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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380회 작성일 2022-11-20 16:44

***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 시편 67:1-7

 

시편 67:1-7, (한글킹제임스역)“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기를 원하나이다. 셀라. 2 그리하여 주의 길이 땅 위에 알려지고 주의 구원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 알려지게 하소서. 3 오 하나님이여, 백성들로 주를 찬양하게 하시며 온 백성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4 , 민족들이 즐거워하고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소서. 이는 주께서 백성들을 의롭게 판단하시며 땅 위의 민족들을 통치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셀라. 5 오 하나님이여, 백성들로 주를 찬양하게 하시며 온 백성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6 그때 땅이 그 소산을 낼 것이요,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이다.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며, 땅의 모든 끝도 주를 두려워하리이다.

 

** 들어가는 말

 

지금, 이 계절은 한해의 결실을 거두고 감사하는 때이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어떤 양봉업을 하는 사람이 꿀을 많이 채취할 방법을 연구하다가 좋은 길을 찾았습니다. 겨울이 없어서 사시사철 꽃이 피는 열대지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꿀벌을 가지고 ‘남양 군도’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의 계산대로 이주한 첫해에 많은 꿀을 채취했습니다. 양봉업자는 “야, 이렇게 몇 해만 하면 큰 부자가 되겠어. 꽃 많겠다. 꿀 많겠다. 벌이 부지런하겠다. 얼마나 좋은가?!”라며 환상에 젖었습니다. 이주 2년째인 이듬해에는 벌들의 활동이 이상했습니다. 벌들이 꿀을 나르는 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았습니다. 첫해의 절반 정도만 채취했습니다. 그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내년에는 괜찮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3년째에는 벌들이 전혀 일하지 않더니, 아예 벌통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벌통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양봉업자가 왜 실패했겠습니까? 이유는 남양 군도에는 겨울이 없기 때문입니다. 양봉업자는 하나만 알고 더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겨울이 없고 항상 꽃과 꿀이 넉넉하다는 것은 꿀을 저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그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벌은 꿀을 모아야 할 목적이 없어지자 수고롭게 일하지 않고, 풍성함에 빠져서 각자의 길로 흩어져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리면, 세상의 부귀영화에 빠져 제멋대로 살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이사야 22:13에서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하도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사야 43:21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시며, 에베소서 1:3-6에서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그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라.”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을 찬송하는 목적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 목적을 잃어버리면 표류하는 배와 같은 인생이 됩니다.

 

※ 본문의 배경과 내용을 봅시다.

 

본 시는 저자도 알려지지 않았고, 기록 배경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시(詩)가 예로부터 ‘초막절(추수감사절)’에 낭송되었으며, 유대인들 사이에서 ‘추수 감사찬송’으로 불렸다는 것만 알려져 있습니다. 초막절은 유대인들이 반드시 지키는 삼 대 절기 중 일곱째 달 15일부터 7일 동안 지키는 마지막 절기입니다. 초막절이 되면 온 유대인들은 ‘초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그곳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초막을 짓고 살았던 광야 40년을 은혜 가운데 지나오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일 년의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고 드리는 것입니다(레23:33-43). 특히 본 시는 제사장들에 의하여 선포되었던 축복기도의 문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민수기 6:23-27을 봅시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제사장의 축복이라고 부르는데, 이 구절을 사용한 이유는 ‘복의 근원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기 위함’ 입니다. 즉,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외하고 섬기며 따라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깨닫고 실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유일한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인, 즉 많은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구원의 복을 받기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이들을 세상에 퍼뜨릴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2-3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만민에게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3:8-9입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것은, 먼저, 나를 지으시고 내 모든 삶의 영역을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을 그 길로 인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본문 3-5절에 계속 모든 민족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진정하고 유일한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고 디모데에게 명합니다. 디모데후서 2:2절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성도는 자신의 모든 생활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와 민족과 세계를 향한 관심의 폭을 넓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은혜를 자신만 가지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9: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고백했으며, 디모데전서 5:8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를 만드시고 친히 다스리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 된 우리는 찬송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복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는 UN 가입국이 193개 국가이며, 그 외 소수 민족과 집단을 포함하면 245개 국가이며, 6500여 언어집단이 있고, 3000여 민족이 있습니다. 이 민족들은 저마다의 문화와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개한 민족이나, 개발도상국이나, 과학이 발달한 선진국을 막론하고 ‘제 나름의 복을 기원하는 종교와 문화를 가졌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주역(周易)을 토대로 만들어진 ‘토정비결’이 조선 시대부터 민간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 이러한 미신도 없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미신조차 과학의 혜택을 받아 더욱 기승을 부리는 현실입니다. 택일, 관상, 사주팔자, 궁합, 운세, 각종 점, 풍수지리 등. 오늘에 와서는 외국의 미신까지 들어와서 온통 난리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성도들조차 이런 관습을 벗어버리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빨을 뽑으면 어디다 버려야 되고, 문지방을 밟지 않아야 하고, 이사할 때는 살이 끼지 않은 날을 잡아야 하고, 액땜해야 하고, 등등. 복을 구하는 눈물겨운 노력이 종교와 문화 속에 녹아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런 행위가 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45:21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앞서 읽었던 에베소서 1:3절에서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하십니다. 이는 복을 주시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구하고, 복을 구해야 할 대상이 누구이심을 분명하게 알고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과 은혜는 구한다고 다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 안에서 주어집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응답이 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기를 원하나이다. 셀라. 2 그리하여 주의 길이 땅 위에 알려지고 주의 구원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 알려지게 하소서.” 1절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원하는 간구이며, 2절은 앞 절의 간구가 응답 됨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은총이 만방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복 주시는 뜻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태복음 6:33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생각하고 선택할 대상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기망양’(多岐亡羊, 많을 다, 갈림길 기, 잃을 망, 양양)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여러 갈래의 길에 이르러 양을 잃었다’라는 뜻입니다. 즉, ‘선택할 대상이 너무 여러 가지여서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곤혹스럽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오늘의 사회가 이와 같지 않은가 싶습니다. 현대인들은 선택할 대상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분명한 인생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3-14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분명한 인생 목표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일에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가장 첫 자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하며, 진정으로 의지하고 복을 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적이 일어나게 하며,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본 시를 기록한 시인은 풍성한 가을 수확을 하면서, 바로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세계 선교 계획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복을 주시는 복의 주체가 누구인지, 찬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이며, 왜 찬양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복을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쁨이 되도록 합당하게 구하면,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기를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이 하나님을 주변에 널리 나타내고 알려서 하나님의 복이 삶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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