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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기도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868회 작성일 2022-12-05 12:26

*** 능력 있는 기도 / 누가복음 22:39-46

 

누가복음 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평화를 뜻하는 단어가 있는데, 라틴어로는 팍스(Pax), 히브리어로 샬롬(shalom, 헬라어 eirene)이 있습니다. 라틴어 ‘팍스’는 영어 Peace의 어근이 된 단어이며, 보통 ‘한 세력이 힘으로 이룬 장기간의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물질적인 만족감이나 법,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로마는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하루도 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많은 땅을 정복했고 지배했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국가는 폐허가 되고 로마의 속국이 되어 수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을 통해 강성해지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결국은 그 힘과 물질에 의해 로마는 망했습니다. 이에 반해 히브리어 ‘샬롬’은 조금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평화, 화평’이라고 흔히 번역하지만, 본래의 뜻은 ‘온전하다, 완전하다’라는 것입니다. 힘으로 이룩한 평화 ‘팍스’와는 달리, ‘샬롬’은 친선과 협력으로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샬롬의 평화를 이루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14:27에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즉 샬롬의 평화를 이루시는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주님의 평안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길이 주님과의 교통인 기도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통로인 기도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기본이며 뿌리입니다. 건축물은 기초가 튼튼해야 안전한 건축물이 되고, 식물은 뿌리가 튼튼해야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나 나라도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기초질서나 국민의 의무인 법을 존중하고 따르는 기본이 지켜 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영의 삶이 건강 하려면, 신앙의 기초인 기도 생활이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이른 아침과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으며, 본문에서 대속(代贖)의 죽음을 앞두시고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가 이처럼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기초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기초가 되는 기도와 그 능력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입니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깝고 기도하기 좋은 장소여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즐겨 찾으시던 곳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후에 30여 미터 거리를 두고 홀로 고통스러운 깊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하셨던지 땀이 핏방울처럼 보였습니다. 즉 너무나 애타고 간절하게 기도하셔서 모세혈관이 터져 피가 땀방울에 배어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선생님의 그 애타는 마음을 알지 못하고 피곤함에 빠져 잠들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연약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는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언제나 사탄의 세력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그토록 전심전력으로 싸우실 정도로 영적 전쟁은 치열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의 세력을 이기는 길이 기도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변화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후에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고,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대적인 악한 영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 일반적인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와 다릅니까?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줄이자 하나님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입니다.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연결될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치고 기도에 관하여 고심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심은 하지만 방법을 제대로 몰라서 유야무야(有耶無耶) 힘없는 무능한 기도만 하게 됩니다. 확신이 없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정신 차리고 깨어서 하나님 약속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기도라고 함은 행사적이거나 형식에 맞춰진 기도를 말합니다. 주기도문을 한다거나, 예배 순서에 따라서 정해진 기도할 때, 또는 통상적인 내용으로 기도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하고 할지라도 간절함과 진정성으로 한다면 일반적인 기도라고 할지라도 당연히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다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통상적으로 하게 될 때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기도를 ‘중언부언’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6:7입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는 듣기 좋은 말이나, 말을 많이 하여 설명하듯이 길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능력 있는 기도란, 하나님께 인정받아 응답 되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런 기도는 누가복음 18장에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좋은 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며,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기도를 했으며, 세리는 부끄러워서 감히 눈을 들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받는 능력 있는 기도는 세 가지를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마음을 낮추어 회개와 용서가 있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온 마음을 쏟는 간절함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42절에서 주님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고, 44절에서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라고 하십니다. 상황이 절박하여 마음의 고통이 극에 달하게 되면, 모든 생각이 멈추고 오직 그 일을 위해 부르짖는 간절함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2-13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마가복음 9:29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즉 악한 영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은 기도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하시는 능력 있는 기도를 원한다면 진정성과 겸손함과 간절함의 순종으로 해야 합니다.

 

※ 어떻게 능력 있는 기도를 합니까?

 

타조의 습성에 관하여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타조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데, 이 모습을 본 많은 사람은 잠시 생각합니다. ‘자기 눈을 가려서 천적이 안 보이게 되면 천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타조를 연구하는 사람은 타조의 이런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선은 자신의 큰 몸을 웅크려서 몸을 감추는 것입니다. 타조의 평균 신장은 2m가 넘습니다. 적이 나타나면 그 커다란 몸을 최대한 숙여 적의 눈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속에 머리를 파묻는 더 큰 이유는 땅으로 전해지는 소리를 듣고 주위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타조는 판단력이 우수하고 청력이 매우 좋은데 땅속으로 머리를 넣어 접근하는 육식동물의 발소리를 통해서 상대의 크기와 위치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탐색을 통해 달아나야 할 방향을 재빨리 파악하고 시속 80km의 빠른 속도로 달아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열왕기하 20:2에서 남 유다 13대 왕인 히스기야가 하나님께서 ‘집을 정리하라.’라는 말씀을 듣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낯을 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 오직 하나님께로 집중했다는 뜻입니다. 마치 타조가 천적이 나타나면 머리를 땅에 묻고, 천적의 행동을 탐지하는 데 온 힘을 쏟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6:6에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하십니다. 은밀한 골방은 오직 하나님께로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기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함께 떠오른다면 마음이 흩어져서 하나님께로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능력의 기도를 하려면 먼저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인 ‘수잔나 웨슬레’는, 열아홉 명의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수잔나’는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수잔나는 기도할 만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서건 앞치마를 뒤집어쓰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수잔나가 앞치마를 뒤집어쓰고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아이들은 엄마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용해지곤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엄마의 기도 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기도의 일상화입니다. 예수께서는 기도가 일상생활화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39절에서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라고 하십니다. “습관을 따라” 원어에서는 ‘카타 토 에도스’라는 말인데, ‘관습이나 법으로 정해진 습관을 따르는 것’, ‘관례적인 일’, ‘익숙하게 행동하는 것’ 등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다는 것은 생활 속에서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기도는 부적처럼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꺼내 드는 찬스 카드도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과 함께하는 생활이며 주님이 주인 되시는 삶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뜸하게 이루어진다면, 어느 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 받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항상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어떤 위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즉시 도움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끝으로,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느낄 수도 없는 암울한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불이 났습니다. 집에 있던 어린 아들이 불길을 피해 2층 베란다로 피했습니다. 1층에서 밖으로 피신한 아버지가 아들을 발견하고는 “얘야, 뛰어내려. 내가 받을게.” 그러나 1층에서 올라오는 연기 때문에 소년은 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울먹이면서 소리쳤습니다. “아빠를 볼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얘야, 난 너를 볼 수 있단다. 아빠만 믿고 뛰어내려!” 결국, 어린 아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연기 속에서 뛰어내렸고 안전하게 아빠의 품에 안겼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며, 눈물과 한숨이 나올 때라도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앞길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아시고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진정성과 겸손함, 간절함의 순종으로 이루는 매일의 기도로 주님이 내 삶을 인도하시는 능력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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