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최선을 다하는 행복한 삶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136회 작성일 2020-03-26 16:30
*** 최선을 다하는 행복한 삶 / 데살로니가전서 5:12-24
 
 데살로니가전서 5:12-22,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들어가는 말
 
얼마 전에 인터넷에 올라 온 가슴 먹먹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두 아이를 기르는 젊은 엄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두 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25차례의 방사선 치료와 39번의 끔찍한 화학요법을 견뎌냈지만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두 아이의 엄마는 죽기 직전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남겼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살고 싶은 날이 참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가 되어 함께 늙어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딸 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를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누리고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요?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참, 가슴이 찡합니다. 두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살고 싶었겠습니까! Home Sweet Home(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노래도 있듯이, 세상에서 살면서 가정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복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전도서 7:14절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했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최고로 누렸던 솔로몬은 9:9-10절에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이는 ‘주어진 삶의 시간과 기회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행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의 내용도 최선의 삶을 권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인생 여정을 고백하면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지금의 우리야 말로 ‘우리가 살아갈 날에 대하여, 우리의 인생 여정에 대하여 지혜를 구해야 할 때’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그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면한 많은 시련과 고통에 대하여 성도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담대하게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우상숭배의 위협과 유대인의 위협과 황제숭배의 위협으로 생명의 위기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 자세하게 알려줌으로써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결한 삶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본문 앞쪽 4:16-18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말한 바울은 이어지는 본문말씀에서는 이처럼 재림이 임박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최선의 삶을 이룰 수 있을지를 권면합니다.
 
※ 먼저 내 마음의 방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최선(最善)이라는 말은 ‘가장 좋은’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가장 좋은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의 길임을 뜻합니다. 이 삶의 방향은 자신의 마음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4:23절에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과 삶은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7:20절 이하에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선한 것이든지 악한 것이든지 모두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면서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신 31:21)고 하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생각 속에 머물러 있지만 언젠가는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면 먼저 지금 자신이 향하고 있는 마음의 방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느 결혼식 이야기입니다. 이 결혼식에는 한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사연이 많았는데, 남자의 집안에서 반대가 엄청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부는 선녀처럼 아름다웠고.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주례 선생님은 남자의 대학 은사였습니다. 주례자는 머리카락이 몇 올 남지 않아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로 등단하여 주례사를 시작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검은 머리가 저처럼 대머리가 될 때까지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순간, 식장 안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으며, 이어지는 주례사는 신랑 신부와 하객들 모두를 웃게 했습니다. “제 대머리를 한문으로 딱 한 자로 표현하면 빛 광, 즉 광(光)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신랑 신부가 백년해로하려면 광나는 말을 아끼지 말고 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세 치 혀입니다.” 하객들은 모두들 진지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빛 광 같은 말 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보, 사랑해. 당신이 최고야!’라는 광나는 말은 검은 머리가 대머리가 될 때까지 계속해도 좋은 겁니다.” 이렇게 주례사가 이어지는데, 하얀 장갑을 낀 신랑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수화로 선생님의 주례 내용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객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찡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주례사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습니다. “여기,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훌륭한 신랑이 가장 아름다운 신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고 합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이 신랑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은 자신의 행복입니다. 그 행복은 비록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이기적인 사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2-15절을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삶에서 어느 방향으로 마음을 향해야 할지를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즉 마음의 방향을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는 존중’에 두는 것입니다. 서로를 붙잡아주고, 격려하고, 오래 참아주며, 선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방향입니다.
 
※ 더 중요한 영적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본문 앞쪽에서는 육신적인 삶에서의 마음 방향을 말씀했지만, 16절 이하의 말씀에서는 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16-20절을 봅시다.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이 말씀은 영혼이 잘 되는 길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간단한 말씀 같지만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목사인 저도 이 말씀 때문에 고민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기도를 쉬지 않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자 하지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되겠다.’라고 마음을 다지면 다질수록 더 안 되고, 오히려 강박증까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는 안 되는 이유가 이미 성경말씀에 있었습니다. 먼저 스가랴 4:6절을 봅시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소수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시 일어서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아니, 아예 불가능하게 여겨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님으로만 가능한 이유가 로마서 3:10-12절에 있습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람의 타락한 성품으로는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영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3: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타락한 성품으로는 항상 기뻐하고, 기도를 쉬지 않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자 하지만 계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 해답이 바로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본문 19-20절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계속 역사하시도록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성령을 소멸한다.’는 말씀은 ‘성령님의 역사를 거스르는 일’을 말하는데, 본문말씀의 앞쪽에서 말한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거나, 육신의 욕망을 따르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등.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막는 것인데, 성령훼방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즉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을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0절을 봅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또 하나 로마서 8:26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외에도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일들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 듣는 것 그리고 깊이 묵상하며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까? 히브리서 4: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아실뿐만 아니라 내가 행하여야 할 일들을 알려주십니다. 즉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성령께서 내 안에 이루시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본문 21-24절에서 말씀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하여 행복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즉 육신적인 방향에서는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화목하는 것” 즉 서로를 붙잡아주고, 격려하고, 오래 참아주면서 마음의 방향을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는 존중’에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방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계속 역사하시도록 유지하는 것’입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1982년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캘링이 ‘깨진 유리창의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라는 사회 무질서에 관하여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소한 무질서를 처리하지 않으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우연히 집 근처에 쓰레기를 버렸는데, 집주인이 이를 방치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 또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고, 결국은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는 별 것 아니지만 즉시 수리해야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듯이, 우리의 삶에서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즉시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남은 생애가 행복하게 됩니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지나보면 우리 인생이 그리 길지 않게 여겨집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을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행복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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