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간절히 사모할 것
*** 간절히 사모할 것 / 베드로후서 3:8-13
베드로후서 3:8-13,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들어가는 말
옛말에 “겉 다르고 속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좋은 것처럼 꾸며서 행동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연륜만큼이나 자기 삶에 나름대로 공든 탑을 세워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외식적인 행동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런 외식적인 행동이 오랜 시간 세워온 자신의 영적인 삶을 무용지물로 만들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당시의 종교지도자였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나무라기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25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이 책망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십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삶은 진실한 것을 사모하며 생활에서 자기 신앙을 나타내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세상이 속임과 불법이 판을 치며, ‘꿩 잡는 것이 매’라는 말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고 자기 뜻을 이루면 된다고 생각하는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빛은 어두울 때 더 밝게 빛나듯이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신앙은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어두울 때 진가를 나타내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진가(眞價)는 세상의 상황과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영적인 가치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이 이러한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지키고 사모해야 할 삶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이러한 말씀을 듣고, 또는 알면서도 잊고 무덤덤하게 삽니다.
주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의사를 찾아 왔는데, 양쪽 귀가 뻘겋게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의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주 심하게 다치셨군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요?” “집에서 다리미질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얼떨결에 그만 다리미로 전화를 받았지 뭐예요.” 의사가 어이없어 웃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쪽 귀는 어떻게 된 거지요?” 그러자 여자가 말했습니다. “전화가 또 오더라고요.”
잊어버릴 것이 따로 있지. 건망증이 이쯤 되면 큰일입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잊어야 할 것도 많지만,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영원한 소망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본문 말씀에서 신중한 명령어로 기록되어 있는 8절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라는 말씀은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에 빠져 살지 않기 위함입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조롱 섞인 태도로 비난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 3:4)라고 하면서, 오히려 예수님의 재림을 전하는 베드로를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즉,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예로 들면서, 하늘과 땅은 장차 있을 불의 심판을 위해 예비해 둔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날을 준비하라.”라고 권고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이런 불신으로 가득한 이유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아무런 징조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믿음을 준비하라.’라는 말씀을 강도 높게 선포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아무런 징조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징조 조차도 없자, 재림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널리 퍼지면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던 소망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부당함을 깨우치고, 성도들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소망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종말이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설교가 오랜 세월 계속됐지만, 아직도 세상은 여전히 건재한 것을 보면서, 성도들의 신앙과 소망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가 잊지 않고 간절하게 사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8-10절 상반 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베드로 시대의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하지 않거나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 때 일어난다고 하신 환경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24:3절입니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24:4-12절에서 그 징조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자기가 예수라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서 미혹할 것이며, 나라와 민족 간의 전쟁이 많이 일어나며,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며, 극심한 핍박이 일어나며, 불법이 판을 치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직전에 있을 환난의 날에 일어날 징조를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시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징조가 일어나는지를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무런 징조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선포하는 제자들을 조롱했습니다. 그로부터 2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자연의 웅대함과 신선함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일부 인위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자연은 우리가 외경심과 푸근한 마음을 동시에 느낄 정도로 변함없이 웅대하고 아름답고 신선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재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아무리 ‘기회가 있을 때 믿음을 준비하라.’라고 해도 적당하게 웃어넘기고 맙니다. 홍수로 멸망된 노아 시대와 불로 멸망된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며 준비하라고 간곡하게 당부하는 노아와 롯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대단히 중요한 시간개념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표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시편 90:4절 말씀인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현대어성경 “그래요, 주께는 천년도 하루 같아 지나가 버린 어제 같고, 간밤의 짧디짧은 한순간 같을 뿐.”)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표현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시간이 사람의 시간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의 시간개념은 우리 사람의 시간개념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짧은 하루라도, 천 년의 시간이 필요한 일들을 문제없이 이루시며, 반면에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는 천년의 긴 시간도 하루처럼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시는 인류 역사 최종의 사건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 도둑이 들 듯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2-4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바로 본문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라는 말씀은 ‘하루라도 천년 같은 의미의 시간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며, “천년이 하루 같다.”라는 말씀은 ‘천년 같은 긴 시간이라도 하루가 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사는 것처럼, 천년을 살아도 단 하루를 사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라.’라는 뜻입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힘들고 지치고, 짜증이 날 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과 위로가 분명하게 함께 합니다. 이러한 의미로 미래에 평가될 자신을 생각하면서 종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 우리가 간절히 사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 10절 하반 절-13절을 봅시다. “…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육신적인 이 땅의 것은 모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말씀합니다. 즉, 이 땅의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가치 없는 것을 사모하지 말고,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애플 사(社)의 창업자이며, 후에 넥스트(NeXT)社를 세워 IT업계에 큰 획을 그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세계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희귀암 발병 등 건강 문제에 시달렸으며, 2004년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2009년 간(肝)이식 치료를 받았습니다. 2011년 8월 24일 병세 악화로 애플 CEO직을 사임했고, 사임 후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5일에 향년 56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와 능력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가진 어떤 것도 자신에게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의 없어질 부와 명예와 권력과 능력을 사모하며 자기 삶을 매진합니다. 이러한 삶의 끝은 영원한 후회만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무엇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을 여러 곳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다니엘 12:3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5:8절에서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라고 하십니다. 우리 삶에 효과적인 열매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6:9-10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 모든 의미를 함축하는 말씀이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처럼 복음을 전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며,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선한 일에 매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삶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지금의 생활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평안하고 준비할 기회가 있을 때, 영원한 복의 삶을 이룰 하나님의 날을 바라고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밝은 빛이 있는 날이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의 고난이 겹치는 어두운 날이 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가올 어두운 날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시간을 만들어가야만 합니다. 어두운 날은 내가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 불청객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대홍수가 휩쓸던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나, 불의 심판을 받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나 그 죽음의 시간이 그렇게 다가올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