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시기에 관하여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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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7-08 13:39
*** 떄와 시기에 관하여 / 데살로니가전서 5:1-8
데살로니가전서 5:1-8,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 들어가는 말
요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에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서 과채류나 어패류를 공판장에서 경매하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부산 암남동에서 살 때에 때때로 자갈치 시장에 가면 바닷가 공판장에서 수산물을 경매하는 것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사람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모입니다. 사이렌은 경매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경매사가 높은 단에 서서 줄지어 있는 수산물들을 하나씩 경매에 붙입니다. 경매사가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예리한 눈으로 입찰자들을 훑어봅니다. 입찰자들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가린 작은 판을 경매사가 보도록 내밉니다. 요즘은 작은 모니터를 사용하더라고요. 경매사는 입찰자들이 제시한 숫자를 보고 낙찰자를 고릅니다. 그 때에 입찰자가 원하는 물품이 나왔다면 지체 없이 자신의 예상가격을 적어서 입찰해야 합니다. 만일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가격 결정을 못하여 머뭇거린다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경매에서는 낙찰가를 예상하는 것과 입찰하는 시기가 중요합니다. 원하는 물품이 있다면 결코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광경은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생활을 보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28-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그리고 33절입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이 말씀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가 마치 긴박감이 흐르는 경매장의 분위기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때와 시기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때와 시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 때와 시기를 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도서 3:1절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인에게 있어서 때와 시기가 정말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시기가 길어서 준비할 시간이 많은 것도 있지만, 아주 짧고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시기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를 나타내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time)’으로써 ‘짧은 시기(時期)’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하기에 적당한 시기’와 같은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회(opportunity)’로써 ‘시기(時機)’를 의미하는데 때 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기회를 보아 무엇을 하라.’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속담에 “메뚜기도 한철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제 세상 만난 듯이 날뛰는 모습’을 일컫기도 하지만, ‘자신의 때는 잠깐이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메뚜기는 여름이 한철이고, 리어카 꾼은 김장철이 한철이고, 보일러장이는 겨울이 한철이라고 하듯이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기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제 때에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지혜로움 삶에 대하여 전도서 11:5-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즉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어진 생활 속에서 이것저것 성실하고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때와 시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 1-3절을 봅시다.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우리가 주의해야 할 단어는 “주의 날(day of the Lord)”입니다. 사실 이 날은 두렵고도 두려운 날입니다. 왜냐하면 환난의 때이며, 심판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날이 아닙니다.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유는 본문 1-2절 말씀처럼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때를 알기 때문입니다. 도둑은 밤에 오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낮에 속하였고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주의 날은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몰래 다가오지 않습니다. 즉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밤’은 ‘영적인 어두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깨어 있다.’는 것은 ‘내 영이 주님과 교제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앞서 읽었던 마가복음 13:28-29절의 ‘무화과나무 비유’처럼,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믿음을 지키기 어렵게 되는 영적인 어둠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때와 시기를 아는 것입니다.
※ 도둑같이 오는 때와 시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오래전 월남전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미국 켄터키 주 ‘아이솜’에 있는 한 어머니에게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는 아들 ‘라리 매가드’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내용 중에 아들이 쓴 기도시가 있었습니다. 그 시를 읽는 중에 아들이 전사했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 시의 내용입니다.
“주 하나님! 이전에는 한 번도 당신께 말씀드린 적이 없지만 지금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보같이 나는 그것을 모두 믿었습니다. 그런데 간밤에 구멍 난 창구를 통해 당신의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들이 거짓말쟁이들임을 깨달았습니다. 왜 그동안 당신이 만드신 것들을 볼 시간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제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얼굴을 직접 대하기 전에 이 지옥 같은 곳에 온 것이 재미있습니다. 오늘 당신을 뵌 것이 무척 기쁩니다. 곧 0시가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가까이 계심을 안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을 만난 후로는."
이 청년, 정말 행운아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었는데 죽음 며칠 전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어 확신하고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다른 한 편에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에게 주어진 행운 같습니다. 로마서 4:6-8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의 은혜가 이 청년이나 십자가상의 강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 사죄의 은혜가 지금 우리에게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야 할 첫 번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모하고 기다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바란다면 이 사죄의 은총을 항상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영의 생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은혜인 사죄의 은혜를 지금의 세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이 사실을 미리 예견하고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3-5절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와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무리가 있습니다. 가톨릭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의 부활도 재림도 없다고 말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이런 말에 속아서 세속에 안주하며 삽니다. 앞으로 이렇게 성도를 속이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도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33-34상반절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 하십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듯이, 매일 죄를 회개하여 우리 자신을 정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와 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지혜입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하시며, 8절에서는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권면합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특별히 구분이 되는 것은 ‘때와 시기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서 차이가 납니다. 잠언 22:3절에서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때, 머물러야 할 때, 떠나야 할 때를 압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이러한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아가다가 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모든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때와 시기’를 알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편 90:11-12절입니다. “누가 주의 노여움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관계된 일들을 이루시는 때와 시기를 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컨대, 여러분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알지 못하여 답답하게 생각하실 때가 있지요? 지금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서는 이런 때에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여 기도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에 실망하게 됩니다. 이사야 55:6-9절을 봅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영과 육신의 모든 것에 대하여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거나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입니다. 이사야 30:18-19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모든 환경에 대하여 나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다르며, 일을 행하시는 시기와 때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시기와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철저히 준비된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이 준비가 바로 ‘악한 길과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회개하여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를 받는 것이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와 시기를 기다리는 지혜입니다.
미국에서 전해지는 실화라고 합니다. 살인범이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이 되는 사람은 공직에 있는 동안에 아주 많은 공로를 세워서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서 자기 동생을 사면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지사는 그 형의 공로를 참작하여 동생의 죄를 사면해주는 사면장을 형에게 주었습니다. 주지사의 사면장을 주머니에 넣고 형은 곧바로 동생을 면회하러 갔습니다. 형이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살아 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니?” 동생은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옥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판사를 찾아 그 놈을 죽이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죽이는 일이야.” 형은 아무 말 없이 면회를 끝내고 나왔습니다.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주머니에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동생은 얼마 후에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1:25절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요한복음 9:31절에서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내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사죄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회개와 용서와 하나님을 신뢰하여 성실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때와 시기를 기다리는 지혜입니다. 우리 모두 주어진 짧은 때를 사는 매일의 삶에서 이런 지혜로움을 이루어 행복한 삶, 행복한 기다림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