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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녀야 할 영성 2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441회 작성일 2022-01-30 15:17

*** 우리가 지녀야 할 영성 2 -하나 됨 / 고린도후서 5:14-19

 

고린도후서 5:14-19,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가 지녀야 할 영성’이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하게 지녀야 할 영적 성품’을 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지녀야 할 영성’ 첫 번째로 영성의 가장 기본인 ‘믿음의 영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두 번째로는 ‘하나 됨의 영성’ 즉 ‘화평’, ‘화목’에 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 됨’을 두 번째 영성으로 선택한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필수적인 영성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하신, 마태복음 7:21절과 함께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사사건건 반대하는 성도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이 ‘안 되겠다. 내가 기도로 저 사람을 고치든지, 아니면 내보내야겠다.’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 성도를 변하게 해주십시오. 아니면 스스로 나가게 해주세요.” 이렇게 몇 날 며칠을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얘야, 그 아무개가 사람 될 것 같으냐? 그 사람 절대로 사람 안 된다. 그 사람 바꾸려다가는 네가 죽는다. 나도 그 사람 못 바꾼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런데 그 사람 내 나라에는 올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천국에는 갈 수 있겠지요. 예수님을 믿었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래, 네 말이 맞다. 사람은 못 되었지만 내가 내 피로 씻어서 은혜로 엎고 천국에 데려가겠다. 내가 데리고 갈 사람인데 네가 그냥 두고 좀 봐 주면 안 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 나는 아직 너도 못 바꾸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오래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읽는 순간 우습기도 했지만, 저의 마음도 찔렸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목회자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나, 저의 목회 경험으로나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일 중 하나가 본문에서도 말씀하시는 ‘화목’입니다. 본문에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라는 말씀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나를 살려주신 그 목적이 ‘죄인 된 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도록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화목하게 하는 일이 왜 이렇게 중요한지를 살펴봅시다.

 

※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본문에 사용된 ‘화목’이라는 단어는 원어에서 ‘은총으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죄로 단절되어버린 인생을 다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은총을 받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은혜이며, 우리가 ‘아버지’라고, 또는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이름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6절에서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사실, 이 한 구절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라는 전제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답답하고 분노가 일어날 때,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을 때, 탄식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한 마디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을 많이 하거나, 장황하고 아름다운 단어를 구사하는 기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진정한 마음이 담긴 아버지!라는 한 마디를 더 진정성 있게 들으십니다. 이처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은 우리를 살려주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은총을 회복하게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값없이 받았습니다. 이 사랑과 이 은총을 혼자만 간직하지 말고, 아직 이 행복한 소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 나타내게 하신 것이 화목의 직분입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화창한 봄날에 기분 좋게 언덕을 올라가던 소년은 길에 튀어나와 있던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돌덩이가 왜 사람들 다니는 길에 있지?” 소년은 삽으로 돌부리를 캐내기 시작했습니다. 파헤치자 점점 돌의 크기가 드러났습니다. 땅 위에 보이는 돌은 사실 큰 바위 일부분이었습니다. 소년은 놀랐지만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리지 않도록 파내겠어!” 소년은 분한 마음 반, 정의감 반으로 거대한 돌에 달려들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삽을 놓았습니다. “안 되겠다. 포기하자.” 소년은 파놓았던 흙으로 돌이 있던 자리를 덮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걸려 넘어졌던 돌부리도 흙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중얼거렸습니다. “왜 처음부터 이 방법을 생각 못 했지?”

 

화목,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려면, 다른 사람의 단점이나 잘못을 들춰내기보다는 이해하고 용서하고 덮어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파헤칠수록 서로가 더 힘들어지고 고통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잘못을 따지거나 캐묻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받아 챙겨서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했던 탕자(蕩子)가 거지꼴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의 과거를 비난하거나 캐묻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것만으로 기뻐하며 받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행하는 것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용서하고 화해했는지를 물으십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 채 나아왔다면 돌아가서 화해하고 오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즉 화목하지 못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 그러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습니까?

 

이 주제를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있어서 인용해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인데, 초등학교 4학년인 꼬마가 쉬는 시간에 당돌하게 선생님에게 퀴즈를 내면서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것 한 번 풀어보세요.

“선생님, 5 빼기 3은 뭘까요?” 선생님은 한참을 궁리했습니다. 넌센스 문제 같기도 하고, 아니면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별의 별 생각을 다한 뒤에 “글세…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꼬마가 말합니다. “선생님, 굉장히 쉬워요. 5빼기 3은 2예요” 선생님은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꼬마는 또 물었습니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하! 이건 또 뭐야?” 선생님이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 꼬마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오(5)해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3)번만 더 생각하면 이(2)해가 된다.”라는 뜻이랍니다.

꼬마는 신이 나서 퀴즈를 하나 더 냈습니다. “2 더하기 2는요?” 선생님은 가볍게 알아맞혔습니다. “4지 뭐니” “맞았어요. 그럼 그 뜻은요?”라고 되묻습니다. 또 한참을 궁리하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 꼬마는 “이(2)해하고 또 이(2)해하는 게 사(4)랑이래요.”라고 하고는 깔깔대며 뛰어갑니다.

 

이 꼬마의 넌센스 퀴즈 속에 이 주제의 답변이 들어있습니다. 이해와 관용은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하나 됨과 화목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성경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여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날에 천사들이 부른 노래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의 팔 복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화목, 평화를 이루는 일은 하나님 자녀의 일이며, 그만큼 하나님께서 좋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이런 하나 됨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잠언 25:15절입니다.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라고 하셨고, 15:1절에서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18:16절에서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라고 하시며, 19:6절에서는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뜨거운 물이 얼음을 녹이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 이해하고, 관용하고, 나누고, 베푸는 부드러운 사람에게는 사람마다 마음을 열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부드럽고 자비로운 사람에게 끌리며, 화목하게 됩니다. 차갑고 냉정한 사람, 매사에 따지는 사람에게는 가까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사람들의 죄와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배반한 베드로를 품으셨으며,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욕하고 침을 뱉으며, 뺨을 때리고 조롱하는 유대인들과 로마 군병들까지도 부드럽게 품으셨습니다. 매일 주님을 잊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죄에 빠지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끝까지 품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께서 요한복음 17장의 기도에서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1절)라고 하셨으며, 22절에서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함축한 내용이 본문 15절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즉 죄로 죽은 우리를 살려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은 우리도 주님의 삶을 본받아 화목을 이루게 하려 하심입니다.

 

‘찰스.H 크래프트’ 목사님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쥐가 꼬여 들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 즉 미움, 원망, 원한, 증오, 분노, 용서 못 함 등의 쓰레기가 있으면, 그 쓰레기 속에 마귀들이 자리 잡고 여러 가지 문제와 고통을 준다.” 그래서 본문 16절에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육체대로”라고 하는 것은, ‘세상적인 기준’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대로 그리스도인이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로마서 8:5절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영적인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 통찰력은 ‘모든 일을 영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심정으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의 마음을 제 마음에 부어달라고 늘 기도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아니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 되는 것 즉 연합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도 하나가 되어 계시고, 우리 그리스도인도 한 성령 안에서 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됨은 본문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라고 하셨듯이, 그리스도인이 당연히 이루어야 하는 삶입니다. 이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이 화목, 화평,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손해를 보고, 비난을 받고, 욕을 먹으면서까지라도 화목을 위해 힘쓰면, 하나님의 은혜가 엄청나게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화목하게 하고, 화평을 이루게 하는 하나 됨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항상 지녀야 하는 영성입니다. 이 영성의 삶을 힘쓰고 이루셔서 하나님께 사랑받고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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