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내 인생의 결산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616회 작성일 2019-12-30 20:47
*** 내 인생의 결산 / 마태복음 25:31-36, 41-43
 
 마태복음 25:31-36, 41-43,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 들어가는 말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필연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 14:11-12절을 보겠습니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한 곳 더 베드로전서 4:5절입니다.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이 말씀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게 되는 인생의 결산을 말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말씀도 역시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인생의 결산에 대한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일에는 결산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진리입니다. 오늘은 2019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또 한 해가 역사 속으로 저물어가는 이 때에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결산에 대하여 생각해보려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세 가지의 결산에 대한 비유 즉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 중의 하나입니다. 열 처녀 비유는 ‘깨어 있어야 한다.’ 달란드 비유는 ‘각 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최선을 다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인 양과 염소 비유는 ‘지나온 삶에 대한 결산’을 의미합니다. 이 세 비유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과 합당하지 않은 사람 이 두 부류로 나뉩니다. 그 중에서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 온 사람을 양에 비유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온 사람을 염소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판결하시는 내용’입니다. 양으로 비유된 사람들에게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셨고, 염소에 비유된 사람들에게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판결하신 기준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거론하신 삶의 형태는 모두 사회적인 약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판결에 대한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양에 비유된 사람들은 ‘나는 주님께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요.’라고 했으며, 염소에 비유된 사람들은 ‘내가 주님께 그렇게 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이들의 의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40절과 45절입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하시리니” 이 말씀을 종합하면 ‘약한 자, 병든 자, 헐벗은 자, 옥에 갇힌 자 등. 사회적인 약자에게 관심을 두고 돕는 것이 인생 결산 때에 천국과 지옥을 판가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신앙이 아닌 실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내 인생의 결산에 유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말씀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 중에 로마 군인 ‘마르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로마 군인으로서 아주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추운 겨울날 시내로 들어가고 있을 때, 한 거지가 따라와서 그를 붙잡고 구걸했습니다. 사실 마르틴도 가난했으며 당장 주머니에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그 거지가 너무나 불쌍하게 보여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낡은 군인 외투를 벗어서 반을 찢어 그 거지에게 덮어 주었습니다.
그 날 밤, 마르틴은 꿈속에서 아름다운 천국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천사들이 있었고, 또 천사들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반쪽 난 로마 군인의 외투를 입고 계셨습니다. 천사 중 하나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이처럼 다 낡은 외투 반쪽을 입고 계십니까? 아니 도대체 누가 이런 옷을 드렸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나의 사랑하는 종 마르틴이 주었단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는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잘 사는 우리나라에도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회적인 약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보도된 ‘탈북자 모녀가 굶어 죽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도 있었습니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되어 고아원, 양로원 등의 시설에 도움의 손길이 거의 없다고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해외에서도 큰 반응을 일으킨 뉴스가 있었습니다. 인천의 한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cctv에 적발되어 경찰까지 동원된 사건입니다. ‘장발장 부자’라는 제목으로 퍼지고 있는 사건입니다.
 
물건을 훔친 사람은 젊은 남자와 초등학생 남자 아이였습니다. cctv에는 젊은 남자가 1000cc짜리 우유 하나와 과일 몇 개를 남자 아이의 백팩(back-pack)에 넣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검거된 남자는 연신 울며 용서를 구하면서 ‘너무 배가 고파서 이런 죄를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남자는 ‘자신의 당뇨병 지병으로 일도 할 수 없는 형편이며, 두 끼니를 굶어서 너무 배가 고팠다.’고 했습니다. 사정을 확인한 마트는 그들을 용서했고, 경찰은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검거하는 대신 부자를 식당으로 데려가서 따뜻한 국밥을 대접했습니다. 그 와중에 어떤 분이 급하게 식당으로 들어와서는 부자의 식탁에 봉투를 두고 황급하게 나가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이 분은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으로 현금 이십만 원을 봉투에 담아 전달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유튜브를 통하여 전달되면서 해외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는 그 마트와 해당 경찰서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업무가 힘들 정도라고도 했습니다.
 
모두가 힘들어 하는 이 때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일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각박한 환경 속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들이 아직은 많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7-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하여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또 무엇인가를 대접할 때면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은 이런 보상심리가 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32-36절을 봅시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로마서 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시며, 에베소서 5:17절에서도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 인생의 결산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광이며 유익이 됩니다.
 
※ 지금 내 인생의 결산은 어떠합니까?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서 걸려 있는 작은 액자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이 글은 울산 YMCA 시민중계실장이었던 ‘표혜령’씨가 ‘화장실 개선 운동’을 하면서 내놓은 책의 제목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생각했었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추억되느냐?’로 대변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들이 그에 관한 추억을 말하게 될 때, 그의 생애를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무언가 자신만의 인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남 유다의 왕으로 8년을 제위 했던 ‘여호람’의 인생에 대하여 후손들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을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대하 21:20) 그런가하면 남 유다 13대 왕으로 29년을 제위 했던 ‘히스기야’에 대하여 후손들은 그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그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더라.”(대하 32:33)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먼저 돌아가신 일가친척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에 대하여 그분이 남긴 인생의 자취를 생각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육신의 생애를 마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며 평가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딸이 결혼할 때에 결혼식에 왔던 동생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혼식 보니 오빠, 잘 살았네.” 지금도 간간히 이 말을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어떤 일의 결과를 보면서 내 삶을 평가하는구나.’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삶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 것 같습니까? ‘참 아까운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실까?’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양의 무리에게 하셨던 말씀인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는 평가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본문 앞쪽의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선언인“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말씀을 듣도록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주님과의 현실적인 동행입니다. 현실적인 동행이란, 매 삶의 순간순간을 주님께 묻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나의 영을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해야 합니다. 내 영이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려면 말씀묵상과 기도, 찬양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제 2019년을 결산하게 되지만 이것을 간이결산이라고 생각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남은 생애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내 인생을 결산하는 날이 이를 때에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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