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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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2-12 15:04
***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빌립보서 2:5-14
빌립보서 2:5-14,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들어가는 말
윤회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골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여인숙을 찾았습니다. 윤회의 인상이 험상궂었는지 아니면 무일푼으로 보였는지, 여인숙 주인은 투숙을 거부했습니다. 윤회는 난감한 마음으로 여인숙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인숙 주인의 아이가 큰 진주를 가지고 나와 놀다가 마당에 떨어뜨리는 것을 마침 지나가던 거위가 꿀꺽 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모르는 아이는 아버지에게 ‘진주를 잃어버렸다.’고 했고 아버지는 잃어버린 진주를 찾아 마당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지경이 되자 마당에 앉아 있었던 윤회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묶어둔 뒤 아침이 되면 관가에 알리려고 했습니다. 만약 보통 사람이라면 거위 배를 갈라 진실을 확인하려고 했겠지만 윤회는 주인에게 “저 거위를 내 곁에 묶어두시오.”라고만 했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거위는 배설을 했고, 그 배설물에서 진주가 나왔습니다. 여인숙 주인은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왜 어제 진작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그러자 윤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어제 말했다면 당장 저 거위의 배를 갈랐을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억울하지만 참고 기다린 것입니다.”
윤회는 억울한 누명을 썼지만 하찮은 거위의 목숨을 위해 참았던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지 말아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밟고서라도 올라가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민족은 심성이 착해서 이런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세계적으로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면서 그리스도인들마저 이기적인 신앙으로 변해가는 것을 봅니다. 비록 이렇게 시대를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시며,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위하여 저도 매일 간구하지만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어렵다고 포기해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도록 끊임없이 힘써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을 포함하는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유럽의 첫 전도지로써 사도 바울에게는 의미가 깊은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도 마찬가지로 바울의 전도사역에 많은 애정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한 목적 중의 하나도 두 번째 전도 여행 때, 바울에게 돈을 보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특히 박해 중에서도 용감하게 살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안에서 살도록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빌립보에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악의를 품은 대적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18-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지라.” 이러한 환경에서 사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똑같이 대항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겸손하신 삶을 예로 들면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보이신 본을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일로든지 원망을 듣거나 시비하는 일이 없도록 사랑의 삶을 나타내라고 하십니다.
※ 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까?
먼저 말씀 몇 곳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4-5절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그리고 12-14절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 말씀들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주십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생활을 뜻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도 알고 그 말씀도 알지만 말씀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랑은 알지만 그 사랑 안에 거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산해진미가 쌓여 있는 식탁을 보면서 ‘아, 이 음식들을 먹으면 배부르겠다.’라고 하면서도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옛 말에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도구가 많아도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15-27절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연달아 하시면서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의 무용성(無用性)’에 대하여 강조하십니다. 첫 번째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행하는 사람의 집은 반석 위에 짓고, 행하지 않는 사람의 집은 모래 위의 짓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같은 의미의 비유를 세 번씩이나 거듭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철저하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6:3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5:19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그리고 30절에서는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에 오직 성부하나님의 뜻만을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내 계명을 지켜라.”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에서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삶입니다.
※ 그러면 우리가 품어야 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다른 이들을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성부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셨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곧 성령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4: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면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시고 순종하고 따를 수 있게 하십니다. 이렇게 매 삶의 순간마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대로 따라갈 때 원망도 시비도 없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 중동부의 한 두메산골에 ‘나딘 스테어’ 라는 할머니가 살았습니다. 이분은 85세가 되던 어느 날, 짧은 글 하나를 썼습니다. 시인도 작가도 아닌 평범한 할머니가 쓴 그 글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1993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 소개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 ‘람 다스’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글로서 할머니의 글을 인용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나딘 할머니의 글입니다.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산다면 그때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지난번 살았던 인생보다 더 우둔하게 살리라. 되도록 심각해지지 않고, 좀 더 즐거운 기회들을 잡으리라. 여행도 더 자주 다니고 노을빛 석양도 더 오래 바라보리라. 산에도 더 자주 다니고 강에서 수영도 해봐야지…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고, 먹고 싶은 것은 참지 않고 먹으리라. 그리고 이루어지지도 않은 과거와 미래의 상상 속 고통은 가능한 피하리라.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산다면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순간을 맞이하면서 살아가리라. 아! 나는 지금까지 많은 순간들을 맞이했지만… 다시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그때는 의미 있고 중요하며, 깨어 있는 순간들 외에, 의미 없는 순간은 갖지 않으리라. 그리고 아주 간단한 복장을 하고 자주 여행길에 오르리라.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 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 자주 가고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나딘 할머니의 글이 신앙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나딘 할머니가 85년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인생을 온갖 염려로 아웅다웅 심각하게 살지 말고, 매 삶의 순간을 여유롭고 뜻 깊게 사는 것’입니다. 특히 제가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이 부분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산다면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순간을 맞이하면서 살아가리라. 아! 나는 지금까지 많은 순간들을 맞이했지만… 다시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그때는 의미 있고 중요하며, 깨어 있는 순간들 외에, 의미 없는 순간은 갖지 않으리라.” 이 글과 잘 매치가 되는 말씀을 봅시다. 히브리서 3:12-14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신 뜻은 ‘한 순간 지나가는 세상의 헛된 일과 육신의 삶에 매이지 말고,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가장 의미 있는 참 생명의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인생의 참 가치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각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세상과 함께 없어질 것들입니다.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것들이 그리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가치를 지닌 영원한 생명의 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이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행하려고 힘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성부하나님께 순종하셨던 예수님의 겸손과 우리에게 명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화평한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인“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정말 가까운 듯 하는 이 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화평한 삶을 이루어 주님의 관심 가득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