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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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위대한 사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519회 작성일 2022-07-11 15:07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위대한 사람 / 마태복음 18:1-10

 

마태복음 18:1-10,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 들어가는 말

 

지난 한 주간 찌는 더위에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요즘 세상을 보면 사건 사고도 많고, 세계적인 기후 이변에, 국가간 이익과 이념 대립으로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개인적이고 자기 편의와 이익에 몰두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무리하고 어리석게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만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미리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일러두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1-5절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렇게 세상은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영원한 소망을 끝까지 지켜가려면 이 어려운 시기를 믿음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인도의 ‘날라마람’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한 인도 여인이 매번 낡고 지저분한 옷을 입고 왔습니다. 선교사님은 ‘적절하지 않은 예배 자세’라고 생각하여, 몇 번을 망설인 끝에 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 왜 이렇게 남루한 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합니까?” 그러자 그 부인은 ‘이 옷이 자신이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당신은 그렇게 가난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인은 “선교사님,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전에는 돈과 좋은 옷들과 보석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권력자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제 재산을 모두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버리면 빼앗아 간 모든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재산을 다시 찾아서 부유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불신자로 사는 것보다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역시 장담하기 힘들겠지요?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들을 다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9:16절 이하에서 ‘부자 청년의 비유’를 하시면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6:24절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자기 생명까지도 버리고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보시는 조건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제시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삶이 뭐 그리 어렵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삶의 특징 중 하나를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아무 계산도 없는 순전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말합니다. 이것이 쉽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자기 신체를 절단한다는 단호한 마음으로 대처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9:24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고 호세아 6:6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아는 것이 무작정 예배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위대하게 보시는 사람의 첫 번째 조건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겸손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겸손에는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신 엄청난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5-6절에서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하시며, 시편 149:4절에서는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15:33절에서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하시고, 22:4절에서는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라고 하시며, 이사야 29:19절에서는 “겸손한 자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쁨이 더한다.”라고 하시며, 57: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겸손한 삶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비롯하여 수많은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큰 약속을 하신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겸손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하셨듯이, 겸손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위대하게 보시는 사람의 두 번째 조건은 ‘단호한 결단’입니다.

본문 7절에서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라고 하십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실족하게 하는 원인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실족하게 하는 일들과 죄와 속임수와 악함으로 가득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과 절벽과 거짓 안내판들로 가득한 위험한 여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으며 이 모든 걸림돌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과 이 삶을 파괴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실족하는 일에 대하여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나 자신을 스스로 실족하게 하는 일과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먼저, 나 자신을 스스로 실족하게 하는 일입니다.

말씀에서는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 것을 눈과 손, 발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이 눈이나 손이나 발이라 해도 떼어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즉 죄를 짓게 하는 많은 유혹이 우리 자신 속에서 일어납니다. 비록 마귀의 유혹이 아니더라도 우리 자신의 욕망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성품과 욕망인 내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반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로마서 8:13절에서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호한 결단’을 의미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나를 실족하게 하는 죄를 방관하여 온전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단호한 결단으로 나를 실족하게 하는 것을 끊어버리고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일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라고 하십니다. 예컨대, 교회의 큰 자들이 작은 자들을 업신여겨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예수님은 그 큰 자들을 불쾌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2:1-4절을 봅시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작은 자”라는 말은 ‘연약하지만 진실한 신앙인’들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인 약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무리들이므로 결코 업신여기거나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 사회적인 면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과 선한 본을 보이지 못하여 하나님을 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들이나 가난한 자들, 장애인들,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업신여기거나 멸시하는 것도 역시 그들을 실족하게 하는 죄가 됩니다. 더욱이 사회의 악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정죄하거나 멸시하는 행위도 역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유다서 9절에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하였거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장이었지만 타락한 천사인 마귀를 비방하는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조건은 자기 겸손과 단호한 결단력으로 자신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에 대하여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는 자신을 낮추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세우십니다. 비록 세상에는 내로남불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쓰지만,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신에게 엄격한 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길입니다.

 

필리핀의 마닐라에 성서대학이 있습니다. 어느 해에 이 대학에 ‘카 통 까우’라는 부자사업가의 아들이 입학했습니다. 그는 기숙사에 들어온 첫날, 학장을 찾아와서 ‘기숙사의 욕실과 화장실이 불결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학장은 웃으면서 “내가 조치해주겠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학생은 청소하는 사람이 누군지 보려고 나갔는데, 다름 아닌 학장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를 마친 학장은 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자, 화장실과 욕실이 깨끗해졌으니 마음에 드는가?” 그 학생은 너무나 뜻밖의 일에 놀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학장은 학생의 등을 두드리며 “학생, 염려 말게. 우리 학교는 그다지 넉넉한 학교가 못되어서 청소부를 따로 둘 수가 없으니 모두가 스스로 자기 일을 한다네.”

그 학생은 성서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을 마친 뒤, 미국 시카고 자유교회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성서대학의 학장으로부터 받은 교훈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속담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있고, 우리나라의 속담에도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깊은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때때로 다가오는 세상의 고통스러움이나 사람들의 무시와 오해와 조롱, 계획이 틀어지고, 성과가 없거나 아니면 뜻하지 않은 성공이나 위대한 일 등.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이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이 되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겸손하심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하신 단호한 결단의 삶을 닮아가서 하나님의 인정받는 위대한 신앙인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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