짜증이 난 승객들은 버스 기사에게 ‘출발합시다.’며 재촉했지만 버스 기사는 “저기…” 하며 눈으로 창밖을 가리켰습니다. 모두가 버스 기사의 눈을 따라 시선을 옮겼는데, 어떤 여인이 아기를 업은 채로 버스를 향해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뛰어오는데 버스가 출발하면 얼마나 허망할까!’ 하는 생각에 승객들은 여인을 기다려 주기로 했습니다. 뜨거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그 시절 버스에서 땀을 흘리는 승객들은 손부채를 흔들면서 아무 불평 없이 여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러길 몇 분 후, 여인이 도착했는데 여인은 버스를 타지 않고 버스 창문만 물끄러미 계속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기사가 ‘빨리 타라.’고 재촉했지만, 여인은 버스를 타지 않고 창문을 통해 먼저 탄 군인에게 말했습니다. “가족 걱정하지 말고 몸성히 잘 다녀오세요.” 아쉬움과 사랑스러움이 듬뿍 담긴 여인의 말에 군인도 답했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힘들게 여기까지 왜 왔나. 걱정하지 말고 내 건강히 잘 다녀올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도 짜증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유쾌한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정겨운 시골 도로에서의 풍경이 그려지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래전 개구쟁이 시절에 시골의 신작로를 먼지를 날리며 오는 버스를 따라 달렸던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이런 정겨움이 사라지고 없지만 우리 인생이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의 조급한 마음을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자유와 의무 그리고 참 소망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중에서 본문말씀은 참 소망의 내용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본문말씀을 이해하려면 7장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7장에는 사도바울의 영적인 깊은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이 추구하는 것과 육신의 욕구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현실에서 갈등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과 자유를 얻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세상의 삶과 육신적인 욕망 때문에 죄에 빠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19절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탄식합니다. 바울은 그 고민 속에서 한 가지 이치를 깨닫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것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로마서 7:21-24절을 현대어성경으로 보겠습니다. “나 스스로는 늘 올바른 일을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버리는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 하면서도, 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에 분란을 일으켜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봅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열심히 주님을 따르고 싶은데, 생활 속에서는 그만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 버리게 된다.’는 탄식입니다.
 
이는 바울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들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는 고민일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의 현실이 이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세상이 흐르는 대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며 순종하려고 애를 씁니까? 사도 바울은 그 해답을 7장 마지막 부분에서 제시합니다. 25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이 제시하는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 해답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8:1-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참된 자유를 말하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영의 삶과 육신의 욕망을 따르는 육신의 삶에 대하여 세밀한 해석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우리가 영의 생명을 위하여 살아야 할 이유와 영의 삶을 사는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을 제시’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소망해야 하는 것과 그 소망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 우리가 소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리 믿음이 출중한 사람이라도 육신의 삶이 있기 때문에 세상적으로도 소망하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즉 신앙의 길을 소망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생활에서는 육신의 소망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갈등하게 되고 영적인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영적인 경험도 많고 신앙도 특출한 사도 바울도 7:18-19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비록 이렇게 사람의 연약함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 바로 앞쪽의 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소망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우리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자유의 삶입니다. 본문 19절에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부활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21절에서도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부활의 삶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살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본문 23절 말씀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만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부활의 삶은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아무리 답답하고 조급하다고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는 결코 이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에서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하십니다. 이 기다림은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완전한 속량 즉 영과 육신의 온전한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19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바라고 손해 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겸손하게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하며, 세상의 즐거움도 명예도 다 버리고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활의 삶의 소망에 이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황당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부활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이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는 조급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이 조급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생각과 내 뜻이 더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조급한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불신앙을 부릅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입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하여 진을 치고 사무엘 선지자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후에 전쟁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일주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울의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금방이라도 쳐들어올 듯이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약속한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선지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사울 왕은 조급한 마음에 자신이 번제를 집전했습니다.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입니다. 막 번제를 마쳤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했습니다. 사무엘상 13:11-14절을 봅시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인간적인 면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사울은 자신의 조급함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불순종이 되어 결국 왕위를 빼앗기는 불행을 당했습니다.
 
여러분도 종종 화를 내지요? 분하거나 화가 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음이 조급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뜻대로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조급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할 위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어떻게 기다립니까? 본문 바로 다음 구절인 26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아뢰야 할지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내 뜻대로 잘 되지 않는 일들을 하나님께 기도로 물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비록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아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험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여 오히려 내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인내하며 기다려서 우리가 소망하는 것에 반드시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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