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삶의 회복을 위한 Tip 1 - 이해와 용서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384회 작성일 2020-08-18 13:19
*** 삶의 회복을 위한 Tip 1 - 이해와 용서 / 마태복음 18:21-35
 
 마태복음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올해 자동차검사를 받으셨습니까?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일 년에 한 번은 반드시 ‘종합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사를 받지 전에 종합점검을 하게 됩니다. 오래 전에 중고 승합차를 구입해서 사용할 때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종합검사장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인 즉, 매연이 기준을 초과했으며, 소화기를 비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근처에 있는 종합정비소에서 값비싼 인젝터를 교환하고, 차량용 소화기를 구비해서 다시 검사를 받았습니다. 미리 점검을 했었더라면 얼마든지 적은 비용으로 정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검사 전에 반드시 종합정비를 먼저 받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종합점검 하여, 영적정비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동차는 불합격해도 다시 정비를 해서 검사를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한 번 불합격되면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삭의 큰 아들 에서가 장자권한을 소홀히 여겨 동생에게 팔았고 결국 장자의 축복을 동생 야곱에게 빼앗겼습니다. 이 상황에 대하여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2:16-17절입니다.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일을 깨우치시려고 ‘열 처녀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여분의 기름 즉 믿음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두 번 다시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5:10-12절입니다. “그들이 사러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하였느니라.”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은 언제 주님 앞에 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점검을 잘 하여 항상 준비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영의 상태를 점검하여 삶을 회복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첫 번째가 ‘이해와 용서’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 때에 죄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이 내용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 사회에서는 세 번을 용서하면 위대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일곱 번을 용서하면 되겠습니까?’라는 말은 정말 대단한 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발상을 뛰어넘어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당연히 ‘무제한적 용서’를 뜻합니다. 그러면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이 비유 중에서 왕의 종이 빚진 일만 달란트는 오늘의 통화가치로는 약 1조원 정도입니다. 왕은 결산을 하면서 1조원을 빚진 종을 불쌍하게 여겨 탕감해 주었습니다.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종은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자신에게 100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아마 그 기분이면 100데나리온쯤은 없는 것과 같으니 당연히 탕감해 주겠지요. 100데나리온의 오늘의 가치는 약 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종은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동료의 멱살을 잡고는 감옥에 넣어버렸습니다. 1조원과 천만 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 광경을 본 다른 동료들이 민망한 마음으로 왕에게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책망하면서 감옥에 넣어버렸습니다. 이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가 의미하는 핵심은 35절에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왜 이해와 용서가 중요합니까?
 
성경말씀에는 사람들의 모든 결과에 대하여 복과 화, 생명과 죽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경고한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30:19-20절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러면 이해와 용서는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 중에서 어느 쪽에 해당하겠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본문말씀에 있습니다. 본문 35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즉 용서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명에 관계된 필수사항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용서 없이는 하나님께 예배할 수도 없습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이 선행되지 않은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용서는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현행범인 여인을 이해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여인을 정죄하고 죽이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정죄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예수님은 정죄하고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정죄하지도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면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얼마나 모질게 정죄하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단순한 소문만 듣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겁도 없이 그 사람을 정죄합니다. 마태복음 7:1-2절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함’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받고 싶다면 내 잘못도 용서 받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 그러면 우리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기초가 되는 마음정산은 ‘용서와 화해’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기초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사람 사이의 용서와 화해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35절에서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하십니다. 즉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고서는 하나님께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14-15절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렇게 용서와 화해가 없는 마음에는 당연히 미움과 노여움과 원망이 가득 차게 되고 사탄의 무리가 둥지를 틀게 됩니다. ‘찰스.H 크래프트’ 목사님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쥐가 꼬여들 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 즉 미움, 원망, 원한, 증오, 분노, 용서 못함 등의 쓰레기가 있으면 그 쓰레기 속에 귀신들이 자리 잡고 여러 가지 문제와 고통을 준다.” 나를 원망하는 사람이 있거나 내가 원망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우리의 삶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21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3년 동안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하나님께 기근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이 사건은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던 여호수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모든 족속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이 한참일 때에 가나안 땅에 사는 기브온 사람들이 변장을 하고 이스라엘 진영에 와서 ‘자신들은 먼 곳에서 당신의 소문을 듣고 왔으니 우리 서로 불가침조약을 맺읍시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3일 후에 여호수아는 그들이 가나안의 한 족속인 것을 알았지만 이미 맺은 조약 때문에 그들을 죽일 수가 없었고,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를 여는 사울 왕이 초대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들의 민족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기브온 사람들이 있음을 불쾌하게 여겨서 그들을 학대하고 일부를 죽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이 일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원망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시대에 기근을 내리셨고 기도에 응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기브온 족속의 요구대로 사울의 자손 일곱을 처형하도록 내어주어 기브온의 원한을 풀었습니다. 사무엘하 21:13-14절입니다.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에도 회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해와 용서 화해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해와 용서, 화해라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나와 내게 관계된 사람들에게 철천지원수 같은 일을 저지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생각이 든다면 본문말씀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치심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만 달란트 보다 더 한 죄 용서함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아프게 하고 내게 잘못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100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처럼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배반이 됩니다. 본문 32-33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내가 용서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내 잘못도 용서받아 서로가 화목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회복되는 가장 기초적인 요건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인데 공감이 되어 결론으로 올립니다. 어린 꼬마가 당돌하게 선생님에게 퀴즈를 내면서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것 한 번 풀어보세요.
초등학교 4학년인 한 꼬마가 수수께끼라며 갑자기 문제를 냈습니다. “5 빼기 3은 뭘까요?” 선생님은 한참을 궁리했습니다. 넌센스 문제 같기도 하고 아니면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별의 별 생각을 다한 뒤에 “글세…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꼬마가 말합니다. “선생님, 굉장히 쉬워요. 5빼기 3은 2예요” 선생님은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꼬마는 또 물었습니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하! 이건 또 뭐야?’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 꼬마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오(5)해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3)번만 더 생각하면 이(2)해가 된다.”는 뜻이랍니다.
꼬마는 신이 나서 퀴즈를 하나 더 냈습니다. “2 더하기 2는요?” 선생님은 가볍게 알아맞혔습니다. “4지 뭐니” “맞았어요. 그럼 그 뜻은요?” 하고 되묻습니다. 또 한참을 궁리하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 꼬마는 “이(2)해하고 또 이(2)해하는 게 사(4)랑이래요.”라고 하고는 깔깔대며 뛰어갑니다.
 
이해와 용서는 사랑의 중요한 표현이며, 우리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을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17-19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 말씀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것은 이해와 용서 그리고 화목입니다. 이 삶을 이루셔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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