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되는 사람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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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2-02 20:28
*** 복이 되는 사람 / 창세기 12:1-45, 신명기 11:26-28
창세기 12:1-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신명기 11:26-28, “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 들어가는 말
이 시간에는 말씀에 들어가지 전에 두 가지의 통계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첫 번째 통계는 미국의 카네기재단이 사람들의 직무수행 능력에 대하여 통계조사를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직무수행상의 성공에 기여하는 공헌정도가 기술적인 지식은 15%정도이며, 인간관계 기능이 85%”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통계를 보듯이 보통 사람들이 직장생활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원인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IBM 회사는 40시간의 종업원 교육훈련 중에 32시간을 인간관계 훈련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 통계는 ‘하버드 대학의 직업지도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것입니다. 조사 내용은 “지금 현재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행복의 조건을 한 가지만 든다면 어떤 것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설문조사결과 가장 많은 대답은 '인간관계가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통계에서 보듯이 사람의 사회생활 중에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인간관계’가 성공의 중요한 열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공적인 삶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열쇠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이 대충 짐작하듯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지금까지 전한 많은 하나님의 말씀들 중에 복에 대한 말씀은 전부가 ‘복을 받거나, 행복을 누리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는 복을 받는 것을 넘어서 ‘나 자신이 복이 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복을 받는 것, 행복을 누리는 것과 ‘복이 되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어떤 행위를 함으로서 받게 되는 것’이지만, ‘복이 된다는 것은 내가 복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게 되고, 행복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간의 두 부분의 본문말씀에서 “너는 복이 될지라.” “복이 될 것이요.”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복이 되는 사람의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이 되는 조건이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창세기 본문말씀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셔서 선민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자 하시는 계획을 기록합니다. 아브람의 아버지였던 ‘데라’의 시대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옛 도시였던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역시 데라의 시대에 그 가족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유프라테스 강 북쪽의 상업도시인 하란에 정착하게 됩니다. 아브람이 하란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택한 백성의 시조로 삼으시고 가나안 땅으로 옮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본문 2-3절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하신 최초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아브람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을 통하여 전수되어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신명기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후 가나안 땅을 앞에 두었을 때에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 40년을 지나오면서 무던히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다시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복이 될 것이지만, 거역하여 우상을 따르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 말씀들의 의미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 생사화복(生死禍福)은 모두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란의 민화(民話)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테헤란의 죽음(Death in Teheran)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페르시아에 사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권세 있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하인과 함께 정원을 거닐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하인이 비명을 지르며 주인에게 말합니다. “주인님, 방금 죽음의 신과 마주쳤는데 그가 저를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인은 주인에게 ‘주인의 빠른 말을 빌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말을 빌려주면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도착할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가겠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승낙하고 자신의 말을 빌려주었습니다. 하인이 허급지급 말을 타고 떠난 후 주인은 집으로 발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죽음의 신과 마주쳤습니다. 주인은 그 죽음의 신에게 따지며 물었습니다. “어째서 그대는 나의 하인에게 겁을 주고 위협까지 하는가?” 죽음의 신이 대답합니다. “저는 그를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 밤 테헤란에서 그와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아직도 그가 이곳에 있기에 저는 단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이야기에서도 ‘생사(生死)는 하늘에 달렸다.’라고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죽음을 피해보려 하지만 하나님의 결정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 139:7-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 인생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생사화복은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인생이 진정한 복이 되기를 원한다면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복이 되는 사람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복을 받는 것과 복이 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본문 3절에서 설명하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나뭇단을 쌓아두고 그곳에 불을 붙이려면 다른 불을 가져다가 붙여야 합니다. 이것은 복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불이라면 다른 불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히려 불을 필요로 하는 곳에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이 되는 사람입니다.
생사화복(生死禍福)은 하나님께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봅시다. 신명기 26:16-19절입니다.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요약하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면 보배로운 백성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사람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명기 30:19-20절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사 거주하리라.” 생사화복은 하나님 권한이지만, 생사화복을 선택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있습니다.
※ 복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내용을 명확하게 설명하신 곳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9-10절에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은 그 말씀대로 생활 속에서 순종하여 행하면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두고 ‘주님과의 동행’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복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 내용을 기억하시고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던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창세기 39:2-5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이것이 복이 되는 사람의 삶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요한복음 15:7-8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쉬운가요?!’ ‘말이 쉬워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고 하지만 보이는 것도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압니까?’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는 원천적인 복, 즉 하나님께서 친히 복이 되어주신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우리 옛 말에도 ‘쉽게 얻은 복은 쉽게 나간다.’고 했으며, 사자성어에도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no cross no crown(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쉽다. 어렵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복의 길이든지 화의 길이든지 생명의 길이든지 죽음의 길이든지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본문을 봅시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이 두 길을 두시고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생명과 복을 선택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창세기 본문 3절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내가 복 그 자체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고 우리의 삶을 그 진리에 맞추는 것이 이 땅에서 가질 최고의 행복이 됩니다. 고사성어 중에 ‘부중지어(釜中之魚)’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솥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중국 한나라 때에 광능군의 태수가 된 ‘장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수가 부임해 보니 관내에 백성을 괴롭히는 도적 떼가 말썽이었습니다. 태수는 결심을 하고 도적 떼들이 있는 산채로 찾아가서 두목을 만나 인간의 도리로 설득을 했습니다. 태수의 말에 도적의 두목이 깊은 감동을 받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떼를 지어 도적질하므로 목숨을 이어왔지만 그것은 마치 부중지어(釜中之魚)와 같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압니다.”
라고 하면서 생활을 청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이제 곧 삶아져서 먹힐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는 물고기’처럼, 어리석은 인생을 비유합니다. 즉 ‘자신이 처한 입장이 어떠한지 알지도 못한 채 한가롭게 노니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인생의 비극입니다.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에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미련함이며 어리석음입니다. 모쪼록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성실하게 실천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