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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랑 십자가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612회 작성일 2022-11-28 15:59

*** 우리의 자랑 십자가 / 갈라디아서 6:11-16, 이사야 53:4-6

 

갈라디아서 6:11-16,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사야 53: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들어가는 말

 

십자가! 우리는 이 단어를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떨려옵니다. 극악하고 비인간적인 사형 도구였던 십자가,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의 상징이 되어 가슴 떨리는 사랑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며, 지금도 우리에게 오시고,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심을 생각하는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이 대강절 첫날에 성찬 예식을 행하며,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주님을 기념하며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려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이며 능력인 십자가를 다시 우리 마음에 일으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원주민들에게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용서 주간’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 모든 사람은 누구에게나 오해였든 사실이었든 상관없이 어떤 잘못이라도 용서해 준다고 합니다.

‘찰스.H 크래프트’ 목사님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쥐가 꼬이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 즉 미움, 원망, 원한, 증오, 분노, 용서 못 함 등의 쓰레기가 있으면, 그 쓰레기 속에 마귀들이 자리 잡고 여러 가지 문제와 고통을 준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며, 구원의 길을 여는 문입니다. 세상의 온갖 아픔과 상처, 혼란과 요란스러움 등을 일으키는 주범은 악한 영들입니다. 이 악한 영들은 사람의 마음에서 해결되지 못한 미움, 원망, 분노 등의 죄악을 통로 삼아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9-11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이 성찬 예식입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갈라디아서는 별칭이 ‘그리스도인 자유의 대헌장’입니다. 이 짧은 편지는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의 갈라디아교회는 그들 가운데 몰래 들어와서 이단 사상으로 유혹하는 자들 때문에 신앙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편지의 내용은 가장 현실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법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에 멈추지 않고 우리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임을 일상생활과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예수님의 삶 전체에서 나타나며, 바울은 이점을 상기시키면서 ‘모든 성도에게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라고 합니다. 특히 갈라디아서는 복음에서 떠나도록 미혹하는 유대교적인 사상으로부터의 복음의 자유를 선포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의 내용은 다소 전투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특히 믿음에 의해서만 외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사상은 예로부터 종교개혁을 이루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내용의 편지이지만 신약의 교리서인 로마서와 마찬가지로 믿음, 율법과 복음, 행위와 신앙 등의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중요한 편지입니다. 본문 말씀은 결론부로서 율법의 핵심인 할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비교하며 십자가 의미의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핵심 내용인 본문 14-15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그리스도인에게는 오직 십자가만이 자랑거리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본문 말씀은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한 말씀’인데, 52:13절부터 53장 전체를 포함합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아가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메시아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예고하신 내용입니다. 그중에서 본문 말씀은 메시아가 당하시는 고난의 이유와 고난받는 메시아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특히 이 말씀 중에는 하나님의 한없으신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시고 죄로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자랑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이루신 예수님의 구속하심이 자랑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가 왜 우리의 자랑입니까?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피조물을 조성하시고 다스리시는 주권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인간의 구원에 대한 계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이 땅을 창조하시던 때부터 인간의 타락을 아신 하나님께서 구원계획도 세우셨습니다. 창세기 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에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로 표현된 존재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예언한 말씀이 이사야 52:13절부터 본문을 포함하는 53장 전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인간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외와 감사함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사야 본문 4절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러한 사실은 지금도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듯이 바라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한 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낙원인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거듭남(重生, born again)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고 회개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기억하며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1:23-24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시고” 이는 그리스도인이 마지막 호흡하는 순간까지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구원을 잊지 않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자랑해야 합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수치와 고난의 십자가가 우리의 자랑이라는 이유는 우리의 구원이며,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어떻게 자랑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생활에서 십자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첫째는 십자가로 이루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둘째는 십자가가 의미하는 희생과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3-16을 봅시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며, 죽음의 형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이루신 속죄의 은총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감사와 자랑거리가 됩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입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여 알게 하며, 생활 속에서 희생과 용서와 화해를 실천해야 합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화창한 봄날에 기분 좋게 언덕을 올라가던 소년은 길에 튀어나와 있던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돌덩이가 왜 사람들 다니는 길에 있지?” 소년은 삽으로 돌부리를 캐내기 시작했습니다. 파헤치자 점점 돌의 크기가 드러났습니다. 땅 위에 보이는 돌은 사실 큰 바위 일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놀랐지만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리지 않도록 파내겠어!” 소년은 분한 마음 반, 정의감 반으로 거대한 돌에 달려들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삽을 놓았습니다. “안 되겠다. 포기하자.” 소년은 파놓았던 흙으로 돌이 있던 자리를 덮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걸려 넘어졌던 돌부리도 흙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중얼거렸습니다. “왜 처음부터 이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지?”

 

남을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들춰내지 않고 묻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묻었던 것을 자꾸 들춰내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 용서하신 것은 다시는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레미야 31장의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마가복음 11:25에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하시며, 에베소서 4:32에서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2:14에서는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자기 생명을 버리신 희생과 죄인을 용서하심으로 화해하심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5:13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시며, 요한일서 3:16에서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하십니다. 희생이란, 목숨을 버리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김, 봉사, 헌신, 베푸는 것, 돌아보는 것 등. 자신을 내어주는 모든 것이 희생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장 값진 삶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이 대강절, 그리고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희생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성찬 예식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주님을 깊이 새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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