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경계목록4 - 세상적 즐거움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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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0-04 15:01
*** 영적경계목록4 - 세상적 즐거움 / 요한일서 2:15-17, 누가복음 8:14
요한일서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누가복음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 들어가는 말
오늘은 먼저 자신의 영적인 감각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를 영적(신앙적)으로 볼 때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즉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무엇입니까? 아마도 생각이나 관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저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반대되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요소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말씀으로 본다면 16절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말합니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요소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대표적인 것을 마태복음 6: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 ‘재물’이라고 하셨지만, 이는 세상적인 것의 대표적인 요소를 꼽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이다.’고 하는 말에서도 표현이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정말 어떤 선물보다 돈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에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모든 세상적인 요소를 ‘세상 즐거움’이라고 표현하여 영적경계목록 네 번째로 ‘세상 즐거움’을 꼽았습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기 위하여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가 기록된 주후 90년경 초대교회의 상황은 이단 사상들이 온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 편지를 주변 모든 교회에 보냈습니다. 특히 이 시간의 본문말씀은 모든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전하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세상적인 요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에는 성도들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은 세상적인 요소를 세 부류로 나누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세 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씨 뿌리는 비유’중에서 세 번째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에 대한 해석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뿌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상태를 네 가지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길 가, 바위 위, 가시떨기, 옥토 이 네 가지 밭 중에서 하나님의 뜻에 올바른 밭은 단 한 가지, 옥토뿐입니다. 그런데 ‘가시떨기’가 의미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이미 ‘삶의 염려와 돈에 대한 집착, 육신적 즐거움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자랄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세상 즐거움에 마음이 빼앗기면 결국 영의 생명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 나를 미혹하게 하는 세상 즐거움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성공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사탄입니다. 사탄과 마귀 무리는 요한계시록 12:12절에서의 말씀처럼 ‘자신들의 때가 얼만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크게 화가 나서’사람들을 미혹하려 합니다. 이에 대하여 마가복음 13:22절에서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이 말씀들처럼 마귀의 무리들은 이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집요하게 달려들어 넘어뜨리려고 유혹합니다. 바로 마귀의 무리가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리려고 유혹하는 요소가 ‘세상 즐거움’입니다. 마귀는 세상 즐거움 즉 우리 육신의 온갖 즐거움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인을 속이고 영이 약화되도록 이끌어갑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이며 열정적인 복음주의자인 ‘로랜드 힐(Rowland Hill AM, 1744–1833)’목사에 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로랜드 목사가 거리를 지나가다가 신기한 광경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여러 마리의 돼지가 목자를 따라가는 양처럼 어떤 사람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로랜드 목사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그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그 마을의 도살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돼지들은 그 사람을 따라서 아무런 반항도 없이 도살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로랜드 목사는 돼지를 인도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돼지들이 전혀 반항하지도 않고 이곳으로 들어가도록 했습니까?”
그러자 돼지를 인도한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완두콩이 든 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계속 길에다 완두콩을 흘려주었지요. 돼지들이 완두콩을 좋아한답니다.”
로랜드 목사는 무릎을 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거요.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입니다. 사탄은 쾌락의 콩, 정욕의 콩, 욕망의 콩, 우매의 콩, 죄의 콩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콩알을 계속 우리 앞에 뿌리고 갑니다. 우리가 그 콩을 주워 먹으며 따라가다 보면 우리 영혼의 도살장인 지옥으로 가게 되지요. 그 유혹의 콩으로 말미암아 많은 무리들이 계속 따라가는 거지요.”
예수님까지 유혹했던 마귀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끌기 위해 온갖 세상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지금 온 세계가 동성애라는 것 때문에 들끓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소통 수단을 장악하고는 사람들을 인터넷 세상으로 몰아넣어버렸습니다. 세상의 과학은 사람들에게 편리한 유대용 컴퓨터를 제공했습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비롯한 각종 휴대용 컴퓨터들에서 솟아져 나오는 온갖 세상의 즐거움들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24시간 제공되는 영화, 드라마, 게임, 원하는 모든 것을 찾으며 인터넷 바다를 서핑(surfing) 합니다. 심지어 두 살배기 아이도 컴퓨터를 조작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들을 찾아냅니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휴대용 컴퓨터를 조작하느라 한 결 같이 고개를 숙이고 다닙니다. 뿐만 아니라, 음란을 부추기는 온갖 시설들이 도시마다 즐비합니다. 가끔 총회 일로 수도권지역을 갈 때면 거리에서 번쩍이는 간판과 광고판들에 이해하지도 못하는 가게 이름들이 수두룩합니다. 각 대도시들마다 모텔 촌이 있는데 정말 휘황찬란합니다. 마치 나방들을 유혹하는 불빛처럼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까지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본문에서 ‘삶의 염려와 돈과 세상 즐거움에 영적인 기운이 막힌다.’고 하십니다.
이것뿐만 아닙니다. 사람들은 좀 더 편하고 안락하고 쾌락적인 삶을 위하여 줄기차게 돈에 집착합니다. 많은 범죄가 ‘유흥비 마련’이 원인이며, 돈이나 치정에 얽힌 사건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만 보아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집, 좀 더 편안한 노후, 인생의 즐거움을 위하여 오늘도 세상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16절 이하에서 ‘부자 비유’를 통하여 깨우치십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내가 아무리 많이 쌓아두고 누리고자 할지라도 누릴 수 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전도서 6:2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이처럼 세상 즐거움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육신을 위하여 사는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즐거움에 마음 빼앗기면 영의 생명을 잃게 됩니다.
※ 어떻게 세상 즐거움에서 벗어납니까?
미국의 영화배우 ‘조지 번즈(George Burns)’가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옷을 주지 않은 이유는 옷을 주면 인간은 ‘주머니를 달아 달라.’고 할 것이고, 주머니를 달아 주면 ‘거기에 돈을 채워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옷을 주지 않았다.”
웃기려고 한 말이지만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비꼬는 말로 들립니다. 예전에 신학교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회자는 이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이성의 유혹을 조심하고, 장년 시절에는 물질의 욕심을 버리고, 노년에는 명예에 대한 욕망을 버리면 성공적인 목회자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세상적인 욕망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육체는 흙으로 지어진 나약한 것이어서 세상의 것들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육신이 요구한다고 해서 그렇게 따라가면 안 되기 때문에 반드시 세상 즐거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로마서 8: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본문 17절에서도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말씀처럼 세상의 것들은 다 지나가는 헛된 것이기 때문에 집착해서는 안 되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은 맞서 싸우면 안 됩니다. ‘세상과 당당히 맞서 싸워서 이기겠다.’고 하는 마음을 좋지만, 그렇게 해서 이긴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권세와는 싸워야 하지만 유혹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한 플라톤(Plato, BC 428/427 ~ BC 348/347)의 제자 ‘토로킬러스’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집은 바닷가에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바다에서 항해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갑자기 풍랑을 만나서 배가 다 깨어져 죽을 뻔하고 겨우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집에 바닷가로 향하는 창문을 모조리 막았습니다. 친구가 “이 좋은 바다의 경치를 볼 수 있는 창문들을 왜 이렇게 다 막았느냐?”고 물었습니다. 토로킬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난번에 배를 타고 나갔다가 죽을 뻔하고 살아왔을 때, 다시는 배를 타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네. 그런데 이 창문을 그냥 두었다가는 따뜻한 봄날이 되어 이 창문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다시 바다로 나갈 생각이 들까봐 아예 바다가 보이는 창문을 막은 것이라네.”
골로새서 2:20-21절입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말씀은 세상적인 교훈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모든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자신만의 약점이 있고 이 약점이 마귀가 노리는 유혹의 창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약점이 세상적 즐거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까? 이 약점에 어떻게 대처합니까?
신라의 김유신이 젊었을 때, 한동안 친구들과 기방 출입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그 기방에 있는 ‘천관녀’라는 기녀를 만나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유신의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하루는 유신을 불러 놓고 훈계를 했습니다. “나는 이미 늙어서 밤낮으로 오직 네가 성장하여 가문을 빛내기만 바라고 있는데, 너는 기생집에서 사랑 놀음이나 하고 있느냐?” 울면서 질책하는 어머니의 훈계에 유신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어머니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그 며칠 후, 유신은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 위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말울음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말이 자신이 자주 드나들던 천관녀의 집 앞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말이 주인의 기척이 없자 자주 다니던 천관녀 집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천관녀는 유신이 오랜만에 오자 맨발로 뛰쳐 나와 유신을 맞이했는데, 유신은 천관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허리에 차고 있던 칼로 자신의 애마를 죽인 후에 한마디 말도 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김유신의 이러한 결단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게 했다고 후손들이 말합니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유혹을 이기는 단호한 결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시상 즐거움을 이기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어렵지만 우리를 더러운 데로 인도하는 친구가 있으면 끊어버리고, 시험에 빠질 수 있는 길은 미리 피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이 미혹 많은 세상에서 영의 생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