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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세상, 진실하게 살기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577회 작성일 2023-11-19 17:42

*** 이기적인 세상, 진실하게 살기 / 에베소서 5:8-17

 

에베소서 5:8-17,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들어가는 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개인이 중시되는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많은 교회도 자기 신앙의 만족만 채우고, 교제도 봉사도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시대는 이런 모습으로 점점 더 깊어지겠지요. 이렇게 이기적인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까요? 1984년 종로서적이 초판으로 펴낸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시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이현주’ 목사의 작품 모음집입니다. 그의 책 머리말에서 “나는 유명한 소설가 또는 시인이 못 된 것이 한스러운 게 아니라, 내 생각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 것이 늘 부끄럽고 한스럽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피었다가 지리라. 바람으로 피었다가 바람으로 지리라. 누가 일부러 다가와 허리 굽혀 향기를 맡아 준다면 고맙고 …”라고 하면서, 그는 ‘이름값을 하면서 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면 이름값을 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현주 목사의 책 내용을 조금 더 인용하겠습니다. 그의 책에서 잃은 양의 비유를 현대적인 풍자극으로 기록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너희의 생각은 어떠냐? 어떤 사람에게 양 일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냉정한 이성을 소유한 장사꾼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다니요? 그 한 마리를 찾으려다가 아흔 아홉 마리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합리적인 경영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목자는 머리가 돌았군요.” 어느 날, 그 장사꾼이 아들 삼 형제 중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너의 생각은 어떠냐? …” 고 주님이 다시 묻자 장사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목자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저도 얼마 동안은 잃어버린 자식의 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아이에게만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저에겐 두 아들이 남아있으니까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냉혹한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무정한 아비라고 비난받아도 어쩔 수 없어요.” 어느 날, 그가 깊은 산속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시나무 우거진 바위 벼랑에 매달려 그는 소리 질렀습니다. “당신은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겠다고 하셨지요? 당장, 이리로 와 주십시오. 결코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어리석은 목자, 무정한 아비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제발, 저를 버리지는 마십시오.”

 

이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인간이 간사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에게 직접 관계되지 않을 때는 ‘먼 산에 불구경하듯’ 무관심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올 때는 안절부절못하며 무관심한 사람들을 탓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잠언 21:13절에서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2:13절에서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 즉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 말씀하신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이름값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8-12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자기 이름만 아니라 자신의 직분, 직책, 신분에 걸맞게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정당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을 일컬어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주 안에서 빛이 된 사람들은 그 이름값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 실험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에 사탕 바구니를 놓아두었습니다. 한 아이가 다가오더니 사탕을 보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 움큼 사탕을 집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사탕 바구니 옆에 큰 거울을 두었습니다. 다른 아이가 다가와서는 사탕을 집다가 옆을 보더니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쥐었던 사탕을 제자리에 놓고 가버립니다. 이 실험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면 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라는 도덕성 실험입니다. 이것을 ‘거울 효과’라고 합니다. 즉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도덕성은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타의적인 간섭에 의한 의도적 도덕성입니다. 세상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도덕이나 윤리성은 이런 ‘의도적 도덕성’입니다. 이런 것을 빛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성은 절대 선(善)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들어진 빛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스스로 빛이셨습니다. 그 빛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라고 하십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빛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빛의 삶은 은밀하게 숨겨진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어떤 행동에도 부끄럽지 않은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빛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입니다. 육신적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본문 14절에서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라고 하십니다. “죽은 자들”이란 ‘영적으로 생명이 없는 자들’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도덕적인 감각도 없이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의 생명도 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영생을 가진 자로 살아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이름값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16-17절을 봅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주시는 분이 성령이시며, 이렇게 성령께서 임재하신 그리스도인들을 성전(聖殿)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16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빛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는 신분이며 영적 생명입니다. 이 신분에 걸맞게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 어떻게 이름값을 하며 삽니까?

 

본문 9절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빛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의 삶’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빛의 사람들이 나타내야 할 삶은 ‘모든 착함과 진실함과 의로움’입니다. “착함”을 뜻하는 헬라어 ‘아가도쉬네(goodness)’라는 말은 ‘선행’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관대한 정신’을 의미합니다. 즉 ‘넓은 아량과 폭넓은 이해심, 모든 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포용력과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빛으로서의 착함은 부드러움과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을 위로하며 희망을 주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의로움”을 뜻하는 ‘디카이오쉬네(righteousness)’라는 말은 ‘하나님과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빛으로서의 의로움은 자신이 행해야 할 의무를 온전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진실함”을 뜻하는 ‘알레데이아(truthfulness)’는 ‘실제로 행하는 도덕적인 진실’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할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거짓 없는 참된 행위’입니다. 종합하면, ‘넓은 아량과 폭넓은 이해심, 모든 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포용력과 아낌없이 주는 사랑, 자신이 행해야 할 의무를 온전하게 수행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거짓 없는 참된 행위’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 어울리는 요약된 이름값입니다.

 

한신대 정태기 교수가 쓴 ‘내면세계의 치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상처 입은 마음에 대한 한국식 자기 고백적 내적 치유서’입니다. 내용 중에 저자가 미국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친구 목사로부터 ‘자신의 교회에 와서 설교해 달라.’라는 부탁을 받고 그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제일 먼저 교회 입구에서 청소하는 분과 마주쳤습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그분은 신바람이 나서 춤을 추듯이 걸레질에 열중해 있었습니다. 친구 목사를 만나자마자 그 사람을 칭찬했습니다. “자네, 참 좋은 관리 집사를 두었네.” 그러자 친구 목사는 “현관에서 청소하시는 그분? 그분은 관리 집사가 아니라 바우서 박사라네. 우리 교회에서 지난 40년 간 장로로 수고하시다가 이제는 은퇴하신 분이시지! 그분은 40대가 아니라 올해 여든하나이시지.”라고 했습니다. 정 교수는 “81세 노인이 그렇게 젊어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걸레를 들고 그처럼 신바람 나게 청소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교회에서 빗자루와 걸레를 들었던 그 장로님은 세계 물리학의 대가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대학 총장을 지낸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40대에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분은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라는 고백으로 사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생활입니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 말씀한 성령의 열매를 합해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실천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을 찾아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삶과 반대되는 것을 ‘어둠의 일’이라고 합니다. 즉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들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어둠의 일은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함께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의 어둠의 일을 책망해야 합니다. 즉 어둠의 일을 행하는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고, 생명의 빛을 나타내는 것은 빛의 사람들이 해야 할 합당한 일’입니다. 다니엘 12:3절에서는, ‘이런 일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상급을 받게 된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시대가 악하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서 사용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찾아 행하라고 하십니다.

 

전도하면서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혹은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에 가고 싶습니까?”라고 물으면 100% ‘천국에 가고 싶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대답 중에서 85% 정도의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➀교회에 등록하고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 ➁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 ➂성경을 많이 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 ➃자기의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 ➄ 무엇을 믿든지 자기가 믿는 것을 굳게 지키면 천국에 갈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습니까? 15% 정도의 사람들이 대답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85%의 사람들이 대답한 내용은 세상에서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자기 생각입니다. 착하게 살고 진실하게 산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진실하게 사는 이유는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이름값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 나라가 정말 있는지!’, ‘하나님 나라에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지!’등. 생명에 관계된 중요한 내용을 확신하지 못하거나, 어렴풋한 생각만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주님이라고 부르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이름에 걸맞은 진실한 삶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며,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채우심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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