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의 행복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518회 작성일 2019-09-04 19:52
***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의 행복 / 시편 91:1-16
 
 시편 91:1-16,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에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에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하시도다.
 
** 들어가는 말
 
오늘은 대복교회가 설립된 지 만 25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신 지나온 날들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다시 생각해 보려합니다. 성경의 대 주제는 ‘약속’ 즉 ‘하나님의 언약(言約)’입니다. 그래서 구약(舊約, old testament), 신약(新約, new testament)라고 부릅니다. 내용도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의 골자는 평안과 행복입니다. 즉 죄로 말미암는 파멸과 고난과 죽음으로부터의 구원과 평안과 영원한 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 약속을 지키고 순종하면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제시하신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하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13-14절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시면서 계시록의 일곱 번째 복을 말씀하십니다. 그 복은 ‘에덴동산과 그 동산의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는 권세’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약속이며 행복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평안과 행복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안과 행복을 추구합니다. 물론 방법과 추구하는 방향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평안과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 평안과 행복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마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도록 환경과 필요와 재능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14절 이하에서 “또 어떤 사람이 타국으로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라고 하시면서 각 사람이 자신의 능력대로 삶을 가꾸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환경과 필요와 재능들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지금까지 가꾸셨습니까? 아니면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주어지는 대로 사셨습니까?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사람 나이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의 얼굴은 자신의 삶의 내용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이 된 링컨에게 하루는 한 친구가 어떤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링컨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거절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진실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부모가 준 얼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지만 그 후 40년 동안 자신이 살아간 삶의 내용에 따라 얼굴이 새로 만들어진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Shakespeare, William)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얼굴을 주셨는데 사람들이 악의 얼굴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링컨 대통령의 말과 같이 ‘자신이 만든 얼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스스로의 얼굴에 만족하십니까? 이 말은 잘 생겼다거나 못 생겼다거나 하는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에서 풍겨나는 인품을 말합니다. 이 인품이 가장 훌륭하게 되는 비결을 담은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에 의한 보호와 안전을 노래하는 본 시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라는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본 시의 내용이나 필체를 볼 때에 어떤 학자들은 저자가 ‘모세’라고도 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다윗’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본 시의 저자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시는 누가 지었느냐 라는 것보다 그 내용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첫 시작하는 내용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라는 평범한 것 같지만 대단히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존자”라는 칭호에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위해 권능을 베푸시는 자, 감히 대적들이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은밀한 곳”이라는 말은 ‘휘장’ ‘덮개’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피난처 혹은 보호받는 곳’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거주하며”라는 말도 본래의 의미는 ‘…에 앉아 있는 자’, 즉 ‘요동하지 않고 안식을 취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짧은 문장 속에는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을 나타냄과 동시에 ‘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자신의 안전을 의탁하는 사람’이라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줍니다.
 
이 첫 절에서 암시한 대로 다음 구절부터 ‘권능의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는 온갖 질병과 사건과 사고, 재앙과 재난들에서 보호하시는 내용’들을 열거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2절과 9절에서 말씀하는 대로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보호하심을 받을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 시의 표제대로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권능의 보호를 받아 평안함과 행복을 보증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보증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14-1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본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설교 제목처럼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이 누릴 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입니까?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답은 이미 앞에서 말씀한 대로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key word)는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안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찾아야 할 중요한 내용은 본문말씀처럼 ‘어떻게 하나님을 의뢰하여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가?’라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에서 의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안전하게 지냅니다. 이들의 특징은 ‘참된 신앙’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내적인 신앙을 잘 알고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은밀하게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 대하여 “그가 나를 사랑한즉” “그가 내 이름을 안즉”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라고 하시며, 이들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 안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시면서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포도나무와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안에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을 먹어도 그 사람이 생각나고,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그 사람이 생각나고 보고 싶다면 그 사람은 내 마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늘 생각나고 함께 있고 싶어지는 분이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주님의 향취가 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2:14-15절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향기가 무엇을 뜻합니까?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자신이 고백한 내용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처럼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되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듯한 모습이 보이겠지요.
 
예전에도 했던 예화입니다.
어떤 성도가 환상 중에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성도는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잠시 후에 안쪽에서 대문으로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거기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것이 아닙니까. 성도는 “예, 저는 ○○교회 ○○○집사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고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성도는 다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성도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 했을까?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그러다가 문득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얼른 세 번째 다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역시 발자국 소리가 나고, “거기 누구십니까?”라고 물어왔습니다. 성도는 이번에는 “주님, 당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육중한 대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왜 천국의 문이 ‘주님, 당신입니다.’라고 할 때 열렸겠습니까?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에는 주님과 함께 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행복을 여는 열쇠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 때에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대복교회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는 진정한 주님의 지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일들, 세상의 환경들 때문에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은 오히려 죽음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기우(杞憂)에 불과합니다. [옛날 기(杞)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을 하여 먹지도 자지도 않아서 어떤 사람이 깨우쳐 주었습니다. “하늘은 기로 가득 차 있어서 무너질 염려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 나라의 사람이 이치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걱정을 ‘기우(杞憂, 기 나라 사람의 걱정)’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의 일들로 인한 염려와 근심, 두려움이 기우(杞憂)와 같습니다. 이제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 안에 사는 사람에게 주시는 진정한 평안과 행복(본문 14-16절)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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