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푯대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429회 작성일 2020-01-14 17:27
*** 푯대 / 빌립보서 3:10-16
 
 빌립보서 3:10-16,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 들어가는 말
 
빌립보서를 본문으로 한 설교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한 본문말씀이 이 시간의 본문인 빌립보서 3:10-16절입니다. 대부분이 ‘목표’ 혹은 ‘오직 예수’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푯대’라는 주제로 말씀을 적용해 보려 합니다. 푯대라는 것은 ‘하나의 기준점’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보면 가끔씩 측량사들이 지적측량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측량사들은 삼각대 위에 설치된 레벨기로 저만큼 앞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잡고 있는 어떤 막대기를 봅니다. 측량사가 레벨기로 보고 있는 막대기를 스타프(staff)라고 하는데, 레벨(level)을 측정하는 기준 막대자입니다. 측량사는 스타프를 기준으로 하여 주변 땅의 레벨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측량사에게는 스타프가 푯대입니다. 등산가가 오르고자 하는 산 정상도 역시 등산가에게 있어서는 푯대입니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여 이르고자 하는 대학이나 어떤 직장도 역시 학생에게는 푯대가 됩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집이 푯대이며, 운동선수에게는 금메달이나 챔피언 벨트가 푯대가 됩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에서 많은 푯대를 세우고 그 푯대를 향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푯대를 잘 못 정하거나, 푯대에 이르는 정신력과 노력이 따르지 않아서 푯대에 이르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도 들려드렸던 예화입니다.
 
‘스테판 더글라스’가 쓴 ‘그리스도인의 자기관리’라는 책입니다.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시간계획과 자기관리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서인데, 이 책의 서론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오늘 남쪽에 있는 밭을 갈러간다.’고 하며 트랙터를 몰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는 트랙터에 기름을 넣기 위하여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주유소에 가는 도중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차를 들판에 세워둔 채 그는 기름을 사기 위하여 주유소로 향했습니다. 주유소로 가는 길에 그는 돼지에게 아침밥을 주지 않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옥수수 창고로 가서 돼지 사료로 쓰이는 먹이 자루를 찾았습니다. 그 자루들을 보자 그는 저장고에 있는 감자에 싹이 트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감자 구덩이를 향하여 가는 길에 장작더미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아내가 ‘장작을 가져달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몇 개의 나무토막을 줍고 있는데 병든 닭이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저 닭이 왜 병들었을까?’ 하고 그는 장작을 내려놓고 그 병든 닭을 쫓아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해는 서산에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 들판에 세워둔 트랙터에 기름을 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자인 스테판은 ‘목적이 있지만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인생’을 부각시켜서 ‘자신의 시간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세상의 기류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있어서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푯대로 정하기는 했지만 당면하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세상을 기웃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흔들리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 자신의 상황을 예로 들어서 권면합니다. 본문 13-14절을 현대어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아직 나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이루는 데 내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목적지까지 달려서 상을 타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상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 일을 바탕으로 하여 내리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상을 주시려고 나를 하늘로 부르고 계십니다.” 바울 자신은 ‘오직 예수님께서 부르신 그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빌립보 교회에게 오직 주님을 푯대로 하는 삶을 권면한 것입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빌립보는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를 거쳐서 유럽으로 들어간 첫 성이었으며,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두 번째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의 초청을 받고 유럽에 건너가 최초로 세운 교회였습니다(행 16:11-40). 그 곳에서 얼마의 제자를 얻었지만 박해로 감옥에 갇혔고, 찬송 중에 기적이 일어나서 감옥을 나오기도 했습니다(행 16:16-26). 그 와중에 간수의 온 집안에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는 등 바울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전도 여행 때에도 들렀고, 다른 교회에서는 물질적 원조를 받지 않았지만 빌립보 교회가 보낸 선물은 기꺼이 받았습니다(빌 4:15-18).
 
이처럼 사도 바울은 친밀한 교제를 하던 빌립보 교회에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의 내용 중에는 ‘기뻐하다.’는 단어가 무려 16회나 사용되었고,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내용이 21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내용은 바울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전부였으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3-14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세웠던 푯대, 이것이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반듯이 있어야 할 푯대입니다.
 
※ 우리가 세워야 하고 나아가야 할 푯대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아직 자신이 이루지 못한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분명한 푯대가 있다는 말인데 그 푯대가 무엇입니까? 바울의 푯대는 본문 10-11절에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의 푯대는 바로 ‘부활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좀 더 쉽게 번역한 현대어성경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푯대에 이르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감수하겠다.’고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의 이 푯대는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마지막까지 순교할 때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웠던 이 푯대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인 푯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의 방향은 이 푯대를 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골로새교회에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골로새서 1:22-23절입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복음의 소망이며 푯대라고 합니다. 이어서 ‘복음의 소망 즉 푯대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그 푯대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혼란하고 유혹 많은 세상에서 살더라도 복음의 소망의 푯대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에 중요한 예를 들어서 보여줍니다. 디모데전서 1:18-20절입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이 푯대를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푯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2:3-6절입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도를 의논하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는 돈에 눈이 멀어서 세상에서 그 어느 것으로도 살 수 없는 복음의 소망인 푯대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살던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복음의 소망의 푯대를 세우기도 합니다.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는 독일계의 프랑스 의사이며, 사상가, 신학자, 음악가였습니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슈바이처의 삶이었지만 신학과 생활에서 오는 고민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인생의 푯대가 분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집 앞에 있는 우편물을 보다가 이웃집에 가야 할 잡지가 잘못 배달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잡지는 아프리카를 소개하는 잡지였는데, 이웃집에 잡지를 돌려주기 위해 가면서 잡지를 뒤적여 보다가 아프리카에서 고통당하는 원주민을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됩니다. 그 글을 읽던 슈바이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지위와 명예를 다 내어버리고 의학을 다시 공부하여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랑바레네에 병원을 개설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오지로 들어가면서 과거에 쌓아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슈바이처는 고통의 아프리카 땅에서 하나님만을 최고의 소망으로 하는 인생의 참 푯대를 찾았습니다.
 
어느 여행자가 공동묘지를 지나다가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었다.’는 묘비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목적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 목적을 주셨습니다. 다만 자신의 목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능과 환경과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야 자신의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확신한 후에도 상황이 급변하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푯대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사명 즉 푯대를 확실하게 알았던 세례 요한 조차도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그 푯대가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 11:2-3절입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 요한은 자신이 감옥에 갇히자 자신의 사역을 제대로 감당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도 때때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확실한지’에 대하여 주님께 묻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푯대를 향하여 잘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합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푯대는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복음의 소망인 부활’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 푯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이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삶이나 가정생활이든지, 직장, 사회, 학교, 소속된 공동체 등 어떤 삶의 형태에서라도 모든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계획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소망인 부활’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날이 가고 달과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푯대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걸어온 삶의 길이 끝나게 되고, 우리 각자가 이른 푯대에 대하여 하나님의 판결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진정한 푯대를 향하여 가노라면 때로는 길이 바뀔 때도 있겠지만 그 때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푯대를 향하여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노라면 우리가 고대하는 주님 앞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올해도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면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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