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의 주인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793회 작성일 2019-12-30 20:45
***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의 주인 / 요 13:12-17
 
 요한복음 13:12-17,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들어가는 말
 
예전에 자동차를 운전해 가다가 길옆의 컨테이너 주택에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쓰인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해병의 자부심을 알게 하는 글입니다. 몇 년 군 생활을 했던 해병이 이런 자부심이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할 나위 없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8-9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 이 모두는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주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된 주인이십니다.
 
예전의 평양 산정현 교회에 백인숙 전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신앙의 결심을 하게 된 동기는 국민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석가모니는 불교를 세우기 위해서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입니다. 백전도사는 결심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생을 결혼하지 않고 살아야겠다.’ 고 결심했습니다. 부모는 과년한 딸이 시집가서 잘 살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싫습니다. 저는 시집가지 않고 예수만 섬기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부모들은 펄펄 뛰며 금족령을 내리고 학교를 중퇴시켰습니다. 금족령에 매여 집에 감금당해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그길로 집을 나와 평양여자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1919년에 일본 요꼬하마 신학교를 졸업했으며,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는 산정현 교회 여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7년 옥고 끝에 순교하셨고, 백 전도사는 교회를 지키며 온갖 수모와 옥고를 치르다가 8.15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공산화가 된 평양에서 결국 공산당에게 잡혀서 "죽어도 예수를 믿겠느냐?"는 공산당의 추상같은 질문에 백인숙은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오히려 영광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화가 난 공산당원은 "이 년을 저 흙구덩이 속에 처넣어."라고 했고, 몇 사람의 청년들에 끌려 흙구덩이 묻혀 생매장되어 1950년 6월 20일 34세의 나이로 순교했습니다.
 
백인숙 전도사는 자신이 한 번 결심한 것을 죽음에 이르도록 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진정한 주인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의 길은 잠시 가다가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켜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6-8절입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개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왜 우리가 이런 길을 따라야 합니까? 우리 주님이 바로 그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에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에 대하여 생각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더 설명이 필요 없도록 잘 알려진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세족식 강화입니다. 이 세족식 강화는 13:1-20절까지 이어지는데 주제는 ‘겸손의 모범’입니다. 이스라엘은 건조한 아열대지역이어서 주로 샌들(sandal)을 신었습니다. 그러니 어느 집에 들어가려면 흙먼지 묻은 발을 씻어야 했는데, 그 집의 하인이나 주인이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지내시는 마지막 유월절 직전 어느 날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실 때였습니다. 식사를 하시다가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식사중인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탁에 앉았지만 그 누구도 발을 씻어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더러운 발로 식탁에 앉은 것은 누군가 발을 씻기는 사람이 가장 낮은 신분이라는 생각들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자신이 높다고 싸우던 제자들이니 낮아지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이들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식사하시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자신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의 마음을 어떠했겠습니까?
 
제자들의 발을 다 씻으신 후에 다시 옷을 입으시고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본문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본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내가 너희의 주인이며 선생이 되어서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것입니다. 즉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겸손’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문 16-17절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이 말씀에서 핵심은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주인이 가는 길을 종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은 ‘나의 모든 영과 육신의 삶이 주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절로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3-14절에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십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앗시시의 성 프랜시스(St. Francis of Assis)’의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날, 프랜시스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두 젊은이가 프랜시스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프랜시스는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뽑아서 뿌리를 하늘로 가도록 하여 다시 심고 오시오.”
한 젊은이는 말없이 밭으로 가서 배추를 뽑아서 거꾸로 심기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젊은이는 “참 이상도 하지. 이 성자가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 머리가 이상해졌나보다.”라며 떠나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금방 프랜시스의 의도를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프랜시스는 제자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순종’을 꼽았던 것입니다. 말도 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스승의 말에 순종할 줄 아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자질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여든 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막 8:34, 눅 9:23) 그리고 본문 15-17절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제자이든지 종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어떤 것을 요구하시든지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대하지를 않습니다. 마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이나 하인쯤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존중하고 순종하지는 않고, 자신의 사정을 살펴주고 자신의 기도를 들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일이 잘 풀리고 환경이 좋으면 좋아하다가 일이 꼬이고 고난이 주어지고 환경이 어려워지면 실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앞의 예화의 백인숙 전도사처럼 그런 핍박이 닥치더라도 “예”라며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그 고난과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기꺼이 당하시고 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주인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고 자신의 생명까지 주셨는데, 종이 된 우리가 부귀영화만 바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몇 번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본문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주님의 본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주님의 본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내 삶에서 주인으로 모실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군 생활을 할 때, 매일 아침 지휘관으로부터 일과를 배정 받는 것과 일과를 마친 후에 경과를 보고하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매일 아침이면 “주님, 오늘은 제가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야하고,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계획된 일과를 말씀드리면서 ‘주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신 계획으로 인도하시기를 구하면서, 실시간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사용해 주시도록’기도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서는 오늘의 일들을 돌아보면서 주님의 뜻대로 행하였는지를 묻고 혹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매사에 주님의 뜻을 묻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마냥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목적을 이해하고 잘 따르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진정한 나의 주인으로 섬기지도 못한다면 성탄절은 결코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상가나 술집에 성탄장식을 해두고 기분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내 주인이 되신다면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성탄의 기쁨과 행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부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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