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참 생명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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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1-17 22:24
*** 세상을 이기는 참 생명 / 요한일서 5:1-12
요한일서 5:1-12,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 옛 속담에 ‘사람은 백지 한 장의 앞을 못 본다.’고 했습니다. ‘방문은 종이 한 장을 바른 것에 불과하지만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문밖의 일을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은 앞일에 대하여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지금 온 세상이 이러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pandemic 사태가 1년을 넘어서면서 전 세계 감염자가 220개 나라, 91,594,372명(일일 확진자, 703,004명), 사망자 1,962,217명(일일 사망자 17,469명)이 나오면서 그야말로 세기적인 재앙의 시대입니다. 게다가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계를 공산화하려는 좌파들이 거대한 미국까지 뒤엎으려고 하면서 세계가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전도서 7:14절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암울함으로 각 나라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염병 사태로 생활방식이 바뀌면서 기업들이나 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불황으로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정부의 시책으로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때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교회들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도 분명히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는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헬렌 켈러’여사를 아시지요? 많은 사람들이 헬렌 켈러에 대하여는 잘 알지만, 헬렌 켈러를 키워 낸 ‘앤 설리반’여사는 잘 모릅니다. 헬렌 캘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설리반은 그런 사람을 가르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켈러를 가르치는 것은 오직 한 길, 감각 기관 밖에 없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표현하면서, 오랜 고난 끝에 결국 말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앤 설리반은 헬렌 켈러를 가르치면서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은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Keep on beginning and failing).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처럼 승리는 단 한 번의 시도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와 고난의 난관을 뚫고 뜻을 이룰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사람만이 승리의 기쁨을 안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24:13절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암울하고 혼란스럽고 힘들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세상을 이기며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요한일서는 이서, 삼서와 함께 사도 요한의 편지입니다. 아마도 특정한 교회에 보낸 편지라기보다는 당시 이단사상으로 혼란을 겪는 소아시아의 모든 교회에 순회용으로 보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편지를 쓴 시기는 90년 경 요한복음을 쓴 이후 에베소에서 기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입니다. 요한일서의 특징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사랑’이라는 주제를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문장 자체는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표현했지만, 내용은 깊은 신앙의 사람들도 그 의미를 충분하게 찾지 못할 정도로 깊이기 있습니다. 특히 4:7-8절인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는 말씀은 쉽지만 그 깊이를 다 이해하지 못할 진리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불신자나 초신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진리를 아는 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복음과 도덕의 진면목을 가장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어서 요한복음과 함께 신약성경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사도 요한도 이미 나이가 많아서 편지를 읽는 사람들을 마치 자기 아들 같이 생각하면서, 신앙의 아버지의 권위와 사랑으로 가르칩니다. 그 내용은 영적, 도덕적인 것에 관한 것인데, 빛과 어두움, 진리와 거짓, 사랑과 미움, 생과 사,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랑과 이 세상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아들과 악마의 아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등등, 이 둘을 대조하면서 올바른 진리를 따라야 함을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여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에게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이단이나 환경에 미혹되지 않도록 진리와 참 생명 안에서 살도록 가르칩니다.
※ 세상을 이기는 길은 참 생명 안에 사는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리고 11-12절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길이 참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참 생명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이기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힘쓰고 애쓰는 모든 것이 결국은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승리나 성공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승리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자는 월계관을 쓰게 됩니다. 경주자들은 그 월계관을 쓰려고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견뎌내며 훈련합니다. 마지막 승리가 선언되고 월계관과 함께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 월계관도 영광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해주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성공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오직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승리는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육신이 사는 생존 경쟁에서 승리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세상의 주관자인 어두움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6: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므로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인생의 모든 삶에서 승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영적인 군사들입니다. 고린도전서 9:25-27절에서 이러한 성도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맞지 않을 때에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에게 큰 손해를 끼쳤거나 나를 무척 괴롭게 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서는 미움이 일어나고 자기가 나에게 한 대로 갚아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해집니다. 법적으로 해서라도 변상을 받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는 말씀도 생각나고,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롬 12:19-20)는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꼭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세상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많은 성도들이 세상과 신앙 이 둘 사이에서 고민을 합니다. ‘사랑을 따르자니 친구가 울고 친구를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옛날 신파극에서 나오는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고민도 이러합니다. ‘세상을 따르자니 영의 생명이 걱정되고 그렇다고 신앙을 따르자니 세상의 삶이 고민스럽게 되는’ 이런 현상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13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본문 앞쪽의 2:15절에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6:6-8절에서는 이렇게까지 말씀합니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참 어렵지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온 세상이 혼탁하고 그리스도인이 욕을 먹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 어려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24-25절입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도대체 답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본문말씀에서 그 해답을 제시하십니다. 본문 3-4절과 11-12절을 이어서 읽어봅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손해와 어려움을 당하고 욕을 먹으면서도 사랑으로 행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게 여겨집니다. 정말이지 우리의 힘으로 하려면 너무나 힘들거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답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즉 세상을 이기는 것은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다만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말마따나 ‘사랑이 밥 먹여주나!’싶지만, 사랑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가정실습’이라고 했는데, 그 후에는 ‘효도방학’이라고 하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일손이 딸리는 농번기에 자녀들이 부모님을 돕도록 하는 취지였습니다. 어느 가정에 도시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효도방학’이 되어 아버지의 일손을 돕기 위해 시골집으로 왔습니다. 마침 경운기로 밭고랑을 타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경운기를 맡기면서 씨를 뿌릴 수 있도록 밭고랑을 타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서툰 솜씨로 고랑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한 고랑을 다 타고 돌아보니 고랑이 삐뚤빼뚤 엉망진창입니다. 아버지가 탔던 고랑은 간격도 일정하고 바르게 타졌는데 자신의 고랑은 술 취한 사람이 해놓은 것 같았습니다. 이를 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뭘 보고 고랑을 탔느냐?” 그러자 아들은 ‘경운기 앞머리랑 땅을 보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얘야, 경운기는 이리저리 흔들리기 때문에 땅도 바르게 보이지 않는단다. 경운기 머리 쪽을 저기 밭 끝에 있는 나무에다 맞추어보렴. 목표가 흔들리지 않아야 고랑을 바르게 탈 수 있단다.”
세상에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나 믿음이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소돔성의 롯과 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데, 몸은 아직 죄악의 땅 소돔성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를 믿지만, 세상에 미련이 남아서 아직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서는 결코 인생의 승리자나 참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우리 모두 끝까지 진리를 따르는 사랑으로 행복한 승리자의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