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사람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
*** 사람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 / 누가복음 11:5-13
누가복음 11:5-13,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에게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또 하나,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이 두 질문의 공통된 답변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뭐 그렇게 어렵다고!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그 진실한 사랑을 하기에는 우리 인생들의 이기심과 자기애가 너무나 강합니다. 그래서 이타적(利他的)인 사랑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도와 응답에 대한 말씀을 하려고 하면서 웬 사랑타령이냐?!’고 의아해 하시겠지만,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진실한 기도의 기초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일서 4:16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사랑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기도, 기도의 응답을 보장 받는 길이 사랑의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물론 응답 받는 기도의 조건이 이건만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를 비롯하여 확신 있는 믿음, 간구 등. 꼭 필요한 조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조건들 중에 가장 중심 되는 것이 사랑의 삶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덕목 중에 일순위이며, 진정한 사랑은 영과 육신을 치료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병중에 ‘마라스머스(marasmus)’라는 것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이 병을 ‘피하지방과 근육 손실이 심한, 유아의 단백질, 에너지 결핍증후군 중에서 에너지 결핍이 현저하여 기아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길게 설명합니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면 ‘주로 생후 1년 동안에 일어나는 단백열량 영양장애의 질병’이라고 하는 ‘소모증(消耗症)’입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사랑결핍증’입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아무 자극 없이 돌보면 최상의 음식이나 생존할 환경을 조성해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병은 주로 전쟁고아나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증상은 신체발육이 부진하고 온몸에 힘이 빠지고,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맙니다. 이 병은 영양부족이나 병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결핍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도 아주 간단합니다. 의사들은 “매일 사랑을 고백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치료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말씀에는 ‘사람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기도와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예수님께서 본문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이 바로 앞 문단에 기록된 ‘주기도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하나가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고백하는 주기도문을 주셨습니다. 기도를 가르치신 후에 기도하는 방법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그 응답에 대하여도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려는 부분이 ‘기도하는 방법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그 응답’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방법을 말씀하시면서 알기 쉽게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하여 옆집에서 떡을 빌리려는 사람을 비유하면서 ‘간청함’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즉 ‘친구이기 때문에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간절하게 요청하는 그 마음 때문에 빌려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요청을 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부각 시키시면서 ‘너희가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느냐!’라고 ‘응답의 확실성’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두 내용 사이에 가장 중요한 기도의 방법을 간략하면서도 강력한 내용으로 가르치십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특이하게도 누가는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님을 보내 주신다고 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의 조건을 봅시다.
본문 5-8절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이 내용은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유대인들의 당시의 주거지는 하나의 방에 가족들이 모두 기거하며, 심지어 짐승의 우릿간까지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안쪽에 눕게 되고 가장은 출입문 가까이에 눕습니다. 그러니 어떤 음식을 꺼내려면 가족들 전체가 일어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처럼 번거로움 때문에 떡 빌려주는 것을 거절하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 문을 두드리면서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 때문에 그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간청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이처럼 간절함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33: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앞쪽의 29:12-13절도 봅시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본문 다음의 18:1-8절에서도 예수님께서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하여 간절한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7절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 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그렇습니다. 기도에 관한 말씀에서 공통적인 내용은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그런데 간절한 부르짖음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순종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웰츠(Herbert George Wells)’라는 분이 쓴 단편소설 중에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주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30년을 한결같이 기도했습니다. 이 30년의 기록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은 대주교의 기도하는 모습을 부러워하였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주교의 기도는 화려한 언어로 매끄러운 내용이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듣는 이의 애간장을 다 녹일 만큼 간절했습니다. 심지어 그 기도를 듣기 위하여 먼 곳에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대주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것도 그 자랑거리던 기도시간에 죽었습니다. 그날도 그는 습관대로 거룩한 복장을 하고 마음을 모아서 늘 하던 대로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라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평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그만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는 화려한 언어나 애간장을 녹이는 감각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사람이 듣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말씀에 순복하는 진실한 믿음으로 아뢰는 간구여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3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참으로 엄청난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이 말씀에서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아뢰는 모든 간구에 당연히 응답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11-13절에서 말씀하시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 어떻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까?
본문 9-13절을 봅시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 내용에서 특징지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를 구체적으로 하면 구체적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응답이 성령으로 임재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구체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응답에 있어서도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구체적으로 아뢰면 구체적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루뭉술하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게 대충 기도하면 내 삶에 구체적인 응답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대단히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시편에 기록된 많은 기도들을 보면 구체적인 정도를 넘어서 너무도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에 마음이 조급해지면 안 됩니다. 넉넉한 시간과 방해받지 않는 장소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이 ‘기도하면서 내가 말할 내용만 숨 가쁘게 나열하고는 하나님께서 미처 마음을 표하시기도 전에 기도를 마쳐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기도이든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내 마음에 말씀하시고 감동하시도록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말씀하시면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을 주신다는 것은 내 마음에 ‘성령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통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감동으로 전달하시고 일깨워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2:10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그대로 우리에게도 나타내 보이십니다. 사무엘하 22:25-27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로다.” 성경 전체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은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16:59절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마태복음 16:27절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할 때에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은 우리가 행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뜻을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한다면 내가 행한 삶대로 진실하게 아뢰어야 합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진실하게 고백할 때에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내 삶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일서 1: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기도하는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도하여 아뢰기 전에 이미 내 마음의 생각과 삶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활과 내 마음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고백하고 아뢰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본문 11-13절에서 하신 말씀대로, 우리에 대하여 아버지의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힘쓰십시오. 그리하면 다니엘에게 보이셨던 것처럼, 내가 기도를 시작할 때에 이미 나의 간구를 아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긍휼에 풍성하신 우리의 주님께 매 삶의 순간마다 친근하게 다가가셔서 간구하여 아뢰는 것마다 주님의 응답을 받는 행복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