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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날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825회 작성일 2021-06-14 13:13

*** 내 생애 마지막 날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 디모데후서 4:6-8, 히 3:13-14

 

디모데후서 4:6-8,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히브리서 3:13-14,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 들어가는 말

 

영화의 주제 중에는 ‘지구 종말’을 다루는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투모로우’, ‘노잉’, ‘2012’, ‘아마겟돈’ 등. 이런 주제가 많이 다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크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실 ‘종말’이라는 주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두려움과 관심거리가 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영화배우 ‘톰 크루즈’는 자신의 집이 있는 미국 LA 베벌리힐스의 대저택 지하에는 지하 벙커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지하 벙커에는 침실 2개, 운동장, 세탁실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지구 종말을 대비해 설치된 지하 벙커입니다. 이렇게 톰 크루즈처럼 핵전쟁이나 재난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 준비하는 사람들을 ‘둠스데이 프레퍼스(Doomsday Preppers, 프레퍼족, 준비족)’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재난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서도 생존을 위해 대비하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런 프레퍼 족이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프레퍼 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10-13절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세상의 프레퍼 족들은 항상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여러분은 어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디모데후서 본문은 사도 바울의 ‘회고록’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말년인 로마에서 순교하기 직전 어느 시점에 기록한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순교를 예감한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이며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했습니다. 자신은 더는 디모데를 볼 수 없음을 안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가 잘 헤쳐갈 수 있도록 편지로 헤쳐갈 일들을 가르칩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인 본문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보여주면서 디모데에게도 소망을 가지게 하며 격려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마지막 날이 어떠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즉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임할 생애의 마지막 날은 바울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며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도 생애 최고의 순간일 것임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 순간을 위하여 자신의 마지막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본문말씀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오늘’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사상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핵심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삼위 하나님께 대한 고백과 구속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고백을 생활로 연결하는 현재적인 삶인데, ‘오늘’이라는 표현은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말합니다. 즉 지금 나 자신의 신앙고백이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사상은 모든 성경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에스겔 18:21,22절입니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이어지는 24절입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현재를 보신다는 것을 나타내십니다.

 

※ 지금, 매일의 삶이 마지막 날에 대한 준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평생은 쉽고 편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힘들고 어렵고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도서 7:14절에서 지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잘되는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어서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한숨짓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합니다. 인생이 힘들 때는 “그래, 그때가 좋았지, 정말 좋았어!”라며 좋았던 순간들을 추억하면서 앞날의 희망을 품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아서 밀러(Arthur Asher Miller)’가 1949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윌리 로만’이라는 세일즈맨의 일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생의 목표는 ‘장사를 크게 하는 것,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 자기 자식들이 자기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꿈은 하나하나 깨어지게 됩니다. 먼저 직장을 잃게 되었고, 다음에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자기 자식들을 하나같이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윌리는 마침내 실망에 빠져 자살을 합니다. 장례식을 마친 무덤 앞에서 그의 아내가 오열합니다. “25년 동안 나누어 내던 우리 집의 할부금을 이제야 다 갚았는데…, 이제야 홀가분해졌는데…, 그런데 왜 하필 오늘 당신은 죽어야 했나요?” 그리고 후에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무덤에 찾아와서 말합니다. “아버지는 잘못된 꿈을 가졌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누군가를 끝까지 몰랐습니다.”

 

주인공인 세일즈맨 ‘윌리 로만’이 왜 자신의 삶에 실망했겠습니까? 아마도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생애의 목적이 정말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며 삶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 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들의 말처럼 자신이 품었던 인생의 목적을 헛된 가치관에 두었기 때문에 스스로 파멸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오셨습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삶에서는 어떤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까? 그 목표는 내 생애를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본문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생들이 진정으로 소망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줄여서 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은 것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의 삶의 방향도 분명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표를 분명하게 알고 난 후에는 예수님을 알기 이전에 최고로 여겼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애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빌립보서 3:14절이 그 목표를 말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자기 삶의 목표를 ‘예수님의 부르심과 그 상급’으로 세웠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생애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목표로 삼고 달려왔던 30여 년의 사역의 길을 마치면서 고백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자신이 세웠던 최고의 목표에 거의 이르렀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그날은 자신이 그토록 꿈꾸어 왔던 ‘하나님께 상급 받는 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날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그 극심한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목표가 분명한 사람에게는 마지막 날이 후회와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기쁨의 날이 됩니다.

 

그러면 내 마지막 날을 위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여기서는 꼭 필요한 방법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히브리서 본문을 읽어봅시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이 말씀처럼, 먼저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평가하시는 시점이 ‘현재형’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읽었던 에스겔 18:21-24절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밝히셨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평가하시는 시점이 ‘오늘’ 곧 현재입니다. 예전에 열심히 예배에 출석하고, 전도하고, 기도하고, 섬기고 봉사했던 과거의 일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이것만 좀 해결하고 열심히 하겠다.’ 혹은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좀 더 여유가 있을 때 하겠다.’ 등의 앞으로 하겠다는 결심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시간은 ‘지금’뿐입니다. 예전에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세 가지 금이 무엇인지 아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황금과 소금과 지금’입니다. 황당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마라톤 경주자가 42.195KM를 쉼 없이 달리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마지막 순간까지 쉼 없이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마지막 날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13절에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셨고, 마가복음 13:37절에서는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은 ‘내일은 어떠할지를 모르니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맡겨진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마지막 날을 위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맡겨진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중요하든지 평범하든지, 쉽든지 어렵든지 이러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최선의 경주입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중년의 두 친구가 이야기하던 중, 한 친구가 “나는 팔이 하나만 있는 변호사를 찾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가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가?!’ 라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팔이 하나만 있는 변호사라고?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두 팔을 가지고 있으면서 줏대 없이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혹은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하는 식으로 말만 많은 변호사보다는, 비록 팔이 하나만 있을지라도 묵묵히 자기의 일을 감당하는 그런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네.”

 

이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줏대 없는 변호사가 오른손으로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이라고 말하고, 또 왼손으로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이라고 ‘자기 소신 없이 말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팔이 하나만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이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유머러스한 표현입니다.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내용은 한결같이 ‘묵묵하게 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3:14절에서는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세상에 다시 오실 날이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리 멀지만은 않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세상적인 종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생명이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준비되지도 않았고, 생각지도 못할 때 내 생애가 끝이 나더라도 당황하거나 후회를 남기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 생애 마지막 날을 위한 가장 좋은 준비는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에 지금 주어진 일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주님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이러한 성실한 삶을 통한 기도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이라는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요즘 종말에 대한 예언들이 엄청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것에 마음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묵묵히 충성된 삶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생활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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