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기적이 필요합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433회 작성일 2021-02-14 17:29
*** 기적이 필요합니까? / 열왕기하 5:9-14, 요한일서 3:13-18
 
 열왕기하 5:9-14,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며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요한일서 3:13-18,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들어가는 말
 
사람의 눈은 앞으로만 보도록 배치가 되어 있어서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사방을 둘러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의 생각도 자신이 의도한 것 외에는 잘 느끼거나 보지를 못합니다. 여러분도 느껴보셨겠지만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작가 ‘리처드 바크’의 우화소설인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 gull)’을 아시지요. 이 소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더욱 멋지고 값진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거부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야기입니다. 비좁고 먹을 것도 없는 난도에서 먹이 다툼을 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 두려워 현실에 안주하던 괭이갈매기들의 세상입니다.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삶의 보금자리인 난도를 떠나 높이 날면서 먼 곳을 바라보며 꿈을 찾습니다. 이 우화소설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아옹다옹 현실에 안주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찾아 나서지를 않습니다. 열왕기하 본문에 등장하는 나아만이라는 아람 장군의 처음 모습도 그러합니다. 불치병을 고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고침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릴 뻔 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지금의 많은 사람들도 ‘내 생각에는’이라는 자신의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천국 본향이라는 그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꿈의 세상을 향하여 여행 중인 나그네들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곳은 세상의 육신의 삶만을 생각한다면 결코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매일의 기적이 필요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열왕기하 본문말씀은 아람 나라의 장군이었던 ‘나아만’에 대한 내용입니다. 나아만은 아람을 패망의 위기에서 건진 위대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병환자였습니다. 마침 얼마 전에 포로로 잡혀 와서 장군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유대인 소녀가 엘리사 선지자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나라의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귀가 번쩍 뜨인 나아만은 왕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왕은 즉시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편지와 보화를 주면서 이스라엘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옷을 찢으며, 아람 왕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핑계를 만들려고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기가 막혀했습니다.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그도 그럴 것이 왕이 무슨 수로 당시의 불치병인 나병을 고치겠습니까?!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왕에게 전했습니다. 나아만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문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는 사환을 통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엘리사가 너무나 괘씸했고, 볼 것도 없는 요단강에서 목욕을 하라는 말이 자신의 모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섰습니다. 그때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을 붙잡고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간청했습니다. 나아만은 생각을 바꾸어 요단강으로 향했고 자신의 나병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회복했음을 경험했습니다.
 
요한일서 본문말씀은 당시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며 교회를 큰 혼란에 빠뜨린 이단 사상과 핍박에 직면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진리를 가르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심도 깊은 내용을 전합니다. 본문말씀에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길을 제시합니다.
 
※ 생각을 바꾸면 기적이 보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중견 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할 신입사원을 채용했습니다. 한 신입사원이 처음 써서 올린 보고서를 보고 그의 상사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보고서는 철자법과 띄어쓰기가 너무나 엉망이었고, 도무지 최소한의 격식도 갖추지 못한 엉터리 보고서였기 때문입니다.
“오널 나넌 돈두 한푼도 엄는 것 가튼 사람에게 물거늘 파랏슴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물건을 판매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보고서는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물거늘 마니 파는 방버블 차자 내씀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판매 전략이 두서없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상사는 이 어이없는 신입사원의 보고서를 사장에게 올리고 그를 당장 해고시킬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다음날 사장으로부터 결재서류가 내려왔습니다. 사장의 결재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에 정말 피료한 인재가 드러왔소! 그의 복오서의 철짜에만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그가 쓴 보고서를 잘 일거보고 당신들도 그대로 따라서 물거늘 마니 파는 방버블 연구하시오. -사장-"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추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역설적인 진리’로 표현된 곳이 많습니다. 즉 일반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마태복음 23:11-12절을 봅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라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나아지려면 강하고 많이 알고,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식에 모순되게 말씀합니다.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하고, 섬김을 받으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팔복이라고 부르는 마태복음 5:3-12절의 내용도 역시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통하는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의 삶도 경험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을 내 생활 속에서 경험하려면 세상적인 사고방법이 아닌 영적인 사고방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도 처음에는 세상적 사고방식으로 통용적인 생각뿐이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이러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나아만이 자신의 사고방식대로 화를 내고 돌아갔더라면 결코 나병에서 벗어나는 기적은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왔던 사람도 처음에는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가득차서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나무라시면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즉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며, 자신의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예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한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세상적인 사고, 세상적인 방식으로는 영적인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적, 영적인 능력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사고방식부터 영적인 사고방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까?
 
앞에서의 물건을 많이 판 영업사원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영업사원은 상품을 많이 팔아서 이윤을 많이 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사무원처럼 깔끔한 보고서보다는 물건을 많이 파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사의 ceo는 양식에 잘 맞춘 깔끔한 보고서에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했다는 보고서보다는 비록 양식에 맞지 않고 철자가 틀렸더라도 물건을 많이 팔았다는 보고서를 더 좋아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엉뚱한 곳에 집착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목적하는 것에 합당한 사고방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적인 환경에 길들여진 사고방식은 웬만해서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예컨대 일본사람들은 전통과 예를 중요시하여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인 도장문화와 외식적인 겉치레 예법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세상은 디지털 방식을 넘어 스마트 시대를 펼치고 있는데 그들은 아직도 도장과 팩스, 외식적인 삶의 방식으로 발전을 멈추어 버려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정부 차원에서 과감하게 도장문화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반발로 무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해묵은 사고방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으며, 이러한 옛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발전도 기적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5:38-39절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이는 ‘영적인 새로운 삶을 위하여 오래 된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39절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은 삶의 관성법칙에 따라서 자신이 지금까지 좋아하고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분명히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의 방식, 생각의 방향을 바꾸려면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내 삶이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세를 쫓아 돈을 모으고, 인맥관계를 넓히고, 학식을 쌓는 것이 목적이라면 결코 영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뀔 수 없습니다. 내 목적이 부활의 삶, 영원한 생명의 삶을 목적으로 할 때 내 생각의 틀도, 삶의 방향도 바뀌게 됩니다. 아무리 ‘매일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깨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목이 터져라 강조하더라도, 내 사고방식이 세상적이라면 한 두 번 하다가는 멈추게 되어 결코 계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22-24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하십니다. 내 삶의 목적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바뀌면 이렇게 마음이 새롭게 되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영적인 새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삶이 영적인 새로운 삶으로 전환되면 놀라운 역사와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영적인 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요한일서 본문말씀입니다. 영적인 새로운 삶은 그 중심이 ‘사랑’입니다. 본문 14-16절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랑은 가장 가까운 부부사이, 형제사이, 가족, 일가친척, 영적인 가족인 성도, 동료, 이웃 등. 동심원적으로 넓혀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한 표현이며 실천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 말씀대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관용하고 이해하고 섬기도 봉사하는 실질적인 사랑의 행위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이 없는 삶으로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제가 목회자로서 오래도록 깊이 고민하면서 의도적으로 실천하기를 힘썼던 것이며 지금도 힘쓰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내 삶을 바꾸면서부터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분에 넘치도록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를 고민하게 했던 말씀은 요한일서 4장의 내용입니다. 특히 20절 내용인데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진실한 사랑으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 삶의 목적을 부활의 삶,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삼고, 진정한 사랑의 실천으로 내 생각의 틀도, 삶의 방향도 바꾸어서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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