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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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복이 되는 이름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400회 작성일 2021-11-08 14:57

*** 알면 알수록 복이 되는 이름 / 이사야 53:1-6

 

이사야 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들어가는 말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반 파센(Pierre Van Paassen)’의 작품 중, ‘우리 시대의 날들(The days of our years)’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보우그’라는 마을에 ‘우고린’이라는 본성이 착한 꼽추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우고린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며, 그의 어머니는 주정뱅이여서 ‘소랑케’라는 그의 누이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누이 ‘소랑케’가 어느 날,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 후, 그녀가 석방되었을 때 불구인 동생이 병들어 누웠습니다. 직장을 얻을 수 없었던 소랑케는 자신의 몸을 팔아 동생의 약값을 마련했습니다. 어느 날, 우고린은 몰지각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우고린을 넘어뜨리고는 그를 중심으로 춤을 추면서

“네 누이의 연인들이 네 약값을 위해 한 프랑씩 지불했다.”

라고 비웃으며 놀렸습니다. 그때, 그 마을의 나이 많은 신부가 와서 그들을 물러가게 하고 우고린을 구해주었습니다. 다음날, 그 꼽추는 모멸감과 치욕을 참을 수 없어서 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의 누이 소랑케는 총으로 죽음을 택하여 동생을 따라갔습니다. 이 일을 본 늙은 신부는 “이 어린 것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비가 없는 사회에 의해 살해당했다.”라고 비통하게 말했습니다. 그 오누이의 장례식 때 교회가 가득 찼습니다. 신부는 설교하면서 통곡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여. 생사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심판 날 나에게. ‘네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때, 나는 주님께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 번째로 ‘네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들은 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리떼였습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지금의 세대를 비판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욥기에 등장하는 세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너무나 개인주의로 가득합니다. 그래도 우리 민족은 ‘정(情)’이라는 독특한 감성이 있어서 덜하지만, 온 세계가 팬데믹(pandemic) 상황에서 이런 개인주의가 판을 칩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세상이 어두워지면 작은 불빛도 밝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가르치시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세상을 아름답고 살맛 나게 하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종말의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나타냄으로써 우리의 행복을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게 하십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이사야서는 전체가 6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언자의 글에 있어서 첫 번째 자리에 위치합니다. 구약성경의 이사야 이하에서 다니엘서를 제외한 모든 책을 예언서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60여 년을 사역한 선지자 이사야이며, 이사야서 66장의 일관된 신학적 주제는 ‘하나님의 의(義)’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고 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일)이며, 세계와 모든 민족, 자연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끝을 맺는 이사야 66장은, 구약과 신약성경 66권의 축소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를 ‘작은 성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본문을 포함하는 53장은 52:13절부터 시작되는 고난 받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글입니다. 본문 5-6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서가 기록된 시기를 기원전 700여 년으로 추정하는데, 메시아가 오시기 700여 년 전에 이미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당할 고난과 그 고난의 이유, 고난을 통하여 이루실 일에 대하여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이 모든 구원계획이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임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은 메시아 즉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중요하고 복이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하고 복이 되는 이름이지만,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에게는 인정하지 못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의 성경(유대인에게는 신약성경이 없음)에는 이사야 53장을 숨겨버렸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구원의 이름을 숨긴 유대인들이 안타까운 마음일 뿐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이름은 예수입니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주거나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지금 시대의 단체들이나 젊은이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엄청난 재정을 투자하거나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며칠 전에 시청 광장에 장터가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수십 개의 작은 부스들이 설치되어 있고, 각 부스에는 전국의 청년 마을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공주 청년 마을’이라고 된 부스에 있는 청년에게 ‘이 행사가 어떤 의미냐?’고 물었는데, ‘전국의 청년 마을들 홍보와 청년들이 만든 작음 제품들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청 직원은 정부 행안부에서 ‘청년들 창업과 사기 진작을 위한 행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시대는 자신을 알리는 것에 많은 노력을 투자하며, 그만큼 자신을 알아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자기를 예쁘다고 하거나 알아주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호세아 6: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앞쪽의 3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에베소서 4:13절에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것이나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며,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영국 여왕이 별장을 나와 부근을 산책하다가 졸지에 비를 만났습니다. 가까운 오두막집으로 가서 ‘우산을 좀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여왕인 줄 모르고 살이 부러진 헌 우산을 내주었습니다. 그 후 여왕의 시관이 그 집을 찾아와서 여왕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금일봉과 헌 우산을 돌려주었습니다. 오두막집 주인은 너무나 황공해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이런 상황입니다. 4절에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하였노라.”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죽은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옛말에 “등 시린 절 받기 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자기가 푸대접한 사람에게 후한 대접을 받는 것이 계면쩍다.’라는 뜻입니다. 아마 오두막집 주인이 우산을 빌리는 분이 자기 나라의 여왕임을 알았다면 그렇게 대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조차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받고 살지만, 주님을 푸대접하기는 유대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푸대접과 멸시와 버림에도 불구하고 독생자 예수님을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요한일서 4:10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내 생명과 내 유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모른척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면 형통하고 행복이 있고, 평안과 기쁨이 있다.’라고 하시며, ‘함께 가자.’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내 마음 문밖에 서서 ‘문 좀 열어 달라.’고 두드리시지만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감수해야 할 손해와 희생이 너무 크다고 못 들은 척 외면하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든 일은 잘되고 복 받기를 원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복된 이름이 되기 원한다면 꼭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출신과 겉모습과 나약한 죽음을 보면서 외면하고 버릴것 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따르던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자신들의 꿈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이상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중에 두 제자의 기록이 누가복음 24:13-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꿈을 잃은 두 제자가 실망감에 싸여 고향인 엠마오로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동행하셨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생각에 빠지게 되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근심에 가득한 그들에게 “너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말씀을 깨닫지 못했으며,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유대인들처럼 자신의 유익에만 급급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결과로 예수님을 귀하게 여길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니 실망과 좌절이 찾아왔으며 낙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도 외적인 욕구충족을 위하여 예수님을 찾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출세하고 싶어서, 예수 믿으면 잘 된다고 해서, 건강을 얻고 싶어서 등등.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고 예수님을 찾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으면 결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으며, 자신의 목적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20-22절입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따르는 목적이 잘 못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돈을 버는 일보다도 더 많이, 자녀들을 키우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출세하고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원하는 것보다도 더 먼저, 예수님을 깊이 알기를 힘쓰십시오. 예수님을 알게 되면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세상에는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길이시며, 우리가 따를 진리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한 생명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보배를 질그릇에 담고 있음’(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육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면 당연히 귀하게 여기게 되며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삶에 행복이 되기를 원하고 복이 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을 깊이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십시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며, 나의 생명이시며, 내 삶이시며, 나의 전부이십니다.’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그리고 생활에서 예수님을 실제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든 일을 의논하고 도움을 구하고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밝게 빛이 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 영원하신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 보혜사 성령님을 깊이 알고 순종하셔서 여러분의 생애가 행복하고 빛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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