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날
***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날 / 히브리서 3:12-19
히브리서 3:12-19,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 들어가는 말
오늘 제목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날’인데, 이 제목을 들으면 대뜸 예수님의 재림, 휴거, 영생, 천국 같은 세상 마지막 때 누릴 영광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용은 이런 것과 다릅니다. 굳이 설명한다면,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 누릴 영광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11-12상 절에서, 마지막 때의 삶을 말하면서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즉 우리가 사는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날을 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오늘이라는 삶을 별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느 두 중년의 남자가 여러 지방에 출장을 다녀 돌아올 때 운전을 하던 친구가 졸리는지 좀 쉬어 가자고 했습니다. 마침 경치가 좋아서 사진도 찍고 겸사겸사 주위를 돌아보고 쉬려고 휴게실에 들어갔습니다. 휴게소 한 편에 안마기 여러 대가 있는 것을 보고, 휴식도 할 겸 안마기에 앉았습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시원한 안마를 즐기고 있는데, 곁에 한 할머니께서 “여기가 무슨 휴게소요?”라고 물었습니다. 자신도 자다가 잠시 내린 터라.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하고는 곁에 있는 초등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무슨 휴게소고?” “나도 모르겠는데예!”…!“
생각 없이 사는 세상 같지요? 혹시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없습니까? 옛 속담에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장에 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남들이 다 하는 것들을 자신도 별 생각 없이 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또는 별 의미도 없이 그냥 일하고, 그냥 즐기고, 소중한 생명의 시간을 의미 없이 소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삶의 목적이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이런 세상을 염두에 두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16 절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생명의 시간을 아껴서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부터 4:13 절까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가르칩니다. 그중에서도 본문의 내용은 그리스도께 대한 불 신앙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즉, 과거의 옛 조상들이 광야 생활에서 불 신앙으로 멸망 당했음을 되돌아볼 때, 우리도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 돌이킬 경우,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처럼 불 신앙으로 말미암는 배교(背敎)와 이에 따르는 심판을 피하는 길은, 매일 매일의 권면을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신뢰를 위하여 서로를 경고하고 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은 본문 14절의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라는 말씀처럼 확실하게 믿는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 것입니다. 그 예로, 광야세대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광야에서 멸망 당한 세대”는 두 가지 이유로 넘어졌습니다. 첫째는 마음의 완악함이며, 둘째는 불 신앙입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마지막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불 신앙은 박한 음식과 물이 없음과 험난한 길 때문에 투덜대거나 불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토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거나 그때 죽었어야 했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완악함과 불 신앙이 되풀이되어 결국 자신들의 말 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는 그러한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날은 무슨 의미입니까?
어느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늘 고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친구는 그의 사정을 듣고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자네는 삶에서 미루지 말아야 할 일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계속해서 미루는 것 같네.” “응? 그게 뭔가?”
“첫째는 빚을 갚는 일인데, 누군가로부터 받은 미소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도움 갚기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네.” “둘째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네. 자신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과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상대방이 화해의 손을 내밀기만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상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네. 생각해 보게나,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었는지 자네도 잘 알거라 생각하네.”
“마지막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지. 잘 표현한 음악은 청중에게 진한 감동을 주지만 표현하지 않고 담아두기만 하는 마음은 안타까움만 줄 뿐이지.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의 사랑은 상대방의 심장에 북소리 같은 강한 울림을 남긴다네.”
이후 그는 돌아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 가지를 잘 이행하십니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잘 실행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꾸만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19-20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하셨으니” 이 말씀처럼 우리는 바로 앞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생명의 시간은 바로 오늘, 지금이라는 순간입니다.
본문 12-14절을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이 말씀에서 14절의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라는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망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바로 그 앞의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이루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살면서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마음이 악하여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지 않도록 오늘, 지금 서로 권면하여 믿음을 끝까지 굳게 잡아라.’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로 돌아보면서 신앙을 격려하고 권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일을 오늘, 지금 하라는 것입니다.
외국을 다녀온 많은 사람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외국에 나가보니 애국자가 되더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누리던 것을 잃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지금 내 가까이 있는 가족들, 일가친척들, 친구와 이웃들, 이들을 사랑하며 살기에도 우리의 인생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웅다웅 티격태격 미워하고 싸우며, 서로를 헐뜯거나 무관심하게, 자신만을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갈수록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는 지혜롭고 잘하는 것인지를 모르지만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는 전혀 얻을 것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6:7-10절을 봅시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한 곳 더 봅시다. 디모데전서 6:17-19절입니다.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 두 말씀의 공통점은 ‘세상의 것이나 세상의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꾸준히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힘쓰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을 행하는 삶은 장래에 내가 소망하는 영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즉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을 성실하고 열정으로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날입니다. 예전에 했던 예화를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미국의 인디언 중에는 독특한 인생 교육을 하는 부족이 있습니다. 자신의 딸이 성숙하여 결혼 적령기가 되면 옥수수밭으로 데리고 갑니다. 딸에게 넓은 옥수수밭 중에 한 고랑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한 고랑을 선택하면 그 밭고랑 끝까지 가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제일 좋은 옥수수를 한 개 따면 됩니다. 규칙은 지나간 길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고, 일단 지나간 옥수수는 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앞에 있는 것만 선택해서 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옥수수를 딸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더 좋은 옥수수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 시험에서 아가씨의 대부분이 빈손으로 끝까지 오거나, 망설이다가 마지막에 와서 어쩔 수 없이 볼품없는 것을 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좋은 옥수수가 눈에 띄어도 다음에 더 좋은 옥수수가 나타날 것 같은 기대감에 지나치다 결국은 그 많은 기회를 다 놓치고 빈손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중에서라도 좋을 것을 딴 것이 볼품없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인디언들은 자신의 딸에게 남편감을 잘 고르도록 가르쳤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지금 주어진 일이나 삶의 자리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좀 더 좋은 기회가 오겠지!’ ‘환경이나 상황이 더 좋아지면!’이라는 마음으로 불확실한 내일만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최선을 다하지 않고는 내일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올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불 확실한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닙니다. 확실한 나의 날은 오늘뿐입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라고 하십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인 누가복음 16:1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라고 하시며, ‘달란트 비유’인 마태복음 25:21절에서는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라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망인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된 삶을 소망한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여 열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론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에서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면 더욱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십니다.
이 이야기로 말씀을 정리합니다.
미국의 한 신문에 “당신의 수명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라는 설문이 실렸습니다. 이에 응답자들은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을 더 벌겠다는 물질적 희망에 관한 내용보다는 이러한 응답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래요.” “그동안 못 해본 일들에 도전하고 싶어요.” “안타까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겠어요.”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1년 뒤가 될지, 아니면 10년, 20년, 30년 뒤가 될지, 아니면 바로 내일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면서도 가진 것을 절대로 놓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당신의 수명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19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인 ‘레오 톨스토이’는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장래의 행복한 삶과 영원한 영광의 삶은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날은 바로 오늘, 지금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감사의 삶으로 매일이 최고의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