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내 길을 알게 하소서.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935회 작성일 2020-06-03 14:35
*** 내 길을 알게 하소서. / 요한복음 14:25-29
 
 요한복음 14:25-29,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 들어가는 말
 
6일 전쟁이라고 들어보셨지요? 제3차 중동 전쟁이라고도 하는데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벌어진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주변 이웃 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연합하여 벌인 전쟁입니다. 이 전쟁사는 현대 세계사에서도 유명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강원도 정도의 면적이고, 군은 4만 명 정도였으며, 아랍 연합군은 400만 명이 넘었고, 무기 숫자 면에서도 이스라엘은 절대적인 열세였습니다. 당시 아랍의 국가들은 ‘1948년에 건국한 이스라엘이 이 전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단 6일 만에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끝났습니다. 이 전쟁에서 사상자는 이스라엘이 천 명이 채 안 되었지만, 아랍 연합군은 2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 전쟁의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 중의 하나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이 부대에서 낙오하여 자신의 부대를 찾고 있던 중에 수 천 명의 아랍 연합군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큰 부대 전체가 이스라엘 병사 한 사람에게 투항한 것입니다. 어떻든 이스라엘 병사는 그 큰 부대를 포로로 잡고 자신의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보부에서 포로로 잡혀온 아랍의 장교들을 심문하던 중에 ‘당신들은 왜 우리 병사 한 명에게 투항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장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군과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여호와의 천사들과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내막은 당시의 이스라엘 병사 뒤에 수천의 천사들이 자신들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6일 전쟁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많습니다. 당시의 아랍 연합군들마저도 이 전쟁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서두에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온 우주와 세상의 모든 일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 길을 정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역대하 20:17절을 봅시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거의 대부분 우리 감각으로는 느낄 수도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도록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이 시간의 본문말씀에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하시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당신의 나라로 올라가실 때가 가까워지자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의 위로와 약속의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가장 탁월한 약속이 본문에 등장하는 보혜사(保惠師) 성령님을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보혜사라고 표현하신 것은 우리의 스승이나 간호사처럼 우리를 보호하시고 가르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쪽에 있는 16-17절을 봅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이런 안전장치를 마련하신 정말 치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암울한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갈 자녀들을 위하여 안전한 길을 가르치시고 친히 인도하실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본문 26절을 봅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현상과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 다음 구절인 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러분은 이 말씀이 여러분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믿습니까? 의심된다면 29절을 봅시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말씀입니다. 즉 ‘반드시 이렇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만물을 지으시고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렇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일까요?
 
※ 왜 나는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할까요?
 
유명한 곡예사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수 미터 높이에 있는 수평봉에 매달려 재주를 부리는 곡예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곡예사는 이 곡예를 하는데 필요한 모든 부분을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에게 한 사람씩 직접 해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소년이 까마득히 높이 걸려 있는 봉을 쳐다보고는 겁에 질렸습니다. 자신이 그 높은 봉에서 떨어지는 무서운 광경을 상상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소년은 곡예사에게 “못하겠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 때 곡예사는 포근하게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단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너에게 가르쳐 주마. 저 수평봉 위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이 곡예사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저 수평봉 위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이 말은 ‘저 수평봉 위에 자신이 서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만일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환경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환경이나 자신의 생각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내 마음과 생각을 두는 것이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염려하고 두려워하겠습니까? 알고는 있지만 내 마음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두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열왕기하 6:14-17절을 봅시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역사하시고 그 삶을 인도하심이 어떠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엘리사의 사환처럼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다만 엘리사의 사환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말씀과 약속에 대하여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히브리서 4:1-2절에서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약속은 지금 내게도 유효하다고 믿지 않는 것이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인식하고 내 길을 알 수 있을까요?
 
자본금 규모가 30억 정도 되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사업도 그런대로 잘 되고, 모든 것이 순탄하게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조금 좋지 않아서 병원을 찾았는데,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암 선고로 고민할 틈도 없이 급하게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너무 고통스러워 병원 치료를 더 받을 수 없을 만큼 체력이 떨어졌고, 면역력도 저하되어 미음 한 수저도 넘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때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생명같이 아꼈던 30억 재산을 미음 한 수저로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사업에 바빠서 등한히 했던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았습니다. 십일조 못 한 것, 감사하지 못했던 것,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 것, 하나님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믿었던 것, 주일을 지키는 것보다 사업과 사람 관리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뜨거운 눈물로 회개하며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미음 한 수저로 사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나를 아무거나 먹어도 살 수 있는 사람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후 그는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로 여기며 섬기고 있습니다.
 
사람은 잘 될 때에는 ‘자신이 잘 나서 그렇다.’고 교만한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위기를 당하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예화에 나오는 집사님처럼 모든 성도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깨달을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때로는 너무 늦게 깨달아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위의 집사님처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 큰 은혜이며 복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지고 깨닫도록 힘써야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내 인생의 길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본문 26-27절을 봅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성령께서 우리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면 내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잘 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27절 말씀이 그 답인데 주님께서는 한 번 더 강조하십니다. 16: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길을 인도하실 때에는 우리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담대함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환경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이며 담대한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역자였습니다. 그런 그였지만 그도 자신의 길을 알지 못하여 잘 못 갈 때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6:6-10절을 봅시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아시아 쪽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모든 길이 막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밤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하여 바울이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길을 알 수가 없고, 내가 가야할 길도 보이지 않을 때는 멈추어 서서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자녀들을 아시고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시편 91:14-15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편 90:9-12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오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잘 알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 갈 날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신뢰하며 순종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때때로 길이 막히고 어려울 때면 억지로 나아가려 하지 말고 멈추어 서서 내 모든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시고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매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순종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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