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한 그리스도인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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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2-04 14:01
*** 신실하신 하나님 신시한 그리스도인 / 누가복음 12:41-48
누가복음 12:41-48,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 들어가는 말
세계 지휘자 대회가 있었습니다. 결승에 오른 몇 팀이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지휘자들에게 주어진 악보가 틀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 지휘자가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대회를 주관하는 대회장에게 ‘대회장님, 악보가 틀렸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 대회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틀린 악보를 그냥 넘어가는지, 아니면 자신의 판단을 믿고 말하는지를 시험했습니다. 대부분은 당신처럼 지적하기 보다는 그냥 넘어가더군요.”
결국 이 지휘자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는 교훈은 ‘진실함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못 본 채 눈을 감으면 약간의 이익을 얻을 수는 있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의 덕목 중에서도 으뜸은 ‘진실함’을 꼽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는 진실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다운 사람을 찾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실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진실한 사람을 찾는 것은 세상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5: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진실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다. 이 시간의 본문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신실한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주제를 ‘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느 시대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혼란이 가중되는 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신실한 사람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라고 부릅니다. 이 비유는 본문말씀 앞쪽의 35절부터 본문말씀으로 이어지는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있는 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자 베드로가 그 비유를 적용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하여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로 대답하셨습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는 물음으로 비유가 시작됩니다. 이 비유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가르친 모든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것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청지기라는 직분은 ‘주인이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맡겨주신 일과 사람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맡은 모든 직분자들’을 청지기라고 부릅니다. 청지기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합니다. 에베소서 4:11-12절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처럼 맡겨진 직분을 통하여 항상 깨어서 충성되게 일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롭고 진실하고 성실함을 인정받는 사람이 충성된 사람이며 신실한 사람입니다. 본문 42-43절에서 이런 청지기를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반대로 직분에 대하여 충성되지 못하면 본문 45-46절에서 ‘주인이 이를 때에 엄하게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사람이 받는 벌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분명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실한 삶을 나타내야 할 때입니다.
※ 우리가 신실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대답하면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7:9절입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하여 한 마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이 믿을 수 있는 진실하신 참 신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우상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신실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에서 ‘온전하라’고 하신 것은 문맥적으로‘온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사랑은 서로간의 신실함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함이 없는 신앙은 결코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 은총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믿으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본문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가 있고, ‘육신의 생활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어리석은 부자처럼 되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깨어 있는 종들 비유’와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가 연달아 등장합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연관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의 전체적인 내용은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세상적인 부귀영화에 마음 두지 말고, 그것 때문에 염려하지도 말고, 영으로 깨어 있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맡겨진 일을 지혜롭고 성실하게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아리송한 생각이 들어서 예수님께 ‘깨어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답 대신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사용하시는 사람이 진실한 청지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청지기는 바로 이 말씀을 듣는 너희들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지금 우리가 베드로처럼 예수님께 묻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동일하게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에게 향하신 뜻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믿으실 수 있도록 사는 것’입니다.
※ 그러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것입니까?
신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표현해서 ‘믿을만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은 말씀이 증언합니다. 창세기 15: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하셨을 때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는 이미 과학적으로도 자식을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즉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의 삶의 자리에서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사장은 직원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직하게 물건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새로 들여온 물건이 진열된 것을 보고 직원들에게 ‘이 물건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직원들은 상품을 세밀하게 살펴보고는
“색상이 눈에 띄긴 하지만 이렇다 할 특색은 없습니다.”
“바느질도 허술해 보입니다.”
등. 상품에 대해 솔직한 평을 내놓았습니다. 그때, 한 중년 남성이 들어와서 그 신상품을 관심 있게 살펴봤습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직원 한 명이 손님에게 다가가 과장되게 상품을 선전했고 손님은 그 상품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장은 물건을 팔려는 점원을 말리더니 그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 지금 선택하신 물건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좋은 상품이 들어왔을 때 꼭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원들은 물론 그 손님도 놀라 사장을 의아하게 쳐다보았지만 이내 사장의 정직한 성품에 감탄하였습니다. 이 사장은 1948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상점이자 미국 최초의 백화점인 ‘Dry Goods Store The Marble Palace ’의 설립자인 ‘알렉산더 터니 스튜어트(Alexander Turney Stewart)’회장입니다. 스튜어드는 돈보다 고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며 사업에 성공한 모범적인 사업가였습니다.
앞서 서론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세상 사람들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배우자를 고를 때, 직원을 채용할 때, 친구를 사귈 때, 일을 할 때 등. 그 사람이 진실하고 정직한지를 봅니다. 뿐만 아니라 돈을 빌릴 때에도 금융권에서는 그 사람의 신용평가를 최우선으로 봅니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저금리로 더 많은 돈을 대출해줍니다. 반면에 신용도가 낮으면 대출도 힘들뿐더러, 더 적은 돈에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말하는 신용도는 믿을 수 있는 신실함이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S. M. 세르반테스는 ‘정직함은 가장 좋은 정책이다(Honest is the best pollcy).’라고 했고,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Alexander Pope는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가장 고귀한 작품이다(An honest man is the noblest work of God.).고 했습니다. 이만큼 세상에서도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하여 신뢰는 주는 사람입니다.
본문말씀에서 이야기하는 청지기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봅시다. ‘청지기’를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οικονομος) 라고 하는데, ‘가정 관리자’라는 뜻입니다. 이 관리자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재산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노예들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고, 갈라디아서 3:24-25절에서는 ‘파이다고고스(가정교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에서 “초등교사”라고 번역한 단어가 ‘파이다고고스’입니다. 이전의 번역에서는 ‘몽학선생’이라고 했는데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초등교사’라고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이 가정교사는 주인의 아들을 성인이 되기까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옛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이런 청지기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청지기가 진실하고 지혜롭고 책임성이 있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집을 관리하는 관리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관리인들이 주인의 뜻을 잘 헤아려서 신실하게 일하면 주인의 모든 것을 다 맡기겠다고 하십니다. 반면에 엉뚱한데 관심을 두고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면 많이 맞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잘 헤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육신의 삶에 바빠서 사는데 관심을 빼앗겨 하나님의 뜻에 관심조차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로마서 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내가 내일을 하느라 하나님의 뜻에 소홀하면 하나님께서도 나에 대하여 무관심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신실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관계된 모든 일을 신실하심으로 관리해주십니다. 이 예는 성경에 수많은 실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하나님께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믿으실 수 있는 삶을 이루어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관심과 능력으로 채움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