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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778회 작성일 2021-07-05 13:29

***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 이사야 7:1-9

 

이사야 7:1-9,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더라. 3 그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 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5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7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8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데카르트의 명언 중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데카르트의 회의론의 결론입니다. 회의론은 말 그대로 '의심'입니다. 회의론에서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계가 모두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의심할 수 있는 이유를 더는 찾을 수 없을 때까지 의심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의심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의심하는 자신만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실존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의심병은 현대인들이 가진 병증(病症)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일단 의심부터 합니다. 신앙에 대하여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많은 사람이 성경의 진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의심부터 합니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여러분의 삶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연(偶然)이라는 말을 사전에서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하나님의 경영하심이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일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14:24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하셨으며, 요한복음 1:1-3절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우연은 없습니다. 즉 세상에는 우연처럼 일어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경영하지 않으신 일은 없습니다.

 

프로토타입(prototyp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형(原型)이라는 뜻인데, 자동차를 출시하기 전에 중요 외관을 가리고 시험 주행하는 것을 이를 때에도 이 말을 사용합니다.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아서 본래의 모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인데, 시험 주행이 성공적이면 그것을 모델로 상용화하여 대량생산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원형을 공개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여러 현상을 통하여 사람들이 추론하여 하나님을 알도록 하신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단을 보고는 아덴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4-27절입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처럼 세상에서 더듬어 찾아 하나님을 알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모든 환경과 상황을 연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삶의 환경과 상황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7장부터 12장까지는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앗수르의 멸망 그리고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시작 부분인 본문 말씀은 북이스라엘 멸망의 시초가 되는 사건인 ‘북이스라엘이 아람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남 유다의 왕은 12대인 아하스였습니다. 아하스 왕은 B.C.735년부터 721년까지 16년간 유다를 통치했는데, 아들을 우상 제물로 바치고, 성전을 부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앗수르와 동맹하는 등 악한 왕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아람과 동맹을 맺고 침략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아하스에게 보내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셨습니다. 본문 4-9절까지가 이사야를 통하여 아하스에게 전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6-7절을 봅시다.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그리고 9절 하반절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경영하실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북이스라엘에 대항했습니다. 결과는 북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앗수르 동앵에게 패배하여 많은 사람이 앗수르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아하스가 악한 왕이었지만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시고 남 유다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임마누엘 징조도 주셨습니다.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처럼 본문을 포함하는 이사야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주권과 경영하심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땅의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경영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5:10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21:8절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세상에서 굳게 서려면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도자기 그릇을 판매하는 가게에 중년의 남자 손님이 왔습니다. 그 남자는 그릇의 이모저모를 살피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그릇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그릇으로 가게에 진열된 그릇에 살짝 부딪쳐서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물었습니다. “손님, 왜 그러십니까?” 그 남자는 “그릇을 부딪쳐 보면 그릇의 품질을 알 수 있어서 그렇소. 주인이신가 본데 그런 것도 모르시오?”라면서 그릇들을 하나하나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더니 그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런, 아무리 그릇을 찾아보아도 마땅한 게 없군. 하나같이 품질이 별로야. 울리는 소리가 맑고 청아한 게 없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남자의 행동을 보고 있던 주인이 그릇 하나를 주면서 “그럼 제가 쓰는 그릇으로 한 번 시험해 보시지요.” 그 남자는 반신반의하면서 주인이 준 그릇으로 다른 그릇들에 부딪쳐보았습니다. 그러자 한결같이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났습니다. “어, 아까까지는 그릇들의 소리가 둔탁했는데…?!” 주인이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손님이 가져오신 그 그릇의 품질은 혹시 검증해 보셨나요?” 주인이 자신의 그릇으로 그 남자의 그릇에 부딪쳐 보자 둔탁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그릇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사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신앙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릇 가게에 왔던 그 남자처럼 자신이 철석같이 믿는 자신의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도 그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세속화와 다원주의 신앙’이라는 심각한 아픔도 역시 이러한 자기 기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기준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비뚤어지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태복음 12:28절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하시며, 누가복음 17:20-21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주님이 다스리시는 교회가 곧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모든 것의 기준이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기준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고 배척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에서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굳게 믿으라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경영을 굳게 믿으라는 말입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이 비록 하나님을 거역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셨지만, 이미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시고 계획하신 경영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하고 따라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1:20-23절을 봅시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하나님의 경영하심에 합당하게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경영하심에 순종하면 다시 접붙임을 받게 됩니다. 이사야 14:2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하나님의 뜻이 이러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다음 날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다가 가버나움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따라온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6-2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내 구주이심을 믿고, 주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15:4-5절을 봅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가지는 뿌리와 줄기가 경영하는 대로 부지런히 양분을 흡수하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믿고 성실하게 순종하면 아름답고 복된 삶을 이루게 됩니다.

 

잠수함에서 어뢰 발사 연습을 할 때에는 회수가 가능한 연습용 어뢰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발사된 어뢰가 목표물에 명중할 경우에는 쉽게 회수할 수 있지만, 표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갈 때는 영원히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함대 소속 잠수함 가운데서 훈련용 어뢰를 가장 많이 잃어버린 기록을 세운 잠수함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도저히 명중률이 개선되지를 않았습니다. 그 잠수함의 함장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최후의 방법으로 어뢰 수들의 외출 상륙 증을 모두 거두어서 연습용 어뢰 탄두에 넣고 밀봉해버렸습니다. 연습용 어뢰를 회수하지 못하면 아무도 외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 후 그 잠수함은 백발백중으로 표적을 명중시켰습니다.

 

집중력은 간절함에서 나옵니다. 반드시 명중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명중의 비결입니다. 간절한 사람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냅니다. 예레미야 29: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함에 응답하시고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라는 절박함이 없으면 하나님께 집중할 수도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믿지도 못하고 순종하지도 않게 됩니다. 이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경영하심에 집중하여 온 마음을 두고 내 삶에서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계획하신 모든 경영이 이루셔서 진정한 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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