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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질 보상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215회 작성일 2021-06-27 17:18

*** 내게 주어질 보상 / 마태복음 10:40-42

 

마태복음 10:40-42,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직장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직장생활 중 가장 기분 좋은 날은 언제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에는 언제일 것 같습니까? 삼 분의 이 이상이 “월급날”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기다리기도 하며 좋아할 것입니다. 굳이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칭찬이나 인정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임이 분명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신.구약성경 곳곳에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좋은 것으로 말입니다. 남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 왕이 대대적인 영적 개혁을 단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사랴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역대하 15: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그리고 본문과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9:4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이 말씀과 본문에서 “결코”라고 번역된 단어는 ‘우’ 혹은 ‘우크’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절대부정’을 뜻하는 ‘결코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쓰신 것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라는 약속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행하는 것에는 반드시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통장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축되는 보상과 상급에 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장편소설 '대지'를 아시지요? 이 소설로 193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랑의 신앙인 '펄 벅(Pearl Buck, 미국 1892~1973)' 여사가 1960년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일행과 함께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경주의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마침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이 조금 실려 있었고, 농부는 자기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볼 광경이었습니다. ‘힘들게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갈 게 아니라, 달구지에 짐을 싣고 농부도 타고 가면 아주 편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통역사를 통하여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지고 갑니까?"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하루 힘들게 일했으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그녀는 농부의 말에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펄벅 여사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이 모습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도 작은 사랑의 행위에 감동하며 찬사를 보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는 행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지 않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라고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무거운 짐을 함께 져주는 일이 ‘그리스도의 법’ 즉 ‘사랑의 법’이라고 하십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앞으로 행하여야 할 일들을 자세하게 가르치며 명령하시는 내용입니다. 그중에 짧은 본문의 내용은 ‘상급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상급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차등적임을 말씀하십니다. 신약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이시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의 모습에는 분명한 차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39-41절을 봅시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린도전서 3:13-14절도 봅시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어지는 상급과 영광은 행한 일에 따라 다르고 차등이 있습니다.

 

혹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데 왜 하나님께서 불공평하게 차별하십니까?’라고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행한 대로 대우하는 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9:11-27절에 나오는 므나 비유에서처럼 똑같이 한 므나씩 받은 사람들이, 각각 일을 하여 열 므나를 남기고, 다섯 므나를 남기고,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진 사람에게 똑같은 대우를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은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 말씀하신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에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공평한 상급과 보상을 말씀하십니다.

 

※ 상급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청년이 인터넷에 올린 글입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라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점차로 불쌍한 사람들을 대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외면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줄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나 자신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당신이 위로받고 쉴 수 있는 작은 천국을 만들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전 지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걸요.”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한 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의 인사 뒤에 나의 고민을 얘기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자매는 “지금 형제님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리세요”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나는 지하철역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한 소경을 보게 되었다. 외면하려던 순간 그 자매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 소경이 지금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래, 저 사람의 눈이 되어주자!' 나는 그 소경의 손을 잡고 그의 집까지 함께 가주었다. 돌아오면서 나는 주님의 귀한 가르침으로 인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불쌍한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돌아서서 울지만은 않으리라.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리라.

 

본문말씀처럼 상급을 위하여 내가 특별한 일을 하거나, 많은 물질로 돕거나, 많은 시간이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재능기부’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즉 재능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면 됩니다. 단 하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에서 “선지자의 이름으로, 의인의 이름으로, 제자의 이름으로”라고 하십니다. 이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봅시다. 14절부터 18절까지를 읽어봅시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이 비유에서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내용은 첫째는 재능대로 달란트를 준 것이며, 둘째는 사용을 했느냐? 사용하지 않았느냐? 라는 것이며, 셋째는 이익을 남긴 것입니다.

 

제게도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재능은 열정과 돕는 것과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재능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재능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곧 재능입니다. 여러분은 그 재능을 지금 어떻게 사용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사용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는 자신이 깨닫게 되고 느끼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면 불쌍한 마음이 들고 무엇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함께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믿지 않는 것이 불쌍하게 여겨지거나 복음을 전하고 싶어지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이 거듭해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때입니다.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는 앞의 예화에 나온 청년처럼 ‘지금은 시간도 없고, 도울 수 있는 물질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다음에 하지.’라고 하면 안 됩니다. 멀리 있으면 전화라도 할 수 있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 줄 수도 있습니다. 병실이나 초상집이나 집으로 찾아가서 위로할 수도 있습니다. 차 한잔, 식사 한 끼를 같이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냉수 한 그릇’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그만큼 쉽게 할 수 있고, 그 상황에 맞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5:40절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5절입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급을 위하여 위대하고 큰일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 별일도 아닌 작은 일, 이러한 것을 주님의 사랑을 담아 행하는 것이 내 통장에 보상과 상급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 12:3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현대어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슬기를 간직한 이들과 많은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이끈 자들은 하늘의 별들처럼 언제까지나 빛나리라.” 현대어 성경처럼 “지혜 있는 자”란 ‘슬기로운 지도자’라고도 번역합니다. 슬기로운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말하며,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처럼, 가장 큰 상급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시대를 잘 분별하여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비굴한 침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올바른 길을 알면서도 자신의 무사안일이나 이익 때문에, 불의나 불법을 보고도 외면하거나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불의와 불법을 다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야 함을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5:10-11절을 봅시다.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숭배 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현대의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만 바르게 살면 된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이리와 같은 세상으로 내보내시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의 평안과 행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한 보상과 상급에도 마음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마음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로 결론을 맺습니다.

오랜 시간 힘들게 모은 돈으로 빵 가게를 개업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노릇노릇 구워져 진열장에 놓여 있는 빵만 보고 있어도 좋았고, 손님이 많은 날은 입가에 미소가 떠날 줄 몰랐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이가 학교 가기 전 ‘빵을 챙겨가도 되냐?’고 물었고 그는 매일 아침 가장 맛있게 만들어진 빵 두 봉지를 가방에 챙겨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마찬가지로 아이를 등교시킨 뒤 빵을 진열대로 하나둘 옮겨놓다가 금방 딸이 놓고 간 준비물을 발견하곤 뒤를 쫓았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보인 딸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가 편의점 주변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할머니에게 빵 두 봉지를 드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빵을 받은 할머니는 딸아이를 향해서 익숙한 듯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이쁜 학생 덕분에 이 할머니가 매일 이렇게 맛있는 빵을 먹게 되어서 정말 고마워요~” 사실은 아이는 그동안 매일 아침 아빠에게 간식으로 받은 빵 두 봉지를 폐지를 수거하는 할머니에게 드렸던 것입니다. 그는 그다음 날부터 딸아이가 가져갈 두 봉지의 빵과 함께 할머니께 드릴 빵도 따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남을 위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시며 기억해주시는 상급과 보상으로 기록되는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은 복음을 전하고, 영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나 하나 살기에도 벅차고 힘겨운 세상을 살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긍휼과 사랑을 기억하며 작은 배려와 베풂과 관심으로 사랑의 열매를 생활 속에서 이룹시다. 이를 통하여 내게 주신 재능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채우심과 은혜가 통장에도 채워지고 생활에도 부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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