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천상의 언어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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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11-03 15:43
*** 감사, 천상의 언어 / 골로새서 3:12-17
골로새서 3:12-17, (공동번역) “12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뽑아 주신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새롭게 하여 13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14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17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 들어가는 말
세상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이 생명체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소통을 합니다. 심지어 식물들도 꽃이나 향기, 독특한 물질을 분비하여 소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특혜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탁월한 것이 소통의 도구인 언어(言語)입니다. 물론 몸짓이나 표정으로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언어야 말로 훌륭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소통의 도구로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나타내고 전달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환경이 그러해서 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의사표현이 과격해지고 부정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사람의 표현은 다른 사람을 분노하게 하기도 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기도 합니다. 잠언 12:18절에서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고 했으며, 18:21절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기분이 좋아집니까? 아마도 많은 표현들이 있겠지요. 자기를 인정해주는 말,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의 말,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는 말 등.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말과 표현들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감사는 사람들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기쁘게 해드리는 천상의 언어입니다.
‘윌리엄 로우’라는 분은 ‘엄숙한 부르심’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성자는 기도를 많이 했다든가, 금식을 많이 했다든가, 혹은 자선을 많이 베풀었다든가 한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됨됨이나 신앙의 깊이를 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신앙의 깊이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기준은 그 사람의 감사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 좋고 신앙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외식적인 신앙에 불과합니다. 비록 가난하고 어렵게 살지만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는 사람은 주님을 진심으로 신뢰하는 것이며 사람 관계에도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에는 감사를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에서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근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신 세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무교절), 칠칠절(맥추절), 장막절(추수감사절) 이 세 절기입니다. 이 세 절기는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해방시키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이며, 맥추절은 연초에 밀과 보리를 추수하고 감사하는 것이며, 장막절은 일 년의 마지막 추수를 한 후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4:2절에서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 감사는 그리스도인 삶의 기본입니다.
본문말씀의 내용은 짧지만 그리스도인의 성품 중 중요한 것은 모두 들어 있습니다. 거룩함, 긍휼,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납과 용서, 사랑, 평강, 지혜, 말씀, 가르침, 권면, 찬송과 찬양 등.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가 ‘감사’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러한 성품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셔서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5:10절에서는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나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는 기초입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 뜰에 난초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난초를 무척 아꼈습니다. 어느 날 그 난초 사이에 두꺼비가 한 마리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주인이 나와서 난초에 물을 주면서 잎을 닦아주고 쓰다듬기도 하며, ‘참 예쁘구나.’ ‘잘 자라라.’ 등. 애지중지 하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두꺼비는 너무 부러운 나머지 난초에게 말합니다. “나는 목이 말라도 누가 물 한 모금 주는 이가 없고, 뱀은 날마다 나를 먹으려고 쫓아다니고, 어디를 가나 천대만 받는 천덕꾸러기인데 너는 무슨 팔자가 좋아서 주인이 그렇게 곱게 길러 주고 사랑해 주느냐? 너는 참 행복하겠다.”
그 말을 들은 난초가 대답합니다.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는 발이 없으니 목이 타도 주인이 물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소가 와서 나를 뜯어 먹어도 도망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데 너는 발이 있잖니? 그래서 너는 자유스럽게 목이 마르면 가서 물도 마시고, 도망가고 싶을 때는 도망도 갈 수 있지 않니?” 그 말을 들은 두꺼비는 비로소 자기에게는 난초에게는 없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 옛말에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욕심을 표현한 말이겠지요.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좋은 것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에 질투를 느끼고 욕심을 내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있는 좋은 것은 보지 못하고 남의 것만 부러워하면 도저히 감사를 할 수 없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아시지요? 뇌성마비를 앓으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그 분이 지은 시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라는 시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시에 최덕신 선교사가 곡을 붙여 복음송으로도 애창되고 있습니다. 송명희 자매의 표정을 보면 천사 같아 보입니다. 무엇이 그 중증 장애인으로 하여금 그렇게 기쁨과 감격의 삶을 살게 하겠습니까? ‘나’라는 시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 전도자로서 온갖 수모와 박해를 받아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삶이 절망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그 고난 속에서 이룩한 수많은 교회들과 복음 사역들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환경과 닥치는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근본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본문 15-17절을 봅시다.(주보에 있는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17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감사에는 왕도(王道, 어떤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한 쉬운 방법)가 없습니다. 즉 감사를 하기 위하여 어떤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느 새댁의 간증입니다.
아가씨가 꽃망울 같은 꿈을 안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첫 날 부터 남편이 술 망태가 되어서 독수공방으로 지새웠습니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남편의 버릇은 고쳐지지를 않았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고 살아보려고 해도 더 이상은 살수가 없어서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사정을 말하면서 ‘이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물었습니다. 사연을 들은 동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점심시간에 우리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우리교회 목사님이 ‘무슨 일이나 감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감사한 대로 되게 하신다.’고 하셨거든.” 두 사람은 조용한 곳으로 가서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남편, 술주정뱅이인 것을 감사합니다. 홀로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그 날 퇴근 후 남편을 보았는데, 그렇게도 보기 싫고 밉던 남편이 그리 밉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계속 감사기도 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어느 주일 아침, 새댁은 교회 가기위해 옷을 갈아입는데 남편이 묻습니다. “당신 어디 가려고?” 새댁은 ‘이 사람이 생뚱맞게 왜 이러나?!’라는 생각으로 “몰라서 물어요? 교회가요.” 그런데 남편의 반응 때문에 새댁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남편이 “나도 따라갈까?”라고 한 것입니다. 새댁은 미심쩍은 눈으로 “이 양반이 누구 약 올려요?” 그러자 “약 올리긴 정말 따라가도 될까?”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도 애 먹이던 남편이 그 날 아내와 함께 예배를 참석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행복한 모습으로 간증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범사에 감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시험적으로 한두 번 감사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보던 눈, 다른 사람과 비교하던 마음, 자신의 불행한 면만을 생각하던 것, 이 모든 것을 진정으로 하나님께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좋은 면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일회성이 아니라 내 마음에 틀로 고정되어 습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는’것은 바울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어 감사가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습관이라는 말을 영어로 Habit 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의복’ 즉 ‘옷감’을 의미했습니다. riding habit 이라고 하면 ‘승마복’을 뜻하며, habiliment 는‘옷, 복장, 평상복’이라는 뜻입니다. 즉 습관은 ‘자신이 입고 있는 인격의 옷’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 중요한 습관중 하나가 감사입니다. 시편 50:14-15절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젼 목사는 “등잔불에 감사하면 촛불을 주시고, 촛불에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면 환한 태양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감사의 습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합니다.
저는 개인 기도를 할 때에 삼분의 일은 찬양으로, 삼분의 일은 지나온 시간에 대하여 인도하시고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것, 나머지 삼분의 일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맡기는 것, 나라와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1981년 제대 후에, 주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매일의 경건의 시간을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인 ‘매일의 경건의 시간’은 이제 40년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방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밥은 굶어도 말씀과 기도를 굶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러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때문에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내가 기도를 멈추면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은혜 또한 멈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쟁 때에 전쟁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하루 종일을 하나님께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 17:9-11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이런 일은 사사 기드온 때에도 있었으며, 사무엘 선지자는 사무엘상 12:23절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감사가 더해질 때에 놀라운 능력을 이루게 됩니다.
어느 아동심리학자는 ‘하나의 관점이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이 만 번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즉 그만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하고, 환경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나만의 고유한 삶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을 따라 판결하시고 그 결과에 따라 은혜를 베푸십니다. “천재와 백치는 종이 한 장 차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불평과 감사도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보이는 현상에만 눈을 두고 있으면 불평과 원망, 짜증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깐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을 바라보면 은혜로운 감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는 우리의 모든 환경을 바꾸어 놓습니다. 시편 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천상의 언어입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매일의 삶에서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