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삶의 무게가 힘이 들 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627회 작성일 2019-11-07 13:05
*** 삶의 무게가 힘이 들 때 / 시편 18:1-6
 
 시편 18:1-6, “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 들어가는 말
 
내가 처음 들었을 때 복음송인 줄 착각했던 가요가 있습니다. 가수 ‘노사연’씨가 부른 ‘바램’이라는 곡입니다. 노사연 씨는 남편과 함께 서울 온누리 교회의 교인으로써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합니다. 그 노래 가사가 이렇습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내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 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아마도 이 가사가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은 동질감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남이 잘 알지 못하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관찰 카메라 24시간’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궁금한 대상이나 직업군을 선정하여 24시간 8명의 카메라맨들이 밀착 취재하는 내용입니다. 그날의 관찰 대상은 ‘119 구조대’였습니다. 구조대의 훈련장면 부터 출동하는 과정을 따라 다니면서 인터뷰하며 내용을 소상하게 전했습니다. 도시의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것, 등산객들의 구조를 담당하는 ‘산악구조대’, 한강을 감시하면서 구조를 담당하는 ‘한강 수난구조대’ 등. 그날 관찰을 하는 하루 동안에만 수십 건의 신고와 출동 장면이 있었는데, 험난한 산악에서 추락한 등산객을 구조하여 ‘항공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하는 숨 가쁜 구조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한강에서는 세 건의 투신자살 사건이 발행하여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자살하려고 했다가 구조된 청년은 20대 남성이었는데 그를 본 구조대원은 ‘청년의 표정이 너무도 괴로워 보인다.’고 했습니다. 카메라맨이 그 과정을 보면서 구조대원에게 “이렇게 자살로 출동하는 일이 많습니까?”라고 물었는데, 구조대원은 “일 년에 1100여 건 출동하는데 그 중에서 70%가 자살 사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조대원이 하는 말이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목숨을 쉽게 여기는지 안타깝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회는 발전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자신의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택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깊은 좌절감으로 삶을 방치하며 폐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올린 노래입니다. 사무엘하 22장에 이 노래의 전편이 다 실려 있습니다. 본 시편에서는 성전의 노래로 노래 인도자에게 주어진 내용입니다. 본 시편을 설명한 내용이 사무엘하 2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다윗이 자신을 ‘여호와의 종’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다는 사실보다 여호와의 종이라는 것을 더 큰 영예로 여겼음을 알게 합니다. 시편 116:16절에서도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라고 고백합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대적에게 쫓겨 다니며, 사울 왕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당했던 큰 위기와 고통을 표현하고, 자신의 힘든 삶의 길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첫 구절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내용이 본 시편 전체의 요지(要旨)이며 자신의 노래가 의도하는 내용입니다. 이 다윗의 고백적인 노래를 통하여 우리도 우리에게 닥친 환난으로 삶의 무게가 힘이 들 때에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게 합니다.
 
※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까?
 
사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어서 스스로 ‘힘 든다.’라고 느끼는 정도가 다릅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자신이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 힘들어 죽겠다.” 면서 너무나 힘들어 하는 삶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뭐 그런 일로 힘들어 해.”라며 그리 힘들어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삶이 무엇이고, 어느 정도로 힘든 것인지.’를 특정하기는 힘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 정말 힘들겠다.’라고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이 부도가 나서 파산 했다든지, 심각한 질병이나 사고로 건강을 잃었다든지 이런 공감할 수 있는 힘들게 하는 삶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사회적인 불안과 경제적인 어려움, 안보의 위기감들이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세상 사람들에 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삶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좀 더 힘 든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의 경우를 본다면 밖으로는 블레셋을 비롯한 다윗과 전쟁을 치렀던 나라들이 다윗을 찾고 있고, 안으로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는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웃 나라들과 광야를 전전하면서 생명을 위해 도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이 삶이 얼마나 힘들었든지 자신의 처지를 본문 4-5절에서 이렇게 짧은 말로 표현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이 표현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절박하고 위협적인 상황에 빠져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삶이 힘들었던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사도 바울’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당한 힘들었던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말씀을 봅시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참으로 엄청난 고난의 삶입니다. 이처럼 앞에서의 다윗이나 사도 바울이나, 구약의 의인으로 소개된 노아, 다니엘, 욥,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이들의 삶도 만만찮게 힘든 삶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성경의 의인들이나 바울과는 비견할 수 없지만 노사연 씨의 노랫말처럼 일상적인 삶의 무게가 힘들게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의로운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은 잘 만 사는데 왜 더 선하고 의롭게 살려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삶의 무게가 무겁겠습니까?
 
베드로전서 4:1-3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여러분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생활이 넉넉하고 삶이 편하면 사람은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됩니다. 솔직히 돈 많고, 시간 많고, 편하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좀 더 즐기고 싶고, 해외에도 가고 싶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 더 좋은 자동차 가지려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삶을 요약하면 ‘육신을 따르는 삶’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삶이 편하면 세상 즐거움을 찾아 죄를 범하게 되고 삶이 힘들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무게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 우리의 삶이 힘들게 될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에 그 해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3절을 봅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그리고 6절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다윗은 자신의 삶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수도 없이 많이 들어서 모르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도들이 삶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가 많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정을 진실하게 아뢰지도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지도 않습니다. 잘 아는 구절이지만 다시 봅시다. 예레미야 29:11-13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33: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리고 빌립보서 4:6-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모든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면 그 약속대로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믿음으로 잘 응답하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해 보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3: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에베소서 5:10-11절입니다. “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는 다윗이나 성경의 위인들이 삶이 힘들고 어렵고 위기 때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로 아뢰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큰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힘들 때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소연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께 하소연할 수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때때로 ‘삶의 무게가 힘 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때로 이렇게 삶의 무게가 힘이 들게 하시는 것은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시는 신호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하시는 사랑의 배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괴로워하는 고질병을 고쳐주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 12:9)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여러분이 약해서 삶이 힘이 듭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힘이 듭니까? 주님께서 이 사정을 다 아십니다. 앞서 보았던 베드로전서 4:1-2절을 꼭 기억하십시오(“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 주님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수고와 섬김의 일들은 낱낱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때때로 삶의 무게가 힘이 들 때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응답과 평강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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