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회복을 위한 Tip2-회개와 죄사함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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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8-26 14:04
*** 삶의 회복을 위한 Tip2 회개와 죄사함 / 사도행전 2:37-42
사도행전 2:37-42,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 ‘삶의 회복을 위한 Tip’ 두 번째 주제는 ‘회개와 죄 사함’입니다. 우리의 영과 육신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회복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이해와 용서’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잘못을 용서받는 것은 회개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인 회개와 죄 사함은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와 용서, 화해는 사람과의 관계이며, 회개와 죄 사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본문 38절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 2:5절에서 에베소교회에게 경고하시기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2:16절에서는 버가모교회에게 경고하시기를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회개를 통한 죄 사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초가 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담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본래의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셨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절기인 오순절(칠칠절, 맥추절)이 되었을 때, 성령께서 불꽃처럼 제자들에게 강림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오순절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그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성도의 수가 삼천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첫 걸음은 회개를 통한 죄 사함임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을 입었다.’는 증표입니다. 회개와 죄 사함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 회개가 왜 중요합니까?
회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요한일서 1:5절을 봅시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죄는 어둠이기 때문에 빛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7절을 봅시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어두움 즉 죄를 씻어내는 것이 회개이며, 회개를 통해서만 빛 가운데로 행할 수 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빛 가운데로 행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로 행하는 것은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그리고 빛 가운데로 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으며 오히려 징계가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매일의 삶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발을 씻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면 몸을 씻듯이 말입니다.
누가복음 13:1-5절을 봅시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살해당한 갈릴리 사람들이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대단히 심각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회개는 우리의 영의 생명뿐만 아니라 육신의 삶에도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확실한 말씀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또 회개해야 합니까?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매일의 회개는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영적 청결제이기 때문에 잊지 않고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그 예로,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마지막 유월절 식탁을 앞에 두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베드로에게 이르렀을 때에 베드로는 죄송스러운 마음에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라고 거부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는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회개의 필요성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부분을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목욕한 자”라는 말씀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첫 번째 죄 사함은 ‘원죄에 대한 죄 사함’입니다. 원죄란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를 믿어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 원죄가 씻어져서 거듭나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원죄는 씻어졌지만 매일 삶에서 짓는 죄까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매일의 죄를 ‘자범죄’ 혹은 ‘고범죄’라고 합니다. ‘발을 씻는다.’는 것은 이 자범죄를 씻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19:13절에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지만 세상에 살면서 매일 마음으로, 입술로,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불순종하는 죄를 끊임없이 저지릅니다. 이 죄를 씻어내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발을 씻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 어떻게 회개해야 합니까?
교회에 성실하게 봉사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마음에 늘 걸리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일을 하다가 하나님께 바쳐진 쌀 한 자루를 자신이 가져 간 것입니다. 이 죄책감이 여인의 신앙생활을 어둡게 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도 잘 느끼지 못하는 중에 기도나 모든 신앙생활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주일에 쌀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집회 중에 모든 성도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사실 이 쌀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인데 제가 썼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또 한 여인이 나와서 ‘남의 집의 계란 한 개를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가져왔다.’고 고백했고, 이어서 서점을 경영하는 남자 성도가 ‘자신은 선교사의 집에서 성경책 한 권을 말없이 가져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서 온 교회에 회개 운동이 일어났고 마을 전체가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마을은 콩고의 웸바라는 마을입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대 부흥 운동으로 기록된 원산 대부흥운동과 이어지는 평양 대 부흥 운동에 이르는 부흥의 역사는 모두 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원산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시기(1903∼1906년)는 한국에서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지 20년이 되었지만, 기대했던 선교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1900년의 중국 의화단사건 여파로 선교사 배척 분위기가 확산되어 선교사들이 실망과 위기를 느끼던 때였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도 1901년 신축년 대기근 이후 민중의 경제적 파탄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1904년의 러일전쟁을 앞두고 정치적 불안도 가중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정치사회적 불안과 신앙적 위기가 점증되던 시기에 원산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선교사들이 먼저 회개를 시작했고, 선교사 사경회를 마친 다음 주일예배 때 하디 선교사는 한국인 회중 앞에서 자신의 교만과 실수를 공개적으로 자복했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본’이 되어 한국 교회에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교회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본문말씀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시작도 회개를 통한 죄 사함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개해야 합니까? 누가복음 3:7-14절에 답이 있습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이 말씀의 요지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생활을 동반해야 합니다. 마음의 생각으로나 입으로 만의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예를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을 방문했을 때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을 방문했을 때 삭개오는 자신의 회개의 표시로 재산을 내어놓았습니다. 누가복음 19:8-9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렇게 생활을 동반하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며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고 은혜를 더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박물관에는 우스꽝스러운 조각상이 있습니다. 조각상의 주인공은 로마 신화 속의 제우스의 아들 ‘카이로스’인데 ‘기회의 신’이라고 부릅니다. 앞머리는 머리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이고,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발에는 작은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처음 보는 순간 웃음이 터지지만 이 조각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고 합니다. 그 설명은 이렇습니다.
“앞머리가 많은 이유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지 못하게 하고 발견했을 때는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인데요. 그의 이름은 바로 ‘기회’입니다. 왼손에 있는 저울은 ‘기회가 왔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빨리 결단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회개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에서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심판 주로 세상에 다시 오시기 전, 지금이 회개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기회는 지나고 나면 잡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일서 1:9절에서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약속을 믿고 매일의 회개와 생활 속에서의 진정한 회개로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삶에 충만한 준비된 행복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