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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연결을 유지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113회 작성일 2022-06-12 17:07

*** 하나님과의 연결을 유지하십시오. / 요한복음 15:5-12

 

요한복음 15:5-12,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들어가는 말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 아시지요? 이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먼이 사용했는데, ‘대중 사회 속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스스로 고립감에 싸여 고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연극에서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할 때, 관중 속에 홀로 있는 느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마음으로의 소통은 단절되어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 사회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적인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은 하지만 하나님과의 소통이 없어서 자신의 신앙이 생활에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하면, 형식적인 교회 생활만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교회 생활은 자기만족은 있을지 몰라도,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치 기관차로부터 연결이 끊어진 객차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살려면 하나님과의 연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는 참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라.”라고 시작되는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의 연결에 있어서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비유 자체가 소통과 연합, 즉 하나님과의 연결을 의미합니다. 나무라고 하면 줄기와 가지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뿌리가 흡수한 물과 양분은 줄기를 통하여 가지로 올라가고, 가지에 붙은 나뭇잎에서 얻은 양분은 가지와 줄기를 통하여 온 나무에 퍼져서 생명을 유지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입니다. 만일, 가지가 줄기에서 단절되면 곧 죽음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가지인 성도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고 소통되는 영적인 네트워크(spiritual network)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앞쪽의 14:6절에서 “내가 곧 길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십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조되는 네트워크란,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는 소통’을 말합니다. 지금을 스마트 시대라고 하는데, 지금의 사회에서 컴퓨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컴퓨터를 가동하는 필수 부품인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첨단 스마트 장치들은 결국, sns(sicial network service)처럼 모든 것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연결을 본문 말씀에서는 포도나무 비유로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연결을 표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본문 10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지될 수 있는지를 자세하게 표현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생명과 능력을 지켜갈 수 있는 하나님과의 연결에 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 연결, 즉 소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연결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소통(疏通, communica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의 사전적 정의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통하여 서로 오해가 없음’이란 뜻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대화할 때 ‘이해가 돼?’라고 묻습니다. 이처럼 소통은 서로의 의사가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의 의사가 막히거나 오해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봅시다. 구약성경에서는 교제라는 말을 ‘하바르’라고 하는데, ‘결합하다’, ‘쌓아 올리다.’, ‘동맹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성경에서 교제에 해당하는 단어는 ‘코이노니아’와 ‘메토케’입니다. ‘코이노니아’는 ‘교통, 교제, 분배, 우정’등의 의미로 ‘상호교류’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서로 파트너가 되는 연결을 말합니다. ‘메토케’라는 단어는 ‘함께 나눈다, 관여한다, 교제한다.’ 등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소통한다는 것은 ‘함께 한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함께 한다는 것은 그저 같은 자리에 있거나 함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뜻이 통하여 서로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동행하거나 한 자리에 같이 있을지라도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르면 서로가 연결되지 못하고 소통이 막히게 됩니다. 대화하거나 여러 사람이 회의할 때, 서로 뜻이 다르더라도 이해하고 마음이 합해질 때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연결을 위하여 우리가 하는 중요한 행위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나누어 먹는 성찬식’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7:21절에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소통하여 하나를 이루는 것은 사람과도 소통하게 되고 연결을 이루게 합니다. 이 소통과 교제와 연합은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게 합니다. 베드로후서 1:4절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본문 9-10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소통과 연결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 사이에서는 서로의 분쟁과 다툼을 일으키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능력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0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라고 하십니다.

 

※ 하나님과 소통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병원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원목)이 환자들을 돌아보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는 부인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은 “가족 중에 누가 아프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부인은 “예, 남편이요.”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부인은 ‘교회 다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초조할 때 생각나는 성경말씀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지만,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부인의 손에는 휴대폰이 쥐어져 있었고, 통화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열었다 닫았다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 말로는 ‘입원한 환자들의 거의 전부가 휴대폰 만큼은 꼭 가지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되는 말씀은 전혀 기억하지 못해도 사람과 소통하는 휴대폰만은 가지고 있어야 불안감이 덜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현대인들은 사람들과 단절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한 방법으로 휴대폰을 가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과 대화하던 중에 그분이 ‘요즘은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이나 테블릿 PC를 가지고 논다.’라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일어나자마자 휴대폰부터 켜고, 길을 갈 때나 쉬는 시간이나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휴대폰의 쥐고 있습니다. 이 휴대폰으로 자기 나름대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빡 잊고 휴대폰을 가지고 오지 않았거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성경을 읽거나 기도할 시간은 없어도 sns로 세상과의 소통은 고집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3-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과의 소통에 먼저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소통하고 연결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과 소통하고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길은 예배입니다. 시편 50:4-5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제사는 곧 예배입니다. 이 예배의 중심은 말씀과 기도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도 없을뿐더러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5-6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삶의 능력도 열매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는 잘 소통이 되는데, 하나님과의 소통은 끊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소통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예레미야 7:13-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이처럼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은 곧 인생의 고난과 패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본문 7-8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원활하게 소통이 이루어지면 주님의 제자가 되고, 기도가 이루어지는 소원성취가 일어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즉 하나님과의 연결과 소통이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삶이 형통하게 되며,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야 할 구체적인 행동이며 실천입니다.

 

예전의 어느 심야기도회에서 어떤 성도가 “하나님, 어떻게 하면 제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저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라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도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곁에서 기도하던 그의 이웃 사람 하나가 기도하다 말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서 ○○○씨에게 미루고 있는 소값이나 먼저 지불하시지요!”

 

아마도 옆에서 계속 같은 내용을 기도하니까 듣고 있던 성도가 그 사람의 현실적인 상황을 먼저 깨우쳐 준 것이겠지요. 이 이야기처럼 자신의 생활이 사람들에게 올바르지 못하다면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20절을 봅시다. “누구든지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지금은 모이는 것도 심드렁하고, 자기 일에 바빠서 서로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는 일도 잘 없습니다. 소통은 관심에서 시작되며, 원활한 소통이 연결을 이룹니다.

 

몇 년 전에, 경찰과 한국생명보호예방협회 주관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 실험 영상’이 제작되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다리 위에서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겨울 강물은 차가워 보였고 수심은 아주 깊었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갑자기 신발을 벗더니 다리 난간 위를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뛰어내릴 기세입니다. 지나가던 중년의 여성이 그 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달려와서 다급하게 청년의 허리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여성은 청년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뛰어내리면 너무 추워요. 저를 봐요. 그러지 마세요.” 여성은 청년이 벗어둔 신발을 손수 신겨주며 계속 위로했습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됐는지 다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청년을 데리고 가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참을 위로하던 여성이 눈물을 글썽이며 청년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내일도 죽지 마세요.”

 

이 실험은 사회적인 관심도를 동시에 관찰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는데, 어느 중년의 어머니는 마치 자신의 자식인 것처럼 그렇게 애타게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인 소통이나 영적인 소통 모두는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여 세계인이 한 사회인 것처럼 된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나누고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진정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소통과 연결이 중요함을 잊지 마십시오. 매일 매 삶의 순간마다 주님과 교통하는 영적인 연결이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 삶의 형통입니다. 매일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연결을 굳건하게 유지하여 건강하고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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