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회복을 위한 Tip3-전적신뢰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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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9-02 17:07
*** 삶의 회복을 위한 Tip3-전적신뢰 / 마태복음 21:18-22
마태복음 21:18-22,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회복을 위한 중요한 요소 세 번째는 ‘전적 신뢰’입니다. 첫 번째는 ‘이해와 용서’라고 했는데, 이는 사람과의 관계 회복이며, 두 번째는 ‘회개와 죄 사함’이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이 시간 세 번째의 ‘전적 신뢰’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 나타나는 통로’입니다. 전적(全的) 신뢰(信賴)라는 말은 ‘하나님을 100% 완전하게 믿고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쉽게 사용하는 만큼 생활 속에서 실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에게 이루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통로로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는 것을 꼽습니다. 남 유다 4대 왕인 여호사밧이 아람과의 전쟁을 할 때에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했던 여호사밧 왕은 거대한 아람군대를 보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으며, 그의 백성들에게도 신뢰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 개입하셨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의 삶에 큰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공생애를 마무리 하시는 마지막 예루살렘 성 입성의 이야기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라고도 하는 이 말씀은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의 내용과는 담고 있는 의미가 다르게 전개가 됩니다. 마태복음에는 무화과나무가 즉시 마른 이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 속에 성전청결 사건을 넣어서 열매 없는 예루살렘 성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12-25절에 기록된 말씀에는 아침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베다니로 가셨고, 다음 날 아침, 제자들이 어제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보았고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이 내용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 성전과 사람들을 의미하며, 심판적인 선언은 목적을 상실한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이 저주가 실현되어서 결국 40여년 후인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로마군대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과 사람들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의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믿음과 신뢰에 대한 말씀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마태복음 말씀을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여행의 종착지인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실 마지막 주간 월요일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첫 날,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일을 하시고, 가까운 마을인 ‘베다니’에서 쉬셨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중에 길 가에 있는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배가 고프신 예수님이 열매를 기대하면서 나무를 살피셨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서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고 심판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렸습니다. 이 일을 보고 있던 제자들이 그 신기한 광경에 놀라서 물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금방 말라버렸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믿음과 기도에 대한 능력’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 전적 신뢰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말을 잘 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떻게 100% 믿고 의지하는 것인지를 이해조차 잘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심을 확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세상의 일들 특히 내게 관계된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의식주 생활을 비롯하여, 사람을 만나는 일, 직장이나 사회에서 일하는 것, 사회와 국가적인 모든 일, 세계의 모든 일, 심지어 가뭄이나 홍수, 모든 천재지변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욥기 38장부터 41장까지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행하시는 모든 자연의 일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중 41:11절에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의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는 선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33:2절에서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선언하십니다. 히브리서 4:2절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우리의 삶에 유익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믿는다.’말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적인 믿음이 아니라 과거적인 믿음 즉 성경말씀을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믿으며,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과 그 행하신 일들은 믿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반쪽짜리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전적신뢰는 성경 안에서의 믿음이 아니라 그 말씀이 지금 내 삶에서도 역사하시고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매 주일 듣는 설교나 읽는 성경말씀을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 생활 속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세상의 강연을 듣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겔 33:30-31절을 봅시다.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형식적인 신앙인에 대한 탄식입니다. 이러한 삶의 형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25절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전적 신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 예로, 우리가 사용하는 교통편이 ‘사고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그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어느 백화점, 어떤 건물에 들어갈 때에도 예전의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그 건물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버스나 열차,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은 안전하다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는 이 건물이 안전하다.’고 믿으면서도, 어떤 불안감 때문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는 실재로는 그 건물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결코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안해하는 것이나 두려워하는 것, 염려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작정하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조심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42:15-17절을 봅시다.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16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 신뢰하는 삶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 목사는 반 나치운동을 벌였습니다. 본회퍼 목사는 1943년 나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2년간 수감생활을 하다가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5월에 사형 당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자유는 불의와 타협한 안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면서 옳은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신뢰하는 삶이란, 본회퍼 목사처럼 극심한 박해나 생명의 위기 속에서 혹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했던 에스더.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당신의 우상에게 결단코 절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이스라엘 군대를 능욕하던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장수를 향하여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소리치며 물맷돌을 들고 나갔던 소년 다윗. 예수님의 옷만 만지고서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혈루병 여인. “말씀만 하셔도 하인의 병이 낫겠습니다.”고 고백한 백부장. 등등.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과 박해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실 것임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30:15절에서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회복되는 진정한 능력’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란,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37:5절에서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고 하셨으며, 잠언 16: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맡깁니까? 사무엘상 1:17-18절입니다.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의 이야기입니다. 한나는 자신이 했던 기도에 대하여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는 말씀이 한나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내가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 내가 소망하는 것을 하나님께 믿음으로 아뢰고 그 말씀대로 이룰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본문 21-22절의 예수님 말씀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기도로 맡긴 것에 대하여 다시는 염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다 막혀도 하나님을 향한 길은 열려있습니다. 우리의 주인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