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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현주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574회 작성일 2021-04-11 22:03

*** 내 삶의 현주소 / 고린도전서 10:1-11

 

 고린도전서 10:1-11,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 들어가는 말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일대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사는 동안에 많은 유혹과 시련의 시험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혹과 시험을 믿음으로 이겨내지 못하여 여러 가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징계는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의 훈련이었습니다. 레위기 20:24절입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이루어주시기 위하여 약속의 땅에 적합한 신앙의 훈련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며 시험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 현실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겸허하고 성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본보기라고 하십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유대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야곱을 거치면서 야곱의 열두 아들과 그 자손들 75명을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유대민족은 애굽에서 430년을 지내면서 200만 명이 넘는 큰 민족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큰 능력과 기적으로 유대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광야로 들어서는 유대민족을 뜨거운 햇볕과 밤의 추위로부터 보호하시려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를 뒤로 하고 홍해를 가르셔서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아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매일 신선한 만나를 내리셔서 먹이셨습니다. 이 사실이 본문 1-4절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광야를 행진하던 그들이 시내 산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과 계약을 맺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시면서 이것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율법의 대표가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 율법을 지킴으로서 유대민족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출발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보이는 모압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땅을 탐지하도록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이 불신앙적인 보고를 했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이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그들은 다시 광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38년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하며 불순종한 사람들이 다 죽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훈련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살면서 우상숭배와 음행과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불순종했던 사람들이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 사실이 본문 5-10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본보기라는 것은 우리도 그들과 같이 하면 똑같은 결과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자리가 어떠했습니까?

 

고린도교회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분열이었습니다. 당시의 지도자들이었던 바울, 베드로, 아볼로를 추종하는 파들이 생겼으며, 심지어 그리스도 파까지 생겨났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자신에게 세례를 준 지도자를 추종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일의 심각성을 알고는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출애굽 때의 일로 설명하며 가르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로 가는 입구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염려하며 근심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길을 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난 길로 지나면서 물이 벽처럼 서 있는 신기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물 가운데로 지나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 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받은 세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지나면서 옛 삶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지금까지 애굽의 종노릇하던 생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고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그 표시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로마서 6:3-4절(공동번역)입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닙니다. 새벽이면 이슬처럼 내리는 만나를 먹었으며, 반석을 터뜨려서 주시는 물을 마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신령한 음식이며 신령한 음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을 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거대한 성만찬에 참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입니다. 결코 분열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떠나는 마음의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분열은 우상숭배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을 언약을 위하여 40일 동안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지켜야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산 아래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은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아론에게 요청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 앞에서 뛰놀며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이 일로 인하여 3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출32장). 두 번째 분열은 육신적 쾌락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이르렀을 때에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압 여인과 음행을 했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육신의 간음이 아니라 영적인 간음이었습니다. 모압 여인들은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청했고, 함께 절하고 음식을 먹으며 쾌락을 즐겼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염병이 돌아서 하루에 이만 사천 명이 죽었습니다(민25장). 세 번째 분열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이 호르산을 지나서 에돔 평원을 지날 때였습니다. 돌산의 거친 길과 메마른 사막 길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백성들은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여기는 음식도 없고, 물도 없고, 이 박한 음식에 질렸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적을 수없이 체험하고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시험했던 것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불 뱀을 보내셔서 원망한 모든 사람을 죽게 하셨습니다. 네 번째 분열은 원망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한 일은 수없이 많습니다. 특히 바란 광야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가나안을 앞에 두고 건너가야 할 때에 백성들은 정탐꾼을 보내어 미리 알아보자고 제의했습니다. 정탐꾼들은 ‘그 곳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하면서 증거물로 가지고 온 과일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곳의 사람들은 거인들이며 어마어마한 군사력과 든든한 성벽이 있어서 점령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은 통곡했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출애굽 때에 20세 이상이었던 모든 사람이 죽도록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해야 하는 징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인도함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하는 마음의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의 현주소를 살펴봅시다.

 

과거 광야의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시험했던 악한 영들은 오늘에도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합니다. 악한 영들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교회, 성도의 가정, 그리스도인 개개인을 시험하고 대적합니다. 지금의 온 세계와 한국교회를 보십시오. 전염병이라는 도구로 세계를 분열시키며 서로 대적하게 하고, 교회를 두려움과 염려와 원망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하는 분열을 일으키게 합니다. 악한 영들은 각 사람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혹과 시험으로 그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특히 교회를 분열시키고, 성도들의 삶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가도록 유혹하고 부추깁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7절(공동번역)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악한 영들은 성도가 세상의 환경 때문에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원망하는 통로를 타고 심령에 침투합니다. 악한 영들은 이러한 사람의 심령의 불안감을 더욱 부추기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분열되고 멀어지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도 찬송도 어렵게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보다 현실의 어려움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보배로운 것은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보배롭고 귀중한 것일수록 얻기가 힘듭니다. 보석들을 깊은 광맥에서 캐어내듯이 말입니다. 인생의 보배도 깊은 곳에서 캐어낼 수 있는데 그 깊은 곳이 ‘고난’입니다. 영국의 저술가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인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할 때 인간은 하나님께서 양심을 통해서 속삭이시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보내시는 것이다. 고난은 '인간의 잠든 감각'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큰소리이다.” 그래서 시편 119:71절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지금 삶의 자리가 전염병과 경기침체, 앞날의 불투명함으로 힘들고 두렵고 염려가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을 거울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실패하는 원인은 하나님을 떠나는 마음의 분열에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생활에서 세상이나 육신의 환경 때문에 분노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걱정하고 염려하고 원망하는 자리를 살펴서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챨스 스펄젼 목사님은 “유혹에 대하여 ‘아니오(no)’라고 말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이것이 라틴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널려있습니다. 본문말씀에서의 ‘거울’들은 바꾸어 말하면, 이런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지켜가는 것이 믿음의 길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분열로 말미암는 불순종과 불신앙의 길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부른 것처럼,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길은 반드시 그 믿음대로 이루게 하십니다. 설령 어려움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피할 길도 열어주시고 감당하게 하십니다. 본문 다음의 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지만 원망과 불평과 두려움과 염려 등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걸림돌입니다.

 

때때로 다가오는 마음의 시험과 어려움은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하여 좀 더 영광스러운 자리, 좀 더 좋은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주관하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에서 떠나게 하는 분열을 경계하고, 내 삶의 자리를 믿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믿음에 대한 보상은 성취와 보장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고 능력을 공급받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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