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영적경계목록7 - 비난과 정죄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158회 작성일 2019-10-23 16:41
*** 영적경계목록7 - 비난과 정죄 / 로마서 14:1-12
 
 로마서 14:1-12,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 들어가는 말
 
이 시간의 본문말씀은 몇 차례 설교본문으로 사용했던 구절입니다. 물론 다루었던 주제는 달랐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어서 자주 다루게 되는 구절입니다. 이 시간에는 ‘비난과 정죄’라는 주제로 본문말씀을 풀어가려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죄가 들어온 이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분쟁(다툼)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두 사람만 모이면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같으면 다툴 일이 없겠지요. 이렇게 다른 생각과 다른 관점을 가지다보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기가 쉽습니다. 만일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게 되면 곧 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서 서로 다르다고 비판하고 비난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이 말씀에서 비난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비난이나 정죄는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초대 로마교회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시 로마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주의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 편으로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관습에 대한 견해 차이가 생겼습니다. 특히 ‘음식’과 ‘날’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기독교 사상이 새롭게 전파되고 확산되는 초기였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영적인 자유를 선언하는 복음을 옛 율법적인 관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대단히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옛 율법적 습관을 따르는 ‘보수파’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신앙의 자유로 율법에서 벗어나려는 ‘진보파’로 갈라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로마교회도 이와 같은 갈등으로 서로를 비판하며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성도들 사이를 분열시키고 있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이렇게 로마교회를 갈등하게 하는 두 가지 쟁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음식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절기를 지키는 문제였습니다. 음식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구약의 율법이 가르치는 정결법(레 11장)에 따라서 ‘금지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우상의 제물로 바쳐졌던 것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하여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은 음식에 대하여 정하고 부정한 것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25-26절입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으면서 먹지 않는 사람을 ‘믿음이 약하다.’고 업신여겼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아무거나 먹는 사람들을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라고 정죄했습니다.
 
절기에 관한 문제는 본문 5절의 말씀인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는 말씀처럼 유대인들이 거룩한 날로 지키던 절기들입니다. 즉 유월절(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등의 3대 절기나 월삭, 속죄일, 금식일 등의 특별한 절기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명시한 이러한 특별한 날들을 신성하게 여겨서 그 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신앙을 판단하며 비난했습니다. 반면에 새로운 시대를 여신 예수님에 의하여 주어진 구원의 기쁨을 감사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날들이 차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구약 절기의 본래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절기 자체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업신여겼습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말미암아 로마교회는 믿음의 본질이 아니라 믿음의 형식과 이해 방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의 교회들도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할지라도 교회의 관습이나 개인적인 신앙의 관습의 차이로 말미암는 헤아림, 비판, 비난, 정죄하는 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 비난과 정죄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지요. 남이 잘되고 잘하는 것을 보고 좋다고 박수치는 것이 아니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기심은 교만과 함께 인간의 가장 원색적이고 보편적인 죄입니다.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는 행동은 비인격적이고 야비한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여배우 한 사람이 악성 댓글과 사람들의 비난에 못 이겨 극단적인 길을 택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고 자신의 관점과 다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비난부터 합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그러합니다.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 간에 맹목적인 비난과 정죄가 난무합니다. 이념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노력조차 없이 비난합니다. 본문 1-3절 상반절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고기를 먹는 사람과 채소만 먹는 사람이 서로를 비난할 이유가 있습니까? 채소만 먹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당신은 율법을 어기고 금지한 고기를 먹고,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었으니 하나님께 벌을 받을 것이다.’고 정죄합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말합니다. ‘당신들은 자유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지 않고 율법을 지키니 믿음이 없다.’고 비난합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금식일, 속죄일 그리고 무교절, 오순절, 초막절 같은 날들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무슨 말이냐? 어느 날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날은 동일하다.’고 반박했습니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의 사람들이 ‘달걀의 뾰족한 쪽으로 먹어야 한다. 넓은 쪽부터 먹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전쟁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 말씀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낍니까? 중요한 핵심도 아닌 지엽적(枝葉的)인 문제로 쓸데없이 싸운다는 느낌이 들지요? 그렇습니다. 비난과 정죄의 원인과 문제점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난과 정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 하반절부터 4절을 봅시다.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내 생각이나 내 관점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받으신 사람을 내가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소유된 사람이듯이 다른 사람도 역시 하나님께 소유된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높고 낮음이나 귀하고 천함을 떠나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끼리는 서로 헤아리고 비난하고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세상의 법으로 판결하고 정죄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육체적인 한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로마서 13:1절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즉 세상의 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한적인 권세입니다. 심지어는 사탄의 권세도 하나님의 권위아래에서 제한적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 12:12하반절에서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복종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며 도전하는 죄가 됩니다.
 
※ 비난과 정죄의 습관에서 어떻게 벗어납니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루에도 몇 번 혹은 수없이 많이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런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37절입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그리고 야고보서 5:1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이 말씀들은 맹세에 대한 말씀이지만 맹세뿐만 아니라 비판이나 비난이나 정죄에도 동일하게 해당합니다. 본문 10-12절에서 표현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이런 비난과 정죄를 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은 자기중심, 자기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판단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한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정죄 받게 되는 이 무서운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것과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본문 7-8절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서로를 비난할 수 없는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12절을 봅시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리고 23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가 더 선하고 누가 더 악하다고 하는 것은 ‘도토리 키 재기’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천국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천사가 큰 책을 자신의 앞에 내려놓습니다. “이것이 무슨 책입니까?”라고 물으니 천사는 “그 책 가운데는 당신이 세상에 있을 때 행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첫 장을 여니까 무엇인가 작은 글자로 가득 씌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내용입니까?”라고 물으니 천사는 “당신이 세상에 살 때 행동으로 지은 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장을 열었는데 그 곳에는 첫 장보다 더 작은 글씨로 가득 씌어져 있었습니다. 역시 “이것은 무슨 내용입니까?”라고 묻자 천사는 “이것은 당신이 세상에 살 때 말로 지은 죄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말로 지은 죄는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 더 많았습니다. 세 번째 장을 여니 두 번째 장보다 더 작은 글씨로 더 많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천사는 “이것은 당신이 마음속에서 생각으로 지은 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는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을 또 열어보니 이제는 아예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고 그냥 새까맣습니다. 그래서 “아니, 이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찬사는 “이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사람이 없습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할 권한도 없고 자격도 없습니다. 예전의 어린이 찬송가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남의 말 내가 하면 그 말이 돌아오고 남의 흉 내가 보면 나도 흉을 잡힌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고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단다. 예수님이 오늘도 내 귀에 속삭이신다. 대접을 받으려면 남을 대접하여라.” 이 노래 가사처럼 비난하고 정죄하던 마음자리에 이해와 축복을 둡시다. 이처럼 비난과 정죄 대신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축복하면 그 복이 내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마태복음 10:12-13절입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이 말씀처럼 비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하고 험하지만 나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행하여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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