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영적경계목록3 - 고집과 교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625회 작성일 2019-09-27 15:21
*** 영적경계목록3 - 고집과 교만 / 로마서 2:1-8
 
 로마서 2:1-8,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 들어가는 말
 
시작부터 어려운 말을 사용해서 죄송하지만 잘 들어보십시오. 중국 전통 산문인 ‘상서(尙書)’ ‘주관(周官)’의 공씨 전에 나오는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귀불여교기이교자래(貴不與驕期而驕自來) 부불여치기이치자래(富不與侈期而侈自來)”
‘권세(權勢)는 교만과 약속하지 않지만 교만이 스스로 찾아오고, 부유는 사치와 약속하지 않지만 사치가 스스로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교만이 사람에게 어떻게 생기는지를 보여줍니다. ‘권세를 가지게 되면 교만을 생각하지 않아도 교만이 스스로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권세란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고집(固執) 혹은 아집(我執)은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워 버티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만과 고집은 친척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교만으로 오해하기 쉬운 것 중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자부심’은 ‘주어진 여건이나 재능에 따른 자신감’을 말하며, ‘교만’은 ‘주어진 여건에 관계없이 크게 보이고자 자신을 드러내며 건방진 자세’를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자부심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으로써 모든 삶에 자신감과 기쁨과 감사함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교만과 아집은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여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인간의 성품으로 ‘교만’을 꼽으셨습니다. 시편 138:6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라고 하셨고, 잠언 8:13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21:24절에서는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사야 2:12절에서는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고 하시고 야고보서 4:6절에서는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외에도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적경계목록 세 번째로 ‘고집과 교만’을 꼽았습니다.
 
※ 하나님께서 왜 교만과 고집을 미워하시겠습니까?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는 ‘사람이 악을 행하면 회한(悔恨)에 빠지고, 선을 행하면 교만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선과 악, 도덕적인 교만과 회한(悔恨, 뉘우치고 한탄함)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영적인 선한 삶과 육신적인 죄의 삶 사이에서 회한에 빠지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로마서 7:18-25절입니다.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처럼 세상 사람이든지 그리스도인이든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뜻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에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2-3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이 고집이고 교만입니다. 본문 1절에서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사사기 7:2-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이 말씀은 가나안에 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누누이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로 징벌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읽은 이 말씀은 5대 사사인 기드온의 때에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미디안 족속을 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특공대를 선출하게 하시는 내용입니다. 처음에 미디안과의 전쟁을 위하여 군사들을 모았을 때 3만 2천명이 나왔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군사가 너무 많으니 줄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300명 만 남기고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군사를 줄여라.’고 하신 이유는 ‘우리 군사의 힘으로 이겼다.’고 하는 ‘교만’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흔히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교만이 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거나, 헌금을 많이 하거나, 봉사를 많이 하는 등 교회에 열심이 있는 성도들에게 이런 교만과 고집이 나타납니다. 앞의 주관의 글에서처럼, 무엇인가 잘 한다고 생각하며 교만이 저절로 찾아오게 됩니다. ‘자신의 일을 비방하거나 방해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하나님의 적이며 마귀의 짓이라.’ 혹은 ‘내가 하는 일은 전부가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집과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 어떻게 교만과 고집을 벗을 수 있겠습니까?
 
세탁소에 갓 들어온 신입 옷걸이에게 헌 옷걸이가 말했습니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자 신입 옷걸이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습니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 거죠?”
헌 옷걸이가 말합니다.
“잠깐 동안 입혀진 옷이 자기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야!”
 
이 비유적인 이야기에서 주는 교훈은 ‘교만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신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고집과 교만을 벗을 수 있는 길은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과 자신이 있는 정확한 자리를 안다면 결코 교만하지도 고집스럽지도 않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이 세상의 것에 마음이 빼앗겨서 고집스럽게 변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화를 내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염려하고, 좌절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고 또 믿는다면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뜻을 강조하는 고집스러움과 교만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6-7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잠언 16: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시며 19:21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역사하심을 믿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 뜻의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뢰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지켜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나를 알고 나의 자리를 알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면 어리석은 고집과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의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겨울철에 영국을 여행하던 여행자가 해안지방을 지나는 중에 바닷가에서 무엇인가를 모아서 수레에 싣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사람은 죽은 갈매기들을 모아서 손수레에 싣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여행자가 그 인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갈매기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습니까?” 그러자 인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보고 먹이를 던져주게 됩니다. 갈매기들은 과자. 사탕 등 사람들이 주는 여러 가지를 받아먹게 되지요. 실은 그런 음식은 갈매기들에게는 좋은 음식이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음식들이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갈매기들이 그렇게 과자나 음식을 받아먹다 보니 입맛이 바뀌어 물고기나 자연의 먹이를 찾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좋은 먹이가 바다 속에 그렇게 많지만. 인간의 먹이만 기다리다가 결국 이처럼 굶어 죽는답니다.”
 
가까운 해운대 백사장에 가면 지금도 여행객들이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거나 손가락으로 들고 있으면 갈매기들이 가져가는 것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길들여지면 자신이 갈매기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립니다. 정체성을 잃은 갈매기는 사람이 주는 음식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 결국 그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도 사탄이 미혹하는 대로 세상의 것들에 맛을 들이고 집착하면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것에 빠져버립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정체성을 잃고 사탄의 미혹에 빠지는 이유는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했던 것처럼 사람의 의식주, 명예와 권세, 부귀영화로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맛을 들인 사람은 영적인 것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지 않습니다. 이 일을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5:36-39절에서 새 옥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를 비유하여 말씀하시면서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옛 것 즉 세상의 것에 맛을 들이게 되면 새 것 즉 영적인 것을 원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신의 고집과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즉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본문 4-5절을 봅시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하여 변론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나를 살려주시고 자녀로 삼으신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많은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는데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내 뜻과 내 생각대로 행동한다면 자신의 자리를 잊어버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는 인간의 고집이며 하나님을 불신하는 교만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 즉 하나님의 진노의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집과 교만에 빠져 죽음의 길로 간다.’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9:20-21절입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도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으로 보응하시고,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교만한 사람에게는 진노로 보응하신다.’고 하십니다.
 
고집과 교만은 자신의 뜻을 세우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여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꺾으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싸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여 영생의 삶을 이루어가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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