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위한 고진감래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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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8-05 14:40
*** 영광을 위한 고진감래 / 히 12:1-8
히브리서 12:1-8,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들어가는 말
세상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여러 요인 중에 ‘신용(信用)’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평가하는 신용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금융 거래를 하면 신용을 평가하여 신용에 따라 대출 조건과 금액이 다르게 적용합니다. 이처럼 어떤 것에 대하여 약속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게 됩니다. 이 약속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어필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이름 하여 구약(舊約), 신약(新約)이라고 부릅니다. 옛 약속과 새 약속이지요. 이 약속은 온 피조물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사람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에는 정말 많은 것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에는 단순하게 생명을 살려주신다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구원은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에서의 하나님의 보증이 따라오게 됩니다. 본문 7절에서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자녀로 대우하시고 약속하시고 보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믿는다면 세상에서의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사업의 실패로 고통을 당한 성도를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두 개의 보석을 보여 주면서 물었습니다. “두 개가 어떻게 보입니까?” “똑같아 보이는데요.”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러자 한 개를 내밀면서 “아, 이것이 색깔이 선명하고 빛이 아름답네요.”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얼른 보기에는 크기나 색깔이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하나는 색이 좀 흐릿하고 하나는 색이 맑고 빛이 아름답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흐릿해 보이는 보석은 8번 깎았고, 이 아름다운 보석은 80번을 깎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깎으시는 과정이지요. 많이 깎인 신앙인은 아름다운 빛을 발한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말에 “No cross No Crow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다.’는 말인데,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는 의미이지요. 고린도후서 4:17절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여러 고난과 환난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 왜 그리스도인에게 환난이 허락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살려고 힘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형통함과 성공이 아닌 환난이나 어려움이 주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서 당하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과 그 하수인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을 봅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리고 예레미야 29: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괜한 고난을 주지 않으십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소행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함께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려움을 당하고 손해를 보고 미움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징계로 주어지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본문 5-6절의 인용구절을 봅시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잠언 3:11-12절을 인용한 구절인데,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환난과 어려움은 하나님의 꾸지람입니다. 이 꾸지람의 특징은 망하거나 죽거나 절망하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서도록 하는 사랑의 매입니다. 우리가 내 자녀들이 잘못될 때는 나무라고 매도 때리지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을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내 자식이 죽어라고 때리지도 않습니다. 더 좋은 길로 이끌기 위한 방편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서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고난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1:2-4절을 봅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12절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이 고난은 시험 혹은 시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련의 test입니다. 자격시험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어떤 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시험입니다.
미국의 콜로라도에는 미군에 납품하는 컴퓨터 프린터를 생산하는 회사가 있다고 합니다. 이 프린터는 일반인이 사용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성능적인 면이 아니라 환경적응 면에서 다릅니다. 시험 과정은 이렇습니다. 프린터의 회로 판들을 고정시키고, 모든 부속품들을 금속으로 된 몸체 안에 넣은 후 전쟁터에서도 작동이 되도록 철저한 시험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 회사에서 출고되는 모든 컴퓨터 프린터들은 먼저 냉동실에 넣어서 일정 시간을 지내고, 다음에는 섭씨 54도의 환경에서 견디는지를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5분 동안 아주 심하게 흔들리게 합니다. 이 과정을 “내구성 시험”이라고 하는데,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름 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환경에서 살려면 그 나라에 합당한지를 가려내는 시험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영적인 정제과정’입니다.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을 통하여 시련과 시험과 고난을 겪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이 됩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세움 받은 아브라함도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 미래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의지하여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했습니다. 과학적인 원리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폐경 상황에서도 잉태에 대한 약속을 믿었습니다. 마지막 시련은 100세에 극적으로 얻은 외아들을 다시 인신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2:12절입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최종 시험에 합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야곱도, 요셉도, 마리아도, 바울도,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환난이나 고난, 어려움과 시련들이 주어지는 이유는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을 이겨낸 사람에게 야고보서 1:12절의 말씀의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상급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 그러면 이 영광의 삶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11:12절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 구절을 쉽게 풀이해서 다시 읽겠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용기 있는 자들 또는 강한 집념을 지닌 강한 자들이 그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 그러므로 혹 소심하거나 쉽게 낙담하는 자는 그 나라를 얻을 수 없다.” 이 말씀에서 특히 “빼앗느니라.”에 해당하는 단어는 ‘마치 맹수나 강력한 군사들처럼 무엇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사력(死力)을 다하여 움켜잡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원한 생명,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는 것이 누워서 떡먹기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다 채우며, 자기 생각과 뜻대로 살고서도 차지할 수 있는 그런 값싼 나라가 아닙니다. 젖 먹던 힘을 다하고, 죽을힘을 다하여 쟁취해야만 하는 고귀하고 값비싼 나라입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에서는 예수님을 본보기로 세우셨습니다. 본문 1-3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과 멸시와 부끄러움의 십자가를 개의치 않으신 이유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위하여 고진감래(苦盡甘來)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름다운 본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과 영생을 누리는 곳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 주고라도 얻어야 하는 고귀한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가르치시면서 ‘땅에 묻힌 보배’ ‘값진 진주장사’ 등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땅에 묻힌 보배와 값진 진주를 얻으려고 농부와 진주장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투자했습니다. 마태복음 13:44-46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앞서 읽은 마태복음 11:12절에서처럼 천국은 적극적으로 침노하여 빼앗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중년의 부인이 30년 만에 수영장에 왔습니다. 이 부인은 소녀 시절에 수영을 배웠지만 아직도 제대로 물에 뜨지를 못했습니다. 부인은 소녀 시절에 수영을 배운 이후 30 년 동안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늘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물에 뜨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인을 수영 코치가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과 싸우지 말고 물이 당신을 받쳐 줄 것이라고 믿고 물에 몸을 맡기세요.”
그러면서 수영코치는 그녀가 ‘가라앉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품지 않도록 손으로 배를 받쳐주었습니다. 이 부인은 안심하고 몸에서 힘을 빼고 편안하게 물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러자 정말 몸이 가라앉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나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그곳, 그리고 예비 된 영광은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얻어야 할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잠시 머물 이 세상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위대한 약속에 참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련과 시험과 고난을 믿음으로 견디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고난이나 시련을 자신의 힘으로 헤쳐가려하면 안 됩니다. 어려운 삶을 자기 힘으로 헤쳐가려고 애쓰면 쓸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이 세상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스가랴 4:6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머물게 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고난의 언덕을 넘어서면 기쁨과 영광의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현명하게 주님 말씀을 의지하여 이 어려운 때를 끝까지 이겨내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보상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