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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흔드는 감정을 제어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441회 작성일 2021-08-30 14:59

*** 믿음을 흔드는 감정을 제어하십시오. / 히브리서 3:5-14

 

히브리서 3:5-14,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 들어가는 말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 16:32절에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십니다. ‘분노를 제어하는 것이나,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모두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많이 사용된 단어 중에 상위권에 있습니다. 그만큼 마음을 다스리는 감정의 제어가 신앙의 삶에 중요한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은 신뢰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은 마음이 일정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사야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마음이 흔들리는 기복이 심한 사람에 대하여 야고보서 1:6-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환경에 감정이 불안정하게 되어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제어해야 합니다.

 

37살에 뇌졸중으로 뇌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하버드대 연구원 ‘질 볼트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든, 자기 스스로 그 고통스러운 감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테일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살아 있는 현재에 감사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성공이 아닌, 오늘 하루 내가 이뤄낸 작은 성취에 주목했습니다. 의사들은 ‘뇌졸중이 걸리고 6개월 내로 회복하지 못하면 가망이 없다.’라고 했지만, 8년 동안 그녀는 점차 회복했고, 값진 삶을 되찾아 나갔습니다. “안 된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무너지게 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하러 갈 때면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두려워하는 감정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까지 무너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9:2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불신앙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로 들면서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라고 하십니다. 즉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제어하면 그 소망에 이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시편 95:7절 이하를 인용합니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하여 신속히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을 충고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그가 말씀하시는 대로 실천하라. 오늘 당장 그 일을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부르심과 충고에 귀를 기울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왜냐하면, 강퍅한 마음은 모든 죄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보인 태도를 들어서 경고합니다. 본문 8절의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17:2-7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께 대하여 종종 반발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증언들과 우리 조상의 죄와 심판을 기억함으로써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식에 들어가 못하게 하겠다.’라고 맹세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 12-13절에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무서운 종말을 예로 듭니다. ‘너희 주변을 돌아보라. 안으로나 밖으로나 적이 들어올까 경계하고 주의하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파멸을 통해 그들이 걸려 넘어진 걸림돌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내일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지금의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여야만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처음 때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대단함 신념과 용기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환경과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 믿음을 흔드는 감정이 무엇입니까?

 

어떤 청년이 냇가를 거닐다가 무심코 발밑을 보다가 개구리 한 마리가 불어난 물에 쓸려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개구리는 늘어진 버들가지를 잡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점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지는 물에 얕게 닿아있었고 아무리 애를 써도 개구리의 점프로는 가지에 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개구리의 모습을 보면서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생각했습니다. ‘어리석은 개구리 같으니. 안타깝지만 의미 없는 노력일 뿐이야. 노력할 걸 노력해야지…’ 그런데 잠시 후, 강한 바람이 휙 하고 나무를 흔들려 지나갔습니다. 이 바람에 버들가지가 순간 크게 휘면서 개구리가 있는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순간, 개구리는 뛰어올랐고 버들가지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무를 타고 조금씩 올라간 뒤, 땅으로 폴짝 뛰어갔습니다. 이를 지켜본 청년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나는 저 개구리만큼의 노력도 해보지 않고 이제껏 안될 거라는 생각만 했구나!’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어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나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바탕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즉 감정입니다. 요즘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뉴스나 여러 인터넷 매체에서 자주 오르내립니다. 한순간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여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사건들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옵니다. 보복 운전이나, 앞차가 빨리 가지 않는다고 경적을 울렸다가 살인사건으로 비화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일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던 그때를 예로 들어 증언합니다. 고린도전서 10:7-11절을 봅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목이 탄다.’라고 원망했으며, ‘고기가 먹고 싶다.’라고 불평했으며, ‘길이 험하다.’라고 불평했습니다. 즉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해 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지금, 현재의 생활이 힘들고 어렵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환경과 상황으로 그리스도인의 감정이 격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까지도 흔들리게 됩니다.

 

※ 어떻게 믿음을 흔드는 감정을 제어합니까?

 

경남 산청의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이 대구의 중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대구까지 학교를 보내는 것은 쉬운 상황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자식의 앞날을 위해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68명 중에 68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실망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아들은 성적표의 68이라는 숫자를 1로 고쳐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하지만 어설픈 거짓말은 뜻밖의 일로 번졌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1등을 축하한다고 재산 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연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가장 큰 재산이었던 돼지를 아낌없이 포기한 아버지의 모습을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아야 했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대학교 총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에게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막았습니다.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손자 듣는다.”

 

경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박찬석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자식의 뻔한 거짓말에도 묵묵히 기다려주신 아버지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저는 이 자서전을 읽으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러하지 않으실까!’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약함도 아시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순종하며 살겠습니다.’라고 약속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시면서도 그냥 또 속아주시고 기다려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우시고, 우리를 양자로 받아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6절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제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박찬석 박사가 자신을 믿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믿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하여 자신을 제어해야 합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도 순종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절제하고,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고, 미운 감정이 많을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며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제어하고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것이 본문 14절이 말씀하는 ‘우리가 확신하는 믿음’이며, ‘끝까지 견고하게 잡아야 할 감정’입니다.

 

어떤 중년의 남자가 식당에 갈 때마다 직원이 자신에게만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당에 갔는데 이번에도 또 직원이 자신에게만 불친절하게 대한다고 느꼈습니다. 이 모습에 기분이 나빠진 남자는 결국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나한테만 그렇게 불친절한가요?” 그러자 직원은 억울해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대했는데 언제나 선생님이 굳은 듯한 표정으로 저를 대하셨어요.” 직원의 대답을 들은 후에 이 남자는 자신의 표정과 태도를 돌아보고는 직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잘못된 선입견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감정 느낀 적이 있으시지요? 마태복음 13:53-58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곳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선입견’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비극이 이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능력의 하나님을 비하하고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감정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자신의 감정에 속아서 하나님보다 전염병을 더 두려워하여 하나님과의 가장 중요한 표징인 예배마저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감정이어서 하나님의 징벌이 따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16:3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의 주님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흔드는 나 자신의 감정을 잘 제어하여 승리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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