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우리가 기다리는 마지막 보상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309회 작성일 2020-09-24 15:52
*** 우리가 기다리는 마지막 보상 / 계 22:10-17
 
 요한계시록 22:10-17, “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 들어가는 말
 
예전에 직장 다닐 때, 연말이면 기다려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너스지요. 요즘은 성과급이라고 하던데, 어떻든 추가로 주어지는 보너스가 기다려지기도 하고, 받으면 기분이 좋지요. 회사가 일 년 동안 경영하여 좋은 결과를 내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사원들에게 분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지막 보상이 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말씀이 이 보상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보상은 주님께서 확실하게 보증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믿어야 할 두 가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세상의 보상에는 관심이 있는데, 하나님의 보상에 관하여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일화 중 하나입니다.소크라테스가 하루는 시장을 지나다가 사람들을 만나 길을 물었습니다. “신발을 만드는 가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사람들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옷장을 만드는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것도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물어보아도 아주 상세히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는 집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세태를 풍자한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물질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세하게 알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에 대해서는 등한시한다는 것을 풍자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도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평안과 즐거움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옷 한 벌, 내 집 마련, 재테크, 자식을 키우는 일, 노후생활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자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9:27절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말씀처럼, 100여년을 사는 세상보다는 영원을 사는 삶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계시록의 결론부분이지만 성경전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복 중에 마지막 일곱 번째 복을 포함하는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과 보상,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 마지막 초대를 기록합니다. 오늘 말씀의 중심 구절인 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 말씀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시작부터 신약의 마지막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통치원리입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마지막 초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17절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초대장에는 초대 대상이 듣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라고 명시하십니다. 이는 강압적인 초대가 아니라 자원하는 대상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결정하고 실행하도록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0-11절입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이 말씀의 의미를 알면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제 마음대로 하도록 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결정에 의하여 상급과 징벌을 스스로 만들기 때문에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마지막 보상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보상이란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한 부산물입니다. 즉 보상을 생각하려면 보상 그 자체보다는 보상을 받게 하는 생활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앞서 히브리서 11:6절에서 보았듯이 보상은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5:10절에서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상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보상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0-15절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저는 항상 이 말씀과 마태복음 7:20-23절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행하는 모든 행동을 통하여 상급이나 징벌을 쌓아간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상이 마지막에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어지는 마지막 보상은 우리 인생의 종합평가입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보상은 주어집니다.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삶은 어떤 형태로든지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현재적인 보상과 함께 마지막 보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 관원이 찾아왔을 때 부자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를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즉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주님을 따른 보상이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28-29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누가복음 18:29-30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보상만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주어지는 보상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역대하 14-16장에는 남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사는 자신의 나라에서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퇴락한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행하게 하는 등 ‘영적인 대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비록 왕이었지만 백성들이 오랫동안 행하여 오던 우상숭배와 생활을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전쟁까지 겹쳐지면서 ‘개혁을 계속해야 할지.’에 대하여 마음이 많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오뎃’을 통하여 아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역대하 15: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즉 아사가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잘 하고 있다.’고 응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상을 생각할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살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즉 선을 행하거나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하나님께 하듯 성실하고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은밀하게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1절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이처럼 보상은 분명히 약속되어 있지만 사람에게 칭찬과 보상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보상은 어떤 것입니까?
 
요한복음 5:28-29절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은 주님을 끝까지 따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보상입니다. 이 보상은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생명심판에 해당합니다. 이 생명심판은 예수님을 통하여 해결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앞서 보았던 고린도전서 3:10-15절의 각 자가 지은 집에 대한 보상은 생명심판이 아닌 상급에 관한 심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나라를 허락받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삶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보상은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고하고 헌신한 만큼 상급으로 보상해 주는 것입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값비싼 것이며 얻기도 힘듭니다. 반면에 나무나 풀이나 짚은 값싼 것이며 동시에 얻는 것도 수월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똑 같은 대우를 하지 않으십니다. 앞서 본 누가복음 18:29-30절을 다시 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라는 말씀은 자신이 행한 선행이나 섬김과 봉사, 헌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의미합니다.
 
‘충분한 보상’이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마태복음 6:31-32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 즉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십니다. 이 필요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것을 구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가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무조건 많이 구한다고 해서 다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있어서의 충분한 분량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재가 구하는 일에 충분한 분량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20절에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하시며, 빌립보서 4:19절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의 필요도 알고 계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구할 때에는 반드시 허락해 주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세 가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네게 준 시간을 어떻게 썼느냐? 네게 준 돈을 어떻게 썼느냐? 그리고 네게 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느냐?”입니다. 웨슬리는 ‘이 세 가지를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각 사람이 자신에게 맡겨진 재능으로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하여 반드시 보상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이 항상 주어집니다. 우리는 지금의 삶에서의 보상뿐만 아니라 마지막 보상을 기대하면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좋은 상급을 받으시고 또 예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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