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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 2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549회 작성일 2022-10-16 14:55

***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 2 / 누가복음 19:1-19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들어가는 말

 

이제 10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는 바야흐로 감사의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 년에 세 번, 하나님께 나아와서 경배해야 하는 절기를 명령하셨습니다. 유월절(무교절), 초실절(맥추절), 장막절(추수감사절) 이 세 절기 가운데, 일 년 중 마지막 수확을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장막절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추수감사절이라는 이름으로 절기를 지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세 절기가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한다.’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편 50:14-15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중요한 신앙적 감성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젼 목사는 “등잔불에 감사하면 촛불을 주시고, 촛불에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면 환한 태양빛을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감사의 습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 두 번째 말씀의 주제는 ‘감사’입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의 내용은 잘 알려진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학교에서부터 늘 들어왔던 재미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3년 공생애 말기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중에 비옥하고 풍성한 오래된 옛 도시 여리고에 들리셨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로마의 세관이 있었고 삭개오는 그 세관의 세리장이었습니다. 때마침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순례 객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에 대하여는 익히 들었던 터라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키가 작아서 사람들에 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가시는 길 저만큼 앞으로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예전에는 뽕나무라고 했었는데, 원어에 충실하게 해석하여 돌무화과나무라고 함)로 올라갔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가 있는 나무 앞에 이른 예수께서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삭개오를 불렀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리를 죄인으로 여기던 유대인들은 상종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유대인 랍비인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서 하루를 묵고자 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즉시 영접했고 예수님의 관심에 감격하여 중요한 약속을 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하시며, 삭개오의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 중에서 육신의 병을 고친 사람, 육신의 병과 영의 생명까지 얻은 사람들, 구원받은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났던 그 많은 사람은 똑같이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를 얻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이 일은 오늘에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정말 전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16:9에서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진정성을 가진 성도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 하나님께로 향하는 진정성이란 어떤 것입니까?

 

골로새서 3:15-17을 봅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공동번역),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감사’라는 말은 범세계적이고 모든 민족이 다 사용하는 언어이며 표현입니다. 그만큼 만국 공통 표현답게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통하는 것이며, 기분 좋은 표현입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감사에도 격이 생겼습니다. 격이 높은 감사도 있고 격이 낮은 감사도 있고, 마음을 좋게 하는 감사도 있고, 마음을 묘하게 만드는 감사도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의 격이 달라지는 것은, 마음의 진정성 여부 때문입니다. 즉 ‘엎드려 절 받는’ 식으로 마지못하여서 하는 감사, 마음에도 없는 습관적인 감사의 표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자세는 ‘하나님 경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탄식하십니다. 이사야 1:12-13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함은 내가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즈음 교인들은 하나님을 마치 예비용 타이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라는 것입니다. 예비용 타이어는 사용되는 타이어가 갑자기 펑크가 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위해 준비해 둔 것입니다. 사용하고 있는 타이어가 별일이 없다면 결코 예비용 타이어는 말 그대로 예비용일 뿐입니다. 이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힘과 능력, 자기 생각대로 잘 살다가 가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감사도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으로 행하는 예배나 섬김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호세아 6:6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성도의 진정성의 출발점입니다.

 

※ 왜 감사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가 됩니까?

 

본문 8-9절을 봅시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 말씀은 죄인인 자신을 찾아와 주신 예수께 진정한 감사의 표현이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기 재산을 이렇게 아낌없이 내놓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항상 유대인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자기를 죄인 취급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유명한 선지자로 알고 있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스스럼없이 들어와서는 ‘오늘 네 집에서 머물러야 하겠다.’라고 하시니, 그런 감동도 없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즉시 예수님의 요청에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결단을 감사의 표현으로 응답했습니다. 앞서 읽었던 역대하 16:9을 다시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하나님의 능력은 거짓 없이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열왕기하 5:15-18을 봅시다.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제든지 다른 희생 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나병 환자였던 아람의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고침을 받은 후, 이후부터 자기 삶의 방향을 결단하는 진정한 마음의 표현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으면, 이방 신을 섬기는 나라의 두 번째 권력자가 ‘앞으로는 오직 여호와께만 예배하겠다.’라고 했겠습니까! 이에 대한 엘리사 선지자의 “너는 평안히 가라.”라는 응답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진정한 마음의 감사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며, 이 감사의 표현이 하나님의 능력을 임하게 합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편에서 가게를 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들이 취급하는 물품이 비슷한 것이 많아서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향하는 미움과 질투심이 커갔습니다. 이 상황이 늘 마음에 걸림이 되던 성도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성도는 상황을 설명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에는 그 사람을 질투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해야 그 질투심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은 성도에게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렇게 해보세요. 상대방 가게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손님이 당신 가게에 와서 어떤 상품을 찾을 때 그 상품이 없다면 그 손님에게 당신이 질투하는 그 사람의 가게를 소개하십시오.” 성도는 ‘혹 그러다가 손님을 빼앗기면 어떻게 하지!’라는 염려가 되었지만,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이 더 늘어갔고, 그중에는 건너편 가게에 들렀다가 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질투심이나 미움이 없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표현되는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현대의 성도들은 조건부 감사를 하기도 하며, 별생각 없이 의식적으로 감사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하지만, 무엇이 감사한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저 의식화된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도 이런 의식화 된 감사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의식화된 감사란, 바리새인처럼 모든 신앙의 요소를 의식화시킨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를 드리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신앙에는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마음의 감사와 표현은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이 지금 이 시대의 교회에도 많습니다. 이사야 55:8-9을 봅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에 계시기 때문에 내가 의식적으로 감사하는지,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하는지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구원하시고,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고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우리는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삭개오나 나아만처럼,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진정한 감사를 표현하는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하거나 많이 인색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말씀처럼, 감사의 표현도, 사랑의 표현도 많이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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