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상급을 믿습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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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4-28 16:42
*** 하나님의 상급을 믿습니까? / 마태복음 6:1,19-24
마태복음 6:1, 19-24,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들어가는 말
고등학생 테니스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교의 본관 진열장에 우승 트로피를 세워놓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트로피가 학교 본관 출입구에 세워져 있다면 자신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연습했고, 출전할 때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서 학교에 트로피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한 몇 년 후, 자신 앞으로 발신인이 적혀있지 않는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소포를 열자 짧은 내용의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제가 쓰레기장에서 근무하는데 쓰레기 더미에 웬 트로피가 보여서 우연히 꺼내보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적혀있더군요. 너무 아까운 것 같아 어렵게 주소를 찾아서 소포로 부칩니다.”
그 소포는 자신이 그토록 애써서 받았던 테니스 우승 트로피가 반은 부서진 채로 동봉 되어 있었습니다.
이 학생처럼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이 세운 공로와 자신의 이름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영광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화무십일홍 권무십년 (花無十日紅 權無十年, 열흘 동안 붉은 꽃이 없고, 십년 가는 권세가 없다.)’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24-25절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이 말씀처럼 세상의 화려함과 권세는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진다는 것을 세상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후서 3:10-11절을 통하여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고 묻습니다. 이는 ‘한갓 지나가는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영원한 하늘에 상급을 쌓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내가 한 일에 대한 상급을 주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습니까?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상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5장-7장에 있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말씀 중심에 있는 교훈입니다. 전체 내용은 ‘하나님의 상급’에 대한 것입니다. 이 내용 중에서 가장 중심 되는 구절이 본문 1절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 이하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 행하게 되는 구제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 금식하는 일 등.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중요한 일을 예로 제시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과 세상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기 때문에 ‘보물을 세상에 쌓지 말고 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 나라에 쌓아 두라.’는 것입니다. 즉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의 보상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영원하도록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상급에 마음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말씀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목표를 선택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이 선택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의 관점과 이해력을 대표하여 성한 눈과 나쁜 눈으로 표현합니다. 즉 보다 더 나은 것을 선택하기 위하여 좋은 눈과 같이 올바른 관점과 이해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과 세상적인 소유물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상급이 있음은 너무도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상급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1:6절을 봅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을 확정하는 예수님의 선언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상급이 있는지를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밝혀주십니다. 11-15절을 봅시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이 말씀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생명심판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에 대한 상급을 말씀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등 없이 지급되는 것으로써 ‘구원’입니다. 이 구원의 상급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 모두에게 지급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믿는 자들이 각자 행한 대로 성과급으로 지급되는 ‘상급’입니다. 이 상급을 판가름 하는 것은 앞에서 읽었던 고린도전서 3장의 말씀 중에서 “공적”과 “불”입니다. “공적”이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살면서 행한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안일하게 하면서, 쉬운 것, 손해되지 않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데, 이것을 나무, 풀, 짚으로 표현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봉사와 기도와 말씀 찬양 등 예배생활을 변함없이 성실하게 행하는데, 이것을 금, 은, 보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두 종류의 공적을 시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불입니다. 이 두 공적에 불로 휩쓸고 지나가면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금, 은, 보석이 남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처럼 공적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상급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공적을 쌓지 못했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공적이 모두 불타고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터는 남아 있습니다. 즉 상급은 없지만 그래도 천국에서 살 수는 있습니다.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도시의 노숙자들처럼, 공적이 불 타버린 사람들도 천국의 노숙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상급을 위하여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한자어로 ‘집을 염’자와 ‘놓을 방’자를 써서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의 말입니다. 하나를 잡고 있으면서 또 하나를 잡으려 하면 두 개를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이 생긴 유래를 보면 이렇습니다.
일천여년 전에 중국 송나라에 ‘사마광’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커다란 장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다급하게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을 가져와라.’며 야단법석을 떠는 동안 물독에 빠진 아이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꼬마 사마광이 옆에 있던 돌맹이를 주워들고는 그 커다란 장독을 깨뜨려버렸습니다. 당연히 장독에 빠졌던 아이는 물과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잔머리를 굴려 장독 값, 물 값, 책임소재를 따지며 시간낭비 하다가 정작 중요한 사람의 생명을 잃을 뻔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덜 중요한 일에 매달려 갑론을박(甲論乙駁) 하거나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렇게 놓치는 것이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한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생명에 관한 것이라면 낭패 정도가 아니라 절망이 됩니다. 이 상황에 꼭 맞는 말씀이 앞서 읽었던 베드로후서 3:10-11절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즉 ‘마치 도둑이 소리 없이 들어오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나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터인데,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겠는가?’라고 올바른 판단을 촉구하십니다.
그 해답을 예수님께서 본문말씀에서 제시하십니다. 본문 19-21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혹시 이 가요 중에 이런 노래를 기억하시나요? ‘미련’이라는 곡인데 가사가 “내 마음이 가는 그 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 하는 사람…” 이 가사처럼 세상 사람들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에 마음이 간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마치 바늘이 자석에 끌리듯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에 마음이 있는 사람은 증권,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재테크에 관심을 둡니다. 명예에 마음이 있는 사람은 사교 모임이나 앞장 서는 일에 관심을 둡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상급에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그러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예수님 말씀대로 어떻게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세상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더 관심을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6:16절을 봅시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조금 더 가서 8:5-6절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 말씀들은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명확하게 밝혀줍니다. 쉽게 표현해서 우리의 생활의 우선순위를 영적인 삶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하늘에 쌓는 보물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욕을 듣고 손해를 보아도 참고, 나도 부족하지만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하여 나누는 것, 주님의 사랑으로 병든 이들을 돌아보는 것, 힘들어 하는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것 등. 주님의 사랑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아름다운 보물로 하나님의 나라에 쌓여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아름다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더 관심을 가지는지 하나님의 나라에 더 관심을 가지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인터넷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미국의 한 식품회사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어느 대학교수에게 ‘특정 지역의 식품 선호도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식품회사에서는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음식과 음료를 많이 먹고 선호하는지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많이 난감했습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모르는 사람들의 냉장고를 조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지역 사람들에게 일일이 질문을 하며 돌아다니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른 교수는 그 지역의 쓰레기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교수는 자신에게 조사를 의뢰한 식품 회사를 찾아가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었습니다. 교수가 제출한 자료에는 쓰레기를 분류한 것으로 식품과 관련된 제품의 종류와 이름, 무게, 수량, 포장 등을 자세하게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과 음료는 물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식기와 조리도구까지 모든 선호도가 조사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교수는 당당히 말했습니다. “쓰레기에는 절대 거짓이 없습니다. 쓰레기를 살펴 분석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판매 연구 방법입니다.”
이 교수의 말처럼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보면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상급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이 행한 대로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과 상황을 핑계하면서 자신의 일을 변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직접 관리하시기 때문에 너무도 분명하게 아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3:9절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음식 즉 육신적인 것으로 마음이 흔들리면 영적인 유익이 없다고 하십니다. 본문 24절 말씀처럼 우리는 어차피 세상이나 하늘이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끝까지 승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