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는 마음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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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1-20 14:23
*** 자족하는 마음 / 디모데전서 6:3-10
디모데전서 6:3-10,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들어가는 말
어느 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10일만 살다가 버리는 집이 누에고치 이고, 6개월만 살다가 버리는 집이 제비들의 집이며, 1년을 살다가 버리는 집이 까치들의 집입니다. 누에는 집을 지을 때 창자에서 실을 뽑고, 제비는 진흙에 자기 침을 뱉어 집을 만들며, 까치는 나뭇가지를 물어 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지칠 줄 모릅니다.
날짐승과 곤충들은 이렇게 혼신을 다해 집을 지었어도 시절이 바뀌면 미련 없이 집을 버리고 떠납니다. 사람만이 끝까지 움켜쥐고 있다가 끝내는 빈손으로 떠나게 되지요. 자연을 완전히 소유하는 생명체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든 생물체는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자연에서 모든 것을 잠시 빌려 쓰다가 떠나가는 나그네입니다.
본문말씀 7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하시며, 욥기 1:21절에서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은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들처럼 우리 모든 인생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생을 마칠 때에 가지고 갈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서두에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진실한 신앙을 지켜가기 위하여 꼭 필요한 성품이 ‘자족하는 마음’ 즉 ‘자신을 비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왜 자신을 비우는 것이 중요한지, 어떻게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무엇이며 왜 중요합니까?
지금 세상은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 어느 시대보다 물질과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소유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는 세상적인 것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선 이 말씀에서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짚어둡시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비운다고 말할 때는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의미가 강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7-9상반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세상적인 소유욕을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소유욕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자신의 것을 챙기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생존본능입니다. 식욕(食慾), 성욕(性慾), 소유욕(所有慾)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존본능이기 때문에 다스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사람들이 신앙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당부합니다. 본문 3-5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는 것은 ‘신앙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도구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친구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출석하던 성도가 어느 주일부턴가 출석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성도는 간판과 현수막, 썬팅 등을 하는 광고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게로 심방을 갔었는데 그 성도는 ‘주변의 큰 교회에서 교회 입간판을 주문하면서 자신의 교회로 오면 교인들의 많은 사업체와 교회의 광고물을 많이 주문할 것’이라고 하는 바람에 그 교회로 출석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임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 청년이 새로 출석을 했었습니다. 그 청년을 면담하면서 참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청년의 가정은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고, 가족이 5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족 5명이 모두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실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정치계에 입문하기 위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친척까지 여러 교회에 등록을 하고 표를 얻기 위하여 홍보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갖지 못하는 지위와 명예를 교회에서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존직을 선택할 때면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신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본문 3-5절에서 말씀하시는 이런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이처럼 재물에 대한 사람들의 소유욕망이 끝이 없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5절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소유욕은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만큼 세상의 재물에 대한 소유욕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진실한 신앙을 지켜가기 위하여 꼭 필요한 성품이 ‘자족하는 마음’ 즉 ‘자신을 비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자신을 비우는 것이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대표적인 것으로 재물을 꼽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육신적 부유함과 평안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하여 부자 비유를 통하여도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16-21절입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세상의 물질적인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물질적인 부자와 영적인 부자를 구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 중에서 첫 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하셨는데,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는 자족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족하는 마음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 어떻게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까?
인터넷에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글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케냐 나이로비에 '존 다우라' 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아버지의 심한 학대와 매질 때문에 집을 뛰쳐나와 거지가 되었습니다. 소년은 다른 거지아이들처럼 길거리에서 구걸을 했는데, 매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지나가는 차가 신호를 받고 있거나 잠시 정차되어 있는 차에 손을 쑥 내밀어 ‘도와 달라.’고 애걸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거지 소년들을 사람들은 도둑들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어느 날, '존 다우라'는 여느 날처럼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다가갔습니다. 그렇지만 한 조각의 빵을 사기 위해 존 다우는 그날도 차안으로 손을 쑥 내밀었습니다. 그 차에는 어떤 여성이 타고 있었는데, 그녀는 휴대용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녀의 모습에 멈칫하며 놀랐습니다. 그리고 물었다. “왜 이런 걸 끼고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게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어 살아갈 수 없단다. 사실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만 한 돈이 없단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여자는 ‘글래디스 카만데(Gladys Kamande)’ 라는 여성이었는데, 남편의 심한 구타로 폐를 다쳤습니다. 소년은 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여자에게 “제가 잠깐 기도를 해 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여자의 손을 잡고 가슴 깊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이분의 병을 낫게 해 주세요.…” 기도를 하는 동안에도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구걸해서 주머니 속 깊이 꼭꼭 넣어둔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전 재산인 돈을 그 여자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계속 지켜보던 한 시민에 의해 사진과 함께 사연이 sns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 여자를 동정한 사람들이 보낸 수술비가 무려 8천만 불(900억 정도)이 훨씬 넘게 모아졌습니다. 이 여자는 인도에서 무사히 수술을 잘 받아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이 여자는 곧 바로 이 소년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소년은 그동안 인터넷을 통하여 잘 알려지게 되었고, ‘니시’라는 아주 마음씨 좋은 부유한 재벌 여자 분에 의하여 양자로 입양되었습니다.
유리는 서로를 볼 수 있게 하지만 유리에 은박을 입히면 자신만 보이게 됩니다. 바로 이 은박처럼 자신의 소유욕에 눈이 멀게 되면 다른 사람이 보이지를 않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9-10절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몰락하게 만드는 세상적인 물질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본문 6-8절에서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자족할 수 있는 이유로 세상의 모든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비우면 주변이 보이게 되고, 비우면 그 빈자리를 주님께서 채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을 원하는 부자 청년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9:2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하시니” 이와는 반대로 앞에서 보았던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놓고 누리려는 사람은 자신이 모아둔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결국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자리까지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재물이나 소유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 나라에 보물을 쌓도록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19-21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세상에 재물을 쌓아둔다는 것은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자족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욕심을 낸다고 해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마음을 비우고 현실에 만족한다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살아갈지가 염려가 되십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염려입니다. 내 마음을 비우고 주님으로 만족하면 그 빈자리를 주님께서 채우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주님께 맡겨 보십시오.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잠언 3:6절에서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시며, 16: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을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6:30-34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믿지 않거나 몰라서 세상의 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삶에 적용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 말씀을 믿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하면 매일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올 해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생활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을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