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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을 누리는 길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741회 작성일 2021-06-06 21:32

*** 풍성한 삶을 누리는 길 / 디모데전서 6:17-19

 

디모데전서 6:17-19,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의 풍성한 삶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풍성함이며, 다른 하나는 영적인 풍성함입니다. 육신적이든지 영적이든지 풍성한 삶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풍성함은 내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풍성하기 위하여 불법적이거나 범죄에 발을 들이기도 합니다. 본문 앞쪽의 9-10절에서 이러한 상황을 미리 경고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풍성함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기도 하시며 누리게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6: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소유하는 것과 누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삶의 풍성함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디모데전서.후서는 사도 바울이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면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어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베소 교회는 차츰 확장되었지만, 동시에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서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현상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일을 바로잡고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실질적인 목회 지침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한, 실제 생활의 순결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하여 젊은 디모데가 그릇됨이 없이 대처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하여 이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디모데 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대단히 유익한 편지입니다. 특히 성도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도에 대한 권면과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원칙에 대한 말씀, 그리스도인의 실제 생활에 대한 교훈들이 들어있습니다. 가장 중요하며 중심되는 구절이면서 편지의 목적이 기록된 구절은 3:14-16절입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음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느니라.” 이 말씀은 신앙생활의 올바른 지침을 가르치며,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경건 비밀은 곧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합니다. 이 가운데서 본문 말씀은 성도의 올바른 생활 중에서도 ‘장래가 보장된 풍성한 삶을 누리는 길’에 대하여 교훈합니다.

 

※ 풍성한 삶의 근거가 무엇이며, 어떤 것입니까?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몸이 아플 때 약을 먹을 텐데, 왜 약을 먹습니까?” ‘별걸 다 물어본다.’라고 생각되시지요? 아마 ‘몸이 아프니까 먹지.’라고 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나으려고 먹지.’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안경을 쓰시는 분들에게 “왜 안경을 쓰십니까?”라고 물으면, 사람 대부분은 “잘 안 보여서 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간혹 “더 잘 보려고 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약을 먹어도 ‘아파서 먹는 사람’도 있고, ‘낫기 위하여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안경을 ‘잘 안 보여서 쓴 사람’과 ‘더 잘 보려고 쓴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대답은 같은 것 같지만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말의 표현은 그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이 간단한 생각의 차이가 인생이나 삶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예레미야 6:19절에서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결과를 낸 원인이 바로 앞 구절인 16-17절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라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진 생각과 말로 대항한 것입니다. 잠언 16:1절에서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을 봅시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현대어성경, “부자들에게는 교만하지 말고 또 곧 없어질 돈을 의지하지 말라고 일러두시오.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려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항상 풍족하게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도록 가르쳐 주시오.”) 이 말씀에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근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즉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것을 주실 뿐만 아니라 누리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8:18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하시며, 전도서 5:19절에서는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잠언 8:18절에서는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왕이 된 후에 일천번제를 드렸던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역대하 1:12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풍성함의 근거는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드린 대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누리지 못하면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누리게 하십니다. 누리지 못하는 풍성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풍성함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는 삶입니다. 혹 풍성하다는 말 때문에 물질적인 풍성함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풍성한 삶이란 영적인 것 만이 아닙니다. 영과 육신의 모든 삶의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혹 오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육신적인 풍성함이라고 하니까 물질이 풍족한 부요한 삶을 생각하기 쉬운데 세상이 원하는 그런 풍성이 아닙니다. 이 풍성함은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한 삶을 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이 많아야 풍족함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풍족함은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입니다. 이 만족을 책임지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0:9-10절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의 생명과 육신의 생활의 풍성함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 어떻게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본문 18-19절입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현대어성경, “착한 일에 돈을 쓰도록 가르쳐 주시오. 자기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그들은 참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다가 참 보화를 쌓는 것이며 이것만이 영원을 대비하는 안전한 투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도 열매가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 편지인 ‘따뜻한 하루’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불가리아의 ‘소피아’에는 100세를 맞이한 ‘도브리 도브레브(Dobri Dobrev)’ 할아버지가 살고 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청력을 잃은 후, 매일 20km 이상을 걸으며 돈을 구걸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 20km 이상을 걷고, 옷과 신발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면서 돈을 아끼고 모았지만, 그의 한 달 생활비는 연금으로 받는 10만 원이 전부입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는 구걸하며 모은 돈을 자신에게 쓴 적이 없습니다. 구걸로 모은 돈을 전부 고아원에 기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구걸로 모은 돈 40,000유로(1240원x4만=49,600,000원)를 기부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구걸한 돈을 한 푼도 자신에게 쓰지 않고 매일 고아원에 기부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사심 없는 헌신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도브리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그가 불가리아의 Baylove 출신이라고 해서 누군가는 그를 ‘Baylove의 성인(聖人)’ 이라고도 부릅니다.

 

세상은 이렇게 선행을 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하십니다. 여러 많은 선행 중에서도 특히 나누고 베푸는 일에 신(信).불신(不信)을 떠나 세상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38절에서 주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시며, 잠언 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라고 하십니다. 또한, 사도행전 20:35절에서는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나누고 베푸는 선행입니다. 이를 두고 본문에서는 미래를 위한 영적인 투자라고 하십니다. 베푸는 삶이라고 해서 무엇인가 돈을 많이 들이거나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아주 작은 친절한 행동 하나를 실천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인터넷에 올린 글입니다.

9살짜리 아들과 엄마가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보면서 긴 차량 행렬에 끼어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잽싸게 자동차 앞 유리에 스프레이로 세정액을 뿌리고는 걸레로 닦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자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유리를 닦고는 손을 벌리며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 엄마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움직이는 차량 행렬을 따라 출발했습니다. 그때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왜 '아니'라고 유리 닦는 사람에게 소리를 치셨어요? 창을 닦게 하고 돈을 좀 주시지 않구요!” “이 사람들은 어거지로 돈을 받아내려고 하는 거야. 그 돈으로 그들은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맞을 거야. 내가 돈을 주면 단지 그들의 나쁜 습관을 지속시키는 결과가 되겠지.” 라고 엄마는 어린 아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어른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불쌍한 생각이 들어요. 누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엄마의 기분이 어떻겠어요. 배고프고 돈이 없다면 엄마의 기분은 어떻겠어요?”

엄마는 마음이 찔렸습니다. 이 일 때문에 저녁에 가족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역시 평소 유리 닦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지르는 사람인데, 아들의 주장을 귀담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유리 닦는 사람들을 기꺼이 맞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또 하나를 제안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면 어때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포켓용 성경과 집에서 만든 머핀과 1000원을 준비해서 다닙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풍성함을 누리는 길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만 조금 바뀌면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어색하고 어렵습니다. ‘내 쓸 것도 부족한데 어떻게 준다는 말인가.’라며 어려워합니다. 돈을 의지하던 사람에게는 돈을 내려놓는 것은 죽는 것처럼 여겨지고, 자기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돕고 나누라는 말은 자신의 피를 빼내는 것처럼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서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재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말로든지, 시간과 노력으로든지, 행동으로든지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길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이 누가복음 6:38절에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이 힘들어합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사랑을 나누며 베풀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채우심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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