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주어진 능력을 활용하십시오.
*** 주어진 능력을 활용하십시오. / 누가복음 10:1-3, 17-20
누가복음 10:1-3,17-20,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스마트시대여서, 많은 능력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스마트 폰을 조작하는 것부터 하다못해 집안의 전기, 전자기기들을 원격으로 제어하는 스마트하우스, 스마트 농법,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하는 스마트기기들 등. 그래서 많은 사람이 초현대적 생활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여 구시대로 밀려나곤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신앙의 삶에도 능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아시지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기다리던 아홉 명의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온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달라.’라고 했지만, 제자들은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와 아이를 고쳐주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즉,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근거를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에게는 능력이 있습니까? 누가복음 9:1-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보내시며” 본문에서는 70 명의 제자들에게도 같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1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세상을 장악한 악한 영들을 제어할 능력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을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 시간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능력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신 후,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3-24). 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팔 일쯤 지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변화 산으로 가셨습니다. 아홉 명의 제자들을 산 아래에 남겨두시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시고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그 사이, 산 아래서는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온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병을 고쳐달라고 한 요구를 이루지를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일 후에, 예수께서는 따르는 제자 중에 칠십 명을 따로 불러서 복음을 전하도록 각 지역으로 보내셨습니다. 칠십 명의 제자들이 전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이미 악한 영들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능력이 활동하게 되는 원인을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처럼 악한 영들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이 무능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허브 윌러’가 쓴 ‘Connecting with God(하나님과의 연결)’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적한, 아주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마을에 나이트클럽이 들어왔습니다. 나이트클럽이 개업 한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큰 걱정에 빠졌습니다. 그 술집 때문에 평화롭던 마을이 밤늦도록 시끄러울 것이고, 젊은이들은 타락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훤했기 때문입니다. 마을교회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밤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합심 기도를 하면서 성도들은 “하나님, 우리 마을의 나이트클럽을 불태워주십시오. 그래서 이 모든 죄악으로부터 우리 마을을 건져주십시오.”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번개가 번쩍이면서 천둥소리가 요란하던 어느 날, 나이트클럽에 벼락이 떨어져서 정말로 불이 났습니다. 나이트클럽 주인은 ‘마을의 교회가 자신의 영업소를 불타게 해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라고 교회를 상대로 법원에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법정에서 교회의 대표는 ‘우리가 기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도 때문에 나이트클럽이 불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책임을 부정했습니다. 양쪽의 주장을 다 들은 재판장이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누가 범죄를 했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나이트클럽의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는데, 교회의 교인들은 기도의 능력은 완전히 부정하고 있군요. 내가 보기에는 나이트클럽 주인의 믿음이 훨씬 더 훌륭하게 생각됩니다.”
예전에도 한 번 했던 내용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가 막히지요? 이러한 경우가 전형적인 ‘겉치레 신앙의 무능한 모습’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내게도 유효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서도 기도에 대한 응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성경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12:1-17절에 나오는 감옥에 갇힌 베드로와 그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5절에서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12-15절을 봅시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아이는 힘써 말하되‘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교회가 왜,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당연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어 감옥에서 풀어주셨는데, 기도하던 성도들은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신앙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는 겉치레 신앙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아니, 믿는 대로 행동하는 진실한 신앙보다는 말로만의 겉치레 신앙이 더 많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4:2절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을 기도하면서도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기대하지도 않는 이러한 신앙은 자신의 믿음을 무능하게 가두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지만, 행동이나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칠십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실천할 때 귀신들이 항복했습니다. 예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 때, 그 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제자들이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23-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지만, 의심하거나 실천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무능력한 신앙이 됩니다.
※ 주어진 능력을 활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능한 신앙이 되지 않으려면 주어진 능력을 활용해야 합니다. 주어진 능력을 활용하려면 먼저 내게 주어진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본문 19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본문 앞쪽의 9: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따르는 칠십 명의 제자들, 이들에게 예수님은 악한 영들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가르칠 때, 병이 낫는 이적과 귀신이 항복하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된 능력뿐만 아니라 제한되지 않은 능력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2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그리고 마가복음 9:23절에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본문 말씀처럼, 예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다만 적절한 상황에서 믿음으로 구하고 순종하여 실행할 때,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20세기 초에 중국에 파견되었던 ‘루스 펙트’ 여선교사의 일화입니다. 선교사가 핀란드에서 같은 기차를 탔던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교사는 그 여인을 보면서 제일 먼저 느꼈던 것은 ‘그 여인의 환하게 빛나는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곧 그 여인의 오른쪽 손이 없고, 그 자리에 금속으로 만든 의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화 도중에 ‘그 여인은 인도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폐병에 걸려 이제 본국으로 소환되어 죽을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여인은 고국 핀란드에 돌아와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던 중 어느 날, 탈곡기에 손이 걸려 오른손이 절단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오른손이 절단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기도가 “주님, 오른손이 없는 나에게 이제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녀는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라고 주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 여인에게, 그 농장을 나이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양로원으로 개조하도록 하셨고, 그것을 통해 남은 생애를 많은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놀라운 일을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이나 시련이 닥칠 때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이런 물음은 신앙적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마음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면서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환상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분이 자신이 박해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안 후에 처음으로 한 말이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행 22:10)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가 앞으로 할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첫 번째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설계하시고 이루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이 처한 상황은 마치 이리 떼가 득실거리는 가운데 무기력한 양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런 곳으로 우리를 보내시는 예수님께서 무작정 보내지는 않으십니다. 악의 영들과 세상 권세 자들을 능히 대적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에베소서 6:10-12절을 봅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히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활용하는 길은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생활 속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이나 염려, 걱정 등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표현입니다. 두려움이나 걱정은 사람의 능력을 무력화시킵니다. 디모데후서 1:7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부정적인 믿음, 두려움과 걱정, 좌절과 절망감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수 없습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내게 나타나게 됩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부정적인 요소나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널려 있지만, 이러한 상황을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능력을 기도로 활성화하고, 믿음의 행동으로 우리의 삶에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 주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도록 주신 귀한 능력을 활용하십시오. 그리하여 마귀가 항복하며, 삶 속에서 능력을 나타내어,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으며,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