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개척하라.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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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1-09 17:14
*** 스스로 개척하라 / 여호수아 17:14-18
여호수아 17:14-18,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하니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하니라.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하니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하였더라.”
** 들어가는 말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백의민족(白衣民族)’ 혹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달리 흰옷을 사랑하는 민족이었으며, 동방의 예의 바른 나라였습니다. 약 2300여 년 전에 공자의 7대손 공빈(孔斌)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이 있습니다. 이 책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는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義之國)가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한 번이라도 방문했던 사람들은 우리 국민성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실 산업이나 과학 기술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했으며, 예전에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불렀던 나라들이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US News의 리서치 기사에서 ‘글로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업들이 세계 80개국의 2만 여명으로부터 중요한 5개 부문으로 나누어 조사한 내용을 밝혔습니다. 여기에서 대한민국은 10위를 차지했습니다. 즉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강국이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유명한 예언가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이 세계의 열강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나라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나라들의 관심이 우리나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이 마지막 때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겠습니까? 일제강점기와 민족의 전쟁을 겪으면서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불과 70여 년 만에 이렇게 세계 10대 강국이 된 것은 결코 우리 민족이 잘 나서도 아니고 우연은 더더욱 아닙니다. 벌거벗은 산에 나무를 심으며, 굶어도 자식 공부는 시켜야겠다는 열정, 하고야 만다는 의지,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이 있었습니다. 이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이 작고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사용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해 첫 말씀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잠깐 살펴본 이유는 우리가 다시 일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멸망해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눈물로 호소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렘애 3:40-41) 지금의 우리도 영적 침체의 수렁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금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영적인 환경을 개척정신으로 일구어나가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나온 후 40년 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후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를 이어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여호수아는 12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동쪽 야셀과 길르앗 땅을 기업으로 요구하여 분배 받았고 나머지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가나안 땅을 분배해야 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비롯하여 하나씩 점령하면서 여호수아는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반 지파 순으로 땅을 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분배받은 요셉 자손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가 여호수아를 찾아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14절)라며, 자신들에게 분배한 땅이 적으니 더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는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15절)고 했습니다. 요셉 자손은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라며, ‘가나안 족속들은 중무장되어 있어서 그곳은 점령하기가 힘 든다.’고 불신앙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며 ‘할 수 있다.’고 독려했습니다.
이 대화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간단명료(簡單明瞭)합니다. ‘세상의 환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실 때에는 그 약속을 이행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시며, 고린도후서 1:20절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믿는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야 할 근거가 무엇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의미를 잘 못 이해하고 있음을 봅니다. 마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도록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 근거를 출애굽 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4:13-16절을 봅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따라온 애굽 군대를 보면서 두려워 부르짖을 때에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니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왜 가만히 서서 내게 부르짖느냐? 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갈라지게 하고 건너가라.’고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모세에게 ‘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이는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명령 수행하기를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를 이적의 도구로 삼도록 하셨습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신 것부터 시작하여 재앙을 내리시거나, 바위를 쳐서 물을 내게 하시거나, 바다를 가르게 하시는 모든 일을 모세의 지팡이를 매개체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모세의 지팡이를 ‘너무나 견고하여 정복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가나안 땅이지만 이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표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고 담대하게 삶의 자리를 개척해야 할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약속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5: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고 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무나 확실하게 하신 약속입니다. 야고보서 1:6-8절도 봅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때에 어떤 소원도 들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다만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하게 신뢰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세계의 많은 산악인들이 꿈에 그리는 산이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명한 산악인인 엄홍길 씨를 비롯한 많은 산악인들도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었습니다. 만년설이 뒤덮여 험준한 에베레스트를 올라가려면 철저한 준비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셰르파(Sherpa)’입니다. 셰르파는 흔히 등반가의 짐을 날라주는 단순 보조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뉴질랜드 사람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였습니다. 엄홍길 씨의 단짝 셰르파도 있었는데 그 셰르파가 사고로 죽자 지금까지도 그 유족들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히말라야의 위대한 산악인 곁에는 항상 위대한 셰르파가 함께 있었습니다.
셰르파라는 단어는 짐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네팔 고산 지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이름’입니다. 즉 셰르파 족이지요. 셰르파족은 약 500년 전 동부 티베트에서 에베레스트 남부 빙하 계곡으로 이주해 왔다고 합니다. 아무리 험하고 가파른 곳이라도 그들이 가면 길이 열립니다. 정상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뚫고 개척하는 사람들, 이들의 정신을 ‘패스․ 브레이킹(Path․breaking, 길을 새로 내는, 개척하는)’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패스 브레이킹이란, ‘패스’(Path, 사람들이 지나다녀 생긴 작은 길)와 ‘브레이킹’(Breaking, 깨뜨리다)의 합성어인데,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내는 개척자’를 뜻합니다. 셰르파들은 보통 유명 산악인들의 이름에 가려져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도 꿋꿋이 험한 길을 뚫고 설산을 오르고 또 오릅니다. 그들의 ‘패스 브레이킹’ 정신 앞에 히말라야조차도 그 길을 내어줍니다.
이 셰르파들이 그 험준한 산악을 개척하여 길을 내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이 세상에 영적인 생명의 삶의 길을 개척하고 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패스 브레이킹’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요셉 자손들에게 했던 말을 다시 봅시다.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세상이 아무리 강하고 교활하다고 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을 후원하시는 분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6:33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마귀의 권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마귀의 권세나 그 하수인인 세상의 권력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당신께서 하신 약속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약속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개척합시다. 그리하여 2020년이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는 믿음의 삶을 이루는 복된 해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