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고 담대 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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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10-01 16:44
*** 두려워말고 담대하십시오. / 베드로전서 5:5-11
베드로전서 5:5-11,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 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들어가는 말
사람은 자신의 경험해 보지 못하거나 예측하지 못하는 일을 만나게 되면 긴장하거나 두려움이 앞서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미래는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미지의 분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긴장과 두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슈퍼컴퓨터를 동원하여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노력물이 기상상황이나 모든 삶의 상황에서 지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전도서 7:13-14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통함과 곤고함을 번갈아가며 행하셔서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개인이나 가정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일과 어려움이 뒤섞여서 오기 때문에 내일을 예측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염려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미래가 불투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러한 때를 위하여 미리 주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인 베드로 서신은 사도 베드로가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이 지역 중에서 갈라디아와 아시아는 바울의 선교지역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게 되는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에 의하여 박해와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해가 더욱 심해지는 위급한 상황에 빠진 성도들에게 신앙을 잃지 않도록 복음의 진리와 종말의 희망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위급한 환경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나타내도록 격려하고 권면합니다. 본문 바로 다음 구절인 12절에서 이 내용을 밝혀줍니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이 격려의 편지를 쓰고 있는 베드로 자신도 이 편지를 쓴 직후에 순교의 제물이 됩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받은 성도들이 더욱 믿음 안에 굳게 서서 담대해야 함을 실감하게 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아마도 이 구절이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신앙의 환경도 점점 더 믿음을 지키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은 담대함입니다. 야고보서 4: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호령하는 마귀의 권세는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더욱 집요하게 덤벼듭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담대하게 맞서면 피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9절에서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처럼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세상에 대하여 담대해야 합니다.
※ 두려움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지 못하게 합니다.
요한일서 4:18절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두려움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형벌을 받게 합니다. 이 두려움은 신앙을 약화시키고 마귀의 공격을 받게 합니다. 어릴 때에 사나운 개를 만나면 더럭 겁이 나서 부리나케 도망할 때가 많았지요. 그 때에 어른들이 ‘개를 만나면 무서운 표시를 내지 말고 뒤를 보이지 말라.’고 하셨던 말이 기억납니다.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아마존 밀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굴 가면을 머리 뒤쪽에 썼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호랑이는 뒤에서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세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도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지시를 받는 세상의 악한 세력들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세상 세력들 앞에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 콜로라도에는 ‘롱의 봉우리’라고 하는 유명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 곳에는 400년 묵은 고목이 쓰러져있는데, 그 죽은 나무가 대단히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 나무는 자기 일생에 14번이나 벼락을 맞았으며,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견뎌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조그마한 딱정벌레들이 이 나무에 기어 들어가 나무의 속을 갉아먹기 시작하였고, 차츰 나무는 거대한 체구를 지탱하고 있던 힘을 잃었습니다. 나무는 커다란 재해를 이겨내고 장장 400년이 넘도록 살아 왔지만, 정작 딱정벌레들의 습격에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속이 비고 썩은 거대한 나무는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온갖 풍상을 다 겪고 이겨낸 나무가 자그마한 딱정벌레 몇 마리 때문에 쓰러지다니, 정말 허무하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두려움과 염려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인데 마치 인생을 쓰러뜨리는 딱정벌레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지만 현실이 두렵고, 생활의 염려로 불안해하지 않습니까? 두려움 없이 담대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는 두려움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할 때에 네 가지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은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명기 20:1절과 8절을 봅시다.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실제로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보냈던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이 돌아왔을 때, 열 명의 정탐꾼들이 여리고 성이 너무 강해서 점령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나타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온 백성이 소리 높여 울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삽시간에 주변에 퍼지며 사람의 마음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의 도우심까지도 받지 못하게 합니다. 두려움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해야 세상을 이깁니다.
※ 어떻게 담대함을 나타냅니까?
그리스도인이 ‘담대하다’고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信賴)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겠습니까?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근거를 ‘하나님이 함께 하심(임마누엘)’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23절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함이라.”고 하십니다. 종합해보면,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순종할 마음도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중세기의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루소(Rousseau, Jean-Jacques,1712~1778)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빈정거렸습니다.
“도대체 교회를 보면 이상해. 교회에 가보면 해결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충성 딜레마에 빠져 있어. 모두가 충성 딜레마에 빠져 하나님 나라만 찾고 있단 말이야. 이처럼 하나님 나라만 찾고 충성하다가 어떻게 세상나라의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겠는가? 세상 국가에 훌륭한 시민이 되려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만 날마다 찾아서 되겠는가?”
이 말에 대하여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하늘을 겨냥하라. 그러면 땅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겨냥하라. 그러면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루이스 교수의 말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하다는 것을 잘 요약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그리스도인이지만 세상의 환경과 내게 주어진 여건만 본다면 낙담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바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이적’이나,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이적’을 보이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신과 박해와 어려움과 쾌락 등. 이러한 바람은 성도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의 세력들은 두려움의 바람과 의심의 물결을 일으켜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처럼, 우리를 세상 속으로 침몰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늘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8-9절의 말씀처럼, 성도는 세상에 대하여 자신 있게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만 제자들처럼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결해 보려고 헛된 노력을 하다가 지쳐 절망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매 삶의 순간마다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담대하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 실천 방법으로 베드로 사도는 본문 5-7절에서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겸손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생애를 보여주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미래에 대한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리게 됩니다.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을 때에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형편을 탄식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종으로서의 신분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창세기 39:2-3절에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부했다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요셉은 죄수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창세기 39:20-21절에서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라고 하십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인내하며 묵묵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본문 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믿으며 겸손하게 최선을 다한 요셉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노예 죄수의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소설 ‘빙점’으로 유명한 일본의 신실한 신앙인인 ‘미우라 아야꼬(Miura Ayako, 三浦陵子)’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로 알게 된 사람은 모두 자기의 책임 범위 안에 속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사람이거든요.” 미우라 아야꼬의 말처럼, 우리가 만나는 사람, 대하는 일들,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맡기시고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 여러분이 알고 지내는 대상이나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들은 우연히 알게 되거나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무엇인가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헛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인내하고 견디고 수고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계산하십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주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여러분의 삶은 아름다운 결실이 맺게 됩니다. 이를 진정으로 신뢰하면서 세상의 사람이나 일이나 환경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행하여 더욱 견고해지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