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내가 할 일은?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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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9-14 13:30
*** 이 시대, 내가 할 일은? / 누가복음 3:7-14
누가복음 3:7-14,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가 직면한 세상은 정말 변화무쌍(變化無雙)하여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의 현상들을 보면서 염려하며 두려워하며 분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세상의 끝이 다가올 때의 상황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6-12절입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 말씀은 지금 진행 중이며, 앞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올 일들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찹찹해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묻게 됩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유대계 철학자인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변화에 연연하지 않고 갈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의 시대적인 배경은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침묵하고 계셨던 때입니다. 유대인들은 헬라를 거쳐 로마의 속국으로 힘든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고 찾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묵묵부답이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동원하여 경고하셨지만 유대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8: 5-7절입니다.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이것이 폐망의 이유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폐망했고 속국으로 전락하여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셨던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는 세례요한이 나타났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 소리는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소리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0여년 만에 침묵을 깨시고 세례요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면서 우둔한 사람들의 마음에 메시아의 자리를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을 갈급해 했던 유대인들이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군중들 속에는 세리들과 군인들을 비롯한 하나님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슴을 치며 세례요한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며 순종의 결단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먼저 해야 할 일은 시대를 읽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하신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한 마디로 ‘때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알지 못하고 자기 삶에 빠져서 하나님께 대한 관심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똑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시대를 알고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난 사탄의 세력들은 세상의 환경을 소란스럽게 만들어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집중할 수 없게 합니다.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인생들은 오로지 자신의 앞가림하기에 바빠서 영적인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에 빠져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4: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14절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무지함을 비유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의 사상가인 ‘장자(莊子)’가 어느 날 활을 메고 사냥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긴 까치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날아서 멀리 있는 나뭇가지 위에 앉았습니다. 그 모양이 하도 이상해서 그 까치를 사냥하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활을 쏠 수 있는 곳까지 와서 활을 당기려고 보니, 까치가 무엇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까치가 노리는 쪽을 보니 풀숲 사이에 사마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귀는 또 나무 그늘에서 울고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도 까치도 눈앞의 먹이에 정신이 팔려 자기가 죽게 되었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장자는 한심한 그 미물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활을 거두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나이가 몽둥이로 들고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정을 알고 본즉, 장자가 정신없이 까치를 따라가느라 남의 채소밭으로 지나가면서 채소를 망가뜨려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밭의 주인이 그 모습을 보고는 몽둥이를 들고 따라왔던 것입니다. 결국 사마귀나 까치나 장자 모두가 똑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우리 인생의 우매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서 9:12절입니다.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우리 인생들이 똑똑한 것 같지만 미래를 모르기는 짐승들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시대적인 사인(sign, indication, 조짐, 징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나타내시기 직전에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혹시 메시아가 아닐까!’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떻든 그들은 400년이나 애타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해지자 광야로 몰려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갈급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이 있다는 것은 자신들의 시대가 어떠함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상황을 안다면 하나님께 갈급함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까? 그 갈급함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 시대를 알면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왜 세상에 보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목적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잠언 16:4절에서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히 하셨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도 큰 행복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됩니다. 바로 그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열매에 대한 이야기와 달란트와 므나 비유를 통하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성실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탐험가로 알려진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박사의 일화입니다. 대학 졸업 후 박물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매일 남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박물관의 바닥을 닦았습니다. 청년은 바닥을 닦으며 항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니, 대학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굳이 바닥 청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그러자 청년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곳은 그냥 바닥이 아니에요. 박물관이잖아요.” 그는 머지않아 박물관의 정직원으로 채용되었으며 알래스카 등을 찾아다니며 고래와 포유동물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권위 있는 고고학자가 되었고, 훗날 미국 뉴욕에 위치한 자연사 박물관 관장까지 맡았습니다. 그의 일대기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나아와서 세례를 받으려던 무리들 중에는 온갖 직업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세례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 전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돈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의 선민이지만 그들의 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하십니다. 로마서 10:2-3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생각으로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고도 단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선민이라 할지라도 선민으로서의 행함이 없으면 찍어버리시고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본문 8-9절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강조합니다. 열매는 우리가 아는 대로 ‘자신의 생활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행동이나 삶’을 의미합니다.
이 열매의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 10-14절에서 열거합니다. 이 내용은 당시의 사회적인 환경에서 아주 구체적인 것입니다. 일반 군중들에게는 “옷 두벌이 있는 사람은 옷 없는 사람에게 한 벌을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은 없어 굶주리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습니다. 세리들에게는, “부과된 것 외에는 더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군병들에게는 “사람에게 포악한 짓을 삼가하고, 권력의 힘이 있다고 약한 사람을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받는 월급으로 만족하라.”고 했습니다. 이 요구가 황당하거나 지키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지극히 당연한 요구입니다. 지금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자신의 직분에서 정의롭고 정당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즉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자녀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범위를 벗어나는 욕심을 내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능력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12: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리고 에베소서 4:7절에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하시며, 16절에서는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하십니다.
지금 어떤 자리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주신 의미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M.A. 베레’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 그러면 최선의 것이 돌아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확신합니까? 확신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비록 내게 주어진 일이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량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성실하고 진실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볼뿐더러 다른 지체들을 돌아보면서 서로를 세워가야 합니다. 이제는 모든 형식적인 삶과 신앙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하나 하나 주어진 자리, 주어진 일에 의미를 두고 주님을 따르십시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일에 생명과 열정을 다하셔서 언젠가 주님을 뵈올 때에 부끄럽지 않으며, 지금의 삶에서도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