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기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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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組織神學) 기독론
서론(緖論) : 기독론의 인식 방법
1. 로고스( Logos )기독론
①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완전한 사람이자 완전한 하나님으로 경험했다(롬 1:3,4, 요일 4:2, 빌 2:6-8, 요 1:1 등). 교회는 그리스도 안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Logos 란 말을 사용하여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로고스 기독론이라 한다.
② 로고스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先在, preexistence) ⇒ 인간이 되심(성육신) ⇒ 고난과 죽음 ⇒ 부활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곧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선재 하셨다”는 것을 전제하고 기독론을 전개한다. 이와 같은 기독론을 ‘위로부터의 기독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이 방법이 정통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현대 신학자 중 칼.바르트나 에밀.부루너 등도 이 기독론을 따르고 있다.
2. 성령 기독론
① 인간의 인식 순서를 그대로 반영한 기독론이며, 로고스 기독론에 반대하여 나타난 것이다.
②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다. 그러나 다른 인간과 다른 것은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즉 성령의 임재 안에서 사신 분이다(단 1%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를 하나님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③ 예수는 성령의 사람이며, 神이 인간을 입으신 분이다. 그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장차 오실 그 분, 곧 이스라엘이 대망 하던 ‘메시야’시다.
④ 성령 기독론은 부활 ⇒ 죽음 ⇒ 예수의 생애 ⇒ 성육신 ⇒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처음부터 예수를 하나님으로 보지는 않았다. 예수의 부활을 통하여 그의 죽음이 인간적 보통 죽음이 아니라 대속적(代贖的) 죽음이었음을 인식했다. 마찬가지로 그의 삶도 신적인 삶이었으며, 그는 하나님이 사람을 입으심을 인식했다. 결국 예수는 하나님이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1장 그리스도의 인격
1. 그리스도의 명칭
성경에는 그리스도에게 붙여진 이름들이 많이 있다. 그 이름들은 그리스도의 존재, 성품, 상태, 직책 등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들 이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 인자(人子), 하나님의 아들, 주(主) 이 다섯 가지의 그리스도의 명칭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예수(Jesus, Ιησους)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 ????וּ????וֹה???? )’ 로서 ‘구원’ 이라는 의미이며, ‘구세주’를 말한다. 이는 사적(私的)인 이름이다. 예수 명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이름이다. 예수의 이름이 뜻하는 말 자체가 여호수아 즉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이며 신약성경은 예수의 이름을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밝힌다(마 1:21, 출 17:9). 천사에 의하여 주어진 구속사적인 이름이며(마 1:21, 눅 1:31), 그의 인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이름이다. 둘째, 천하에 주어진 유일한 구원이 이름이 분명하다(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는 또한 독생자로서의 유일한 구원자이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독생자란 헬라어의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οῡς)인데 이는 유일한 종류라는 뜻으로 유일한 형태, 독특한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독생자로서의 예수란 성육(成肉)하신 말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인간으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 이는 오직 예수에게만 적용하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독특한 명칭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대속 사역에 의한 이름이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셋째, 참 인간의 이름으로서의 예수이다. 이에 대한 의미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예수이다(마 1:16). 그리고 무죄한 참 인간의 예수님을 증언한다(요일3:5).
헬라어의 예수란 명칭은 히브리어의 여호수아(Joshua, 출 17:9; 수 1:1; 슥 3:1)즉 ‘여호와는 구원하시다(Jehovah saves).’혹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Jehovah is salvation; Savior).’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또는 구원하신다는 뜻이 예수아(Jeshua; 스 2: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아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에서 인출되었다. 이 말은 구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라는 명칭은 그리스도의 인성(humanity)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명칭은 그의 인성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예수라는 명칭은 그리스도의 역사성(Christ's historicity)을 나타낸다. 예수라는 명칭은 역사적 예수를 나타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한다면 성육신(成肉身)하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예수의 지상생애와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라는 명칭이 주후 2세기 이후로 다른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용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우리 주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만 전적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이다. 진실로 우리의 구주와 주님의 예수님뿐이시다. 그의 개인적인 이름인 예수와 직위적인 이름인 그리스도의 결합형이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 예수의 강조를 둔다고 보아야 하고, 그리스도 예수란 그리스도에 강조점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란 한때 비하(卑下)의 인간 예수께서 이제 승귀(昇貴) 된 그리스도임을 강조하고, 그리스도 예수란 높으신 그리스도께서 낮은 인간이 되심을 강조한다. 막 1: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이 지상에서 사용되었으며,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은 존귀하신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이 되심을 묘사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완전한 칭호로서 성경에 나타나 있다(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2) 그리스도(Christ, Χριστος)
그리스도(Christ, Χριστος)는 ‘기름 부음을 받았다.’ 는 뜻이다. 이는 공적(公的)인 명칭이다. 그리스도란 이름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먼저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름 부음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1) 기름 부음의 의미
①그리스도는 선지자로 임명을 받은 것이다(막 9:7; 눅 13:33; 요 1:21; 요 6:14).
예수님의 직위는 영원 전부터 시작되었으나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역사적으로 임명되는 것이다. 행 3:22-23,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마 21:10-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②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은 것이다(요 17:1)
히 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③그리스도는 왕으로 임명을 받은 것이다(마: 2; 21:5; 26:11).
눅 1:31-33,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 27: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요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롬 9: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2)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해서
그리스도란 이름의 명칭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구약의 ‘메시아’란 명칭에 대한 신약적 형태이다. 구약에 보면 선지자(왕상 19:6, 제사장(출 29:7, 왕(삼상 10:1)은 성령의 상징인 기름 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그들 각자의 직무를 위해 구별 되었고 그것을 위해 자격을 얻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 제사장, 왕의 세 가지 직무를 위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 되었을 때와 받았을 때 이루어졌던 것이다(마 3:16, 막 1:10, 눅 3:22, 요 1:32,3:34).
3) 인자(人子;Son df Man, υὶος του ᾀνθρωπον)
사람의 아들(人子, Son of Man, υὶος του ᾀνθρωπον) 즉 ‘인자’는 예수님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표현할 때 즐겨 쓰신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다. 이 명칭은 구약 다니엘서 7:13에 근거한 이름이다. 물론 이 명칭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나타내주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초인간적인 특성과 그가 위엄과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장차 다시 오실 것(재림)을 명확하게 암시해 주고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마 17:27~28, 26:64 눅 21:27, 요 3:13, 14:6).
4)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υὶε του Θὲου)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υὶε του Θὲου) 이 이름은 직임적 ‘메시야’의 의미로 사용한다. 또한 삼위적, 탄생적 의미로도 사용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 되고 있다.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출 4:22, 호 11:1)과 다윗의 집에 약속 된 왕(삼하 7:14, 시 89:27)과 천사들(욥 1:6, 38:7, 시 29:1) 그리고 대체로 경건한 사람들(창 6:2, 시 73:15, 잠 14:26)에 적용 되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에게 이 이름이 독점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 2위이시며 자신이 하나님이시고(마 11:27, 26:63), 둘째,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후사와 대표자이시며(마 24:36, 막 13:32), 셋째, 그의 탄생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눅 1:35).
5) 주(主); Lord, Κυριος)
주(主, Lord, Κυριος), 이 이름은 법적(法的)인 명칭이다. ‘여호와’와 동일한 명칭이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우리가 선생님이란 말을 존칭어로 사용하듯 이 명칭(주님)을 예수님에게 적용했다. 그러나 특별히 이 명칭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그에게 붙여진 이름으로 그가 교회의 소유주요, 통치자이시고(롬 1:7, 엡 1:17)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심을 나타내주고 있다(고전 7:34, 빌 4:4-5).
2. 그리스도의 본성(本性)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인성(人性)과 신성(神性) 이라는 두 가지 성품을 가지셨다고 말씀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내신 위대한 신비이다(딤전 2:16).
Ⅰ)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
(1)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성경은 이를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하나님(롬 9:14; 빌 2:6; 딛 2:13)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신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계 19:16)로서 전능하시며(마 28:18) 전지하시고(요 1:48) 무소부재하신(마 18:20) 신적 속성을 지녔으며, 창조(요 1:3)와 보조(골 1:17), 죄의 용서(눅 7:48)와 심판(요 5:27)의 신적 사역 및 성령을 보내시고(요 15:26)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요 5:25) 완전한 신이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아래와 같이 증명된다.
①구약의 예언
구약은 오실 메시야를 ‘전능하신 하나님’(사9:6), ‘여호와의 해’(렘23:5,6), ‘하늘로부터 오신 인자’(단7:13), ‘언약의 사자’(말3:1,2) 등으로 표기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②신약의 증거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신약의 증거는 풍부하다. 이것은 신약 전체를 관통하는 사상이다.
(마 11:27, 16:16, 26:63, 64, 요 1:1, 18, 25~27, 11:41~44, 20:28, 롬 9:5, 고전 2:8, 고후 5:10, 빌 2:6, 골 2:9, 히 1:1~3, 계 19:16)등이 중요 구절이다.
예수님의 자의식 :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마 11:27; 요 17:1), 그를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여기셨다(요 5:18,21;12:44,45).
신약의 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 : 신약 가운데는 마태(마 1:23;3;17), 누가(눅 1:31,32,35), 사도 요한(요 1:1), 세례 요한(요 1:34), 베드로(마 16:16), 도마(요 20:28) 그리고 바울(롬 1:4; 행 9:19,20; 골 1:15;2:9)이 예수의 신성을 증언했다.
예수의 선재(先在) :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신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요 1:1;17:5,24; 골 1:15,17; 미 5:2)
(2) 그리스도의 인성(人性)
예수의 인성(人性)은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주장 하고 있는 예수의 유일한 인성은 그의 완전한 인간성의 표현인 것이다. 예수의 인성에 관한 증거는 많이 있다. 예수께서 자신을 사람이라고(요 8:40) 말씀 하셨고 다른 사람에 의해 그렇게 불려졌다(행 2:22, 롬 5:15, 고전 15:21).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본질적 요소인 육체와 영혼을 소유 하였다(마 26:26, 38, 눅 24:39, 히 2:14).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인간의 정상의 성장 과정(눅 2:40, 52)을 따르셨고, 인간적 욕망과 고통에도 영향을 받으셨다(마 4:2, 8:24, 눅 22:44, 요 4:6, 11:35, 12:27, 히 2:10, 18, 5:7, 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 인간이지시만 죄가 없으시다. 다시 말하자면 죄를 짓지 않으셨으며, 죄를 지을 수 도 없다(요 8:46, 고후 5:21, 히 4:15, 9:14, 벧전 2:22, 요일 3: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이 되셔야 했던 것은 필연적인 것이 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아 죽기 위해서는 인간이 되셔야 했고 또 인간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죄 없으신 인간이 되셔야 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가치의 희생을 제공하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인간을 건질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되셔야만 했던 것이다(시 40:7~10, 130:3).
※ 그리스도의 인성 내용을 다시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1. 완전한 인성에 대한 증거
①구약의 증언 : 구약은 예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며(창 3;15), 아브라함의 씨로 오며(창 22:15-18), 다윗의 혈통을 이어 받으며(삼하 7:12,13), 아기로 탄생할 것이라 고 예언하였다(사 7:14, 9:6).
②예수는 스스로 인간이라는 의식을 가지셨다(요 8:39, 40).
③신약의 저자들(마 1:1~17, 눅 3:23~38)과 바울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진술했다(롬 5:15, 고전 15:21, 딤전 2:5).
④예수께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육체(요 1:14, 딤전 3:16, 요일 4:2, 3)와 영혼을 가지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마 27:50, 눅 23:46).
⑤예수는 보통 인간과 동일한 성장 과정을 거치셨다(눅 2:40, 52, 히 5:8).
⑥예수는 인간이 가지는 배고픔(마 4:2)과 피곤함(마 8:24)과 희노애락의 감정(막 3:5, 요 11:35, 눅22:44)을 가지셨다.
⑦ 예수는 인간적인 제약을 받으셨다(마 24:36, 눅 7:9).
2. 무죄한 인성에 대한 증명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었으나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죄성(罪性)은 가지지 않으셨다. 이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①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를 통하여 출생하였으므로 인간의 유전적 부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눅 1:35).
②죄의식이 없었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죄로 인하여 책잡히지 않았다(요 8:46). 다른 사람에게는 죄 사함과 중생이 필요함을 강조했으나(눅 23:34, 요 3:3, 5)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으셨다.
③ 무죄함이 직접 언급되어 있다(고후 5:21, 히 4:15, 벧전 2:22, 요일 3:5).
3. 그리스도의 이성(二性)의 필요성
그리스도는 죄인을 대표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인간이어야 했으며, 구속자가 되기 위하여는 반드시 하나님이어야 한다.
4. 그리스도의 단일성
참 신성과 참 인성을 동시에 지닌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며 하나님이었으나 통일된 인격을 가지셨다. 이와 같이 성경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무죄한 인간임을 밝히고 있다.
(3) 그리스도의 인격의 동일성
교회는 칼케돈 회의(The Council of Chalcedon) 때부터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하여 주장 해왔으며, 동시에 이 두 본성이 하나의 인격 속에 현존하고 있음을 확인해 왔다.
한 인격 속에 결합된 두 성품에 대한 교리는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가지셨지만 인간의 인격은 아니시다. 중보자의 인격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하나의 인간 인격으로 변한 것도 아니요, 또한 하나의 인간 인격을 취하신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신성에 덧붙여 인성을 취하셨는데 그 인성은 다만 독립적 인격으로 발전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 속에서 인격적이 된 인성인 것이다. 이러한 인성을 취하신 후 중보자의 인격은 신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적이었다. 그는 인성과 신성의 모든 본질을 소유하시는 신인(神人)이시다. 그는 신적 의지와 인적 의지를 소유 하셨듯이 신적 의식과 인적 의식을 소유하고 계신다. 이 진리는 인간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는 신비적인 것이다.
이 교리에 대한 것은 성경적 증거 : 성경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단일성을 지적해 준다. 말하는 의식이 인적이든 신적이든 관계없이 말하는 분은 언제나 동일한 인격이시다(요 10:30, 17:5, 비교 마 27:46, 요 19:28). 인간의 속성과 행동은 가끔 신적 칭호로 표현된 인격으로 묘사 되고(행 20:28, 고전 2:8, 골 1:13, 14), 신적 속성과 행동도 가끔 인간적 칭호로 표현된 인격으로 묘사 된다(요 3:13, 6:62, 롬 9:5).
한 인격 속에 두 성품이 결합 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러 특성 및 속성의 교통은 화육(化育) 이후 신적 특성이 인적 특성으로 변화 되어 인격 속에 귀속 된다. 이것은 전지전능(全知全能), 편재(遍在) 등이다. 둘째, 행동의 교통은 행동의 교통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눌 수 없는 인격적 주체의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은혜의 교통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현존하는 순간부터 모든 종류의 부와 영광스러운 은사로 화려하게 장식되고 신성과 연합하여 은혜의 교통을 가지게 된다.
이 교리에 대한 오류
이 교리에 대한 오류에 대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성의 실재성 부정이다. 초대 교회 당시 에비온파와 엘카이(Elkai)파가 그리스도의신성의 실재성을 부정하였다. 종교 개혁 시대 소키누스파와 현대의 유니테어리언파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에 동조한다.
둘째, 인성의 실재성 부정이다. 제 2세기의 그노시스파(Gnosticism)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 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도를 순화 된 하늘 혹은 하늘의 육체로 보고 신적 예수와 인적 예수를 구별하기도 하였다.
셋째, 인성과 신성 모두 다 완전히 부정한다. 아리우스파(Ariana)는 그리스도를 하나의 창조된 존재로 보았으며, 또한 신도 인자도 아닌 반신(半身)으로 간주했다. 아폴리나리스(Appolinaris)는 인간은 육체, 영혼, 정신의 세 부분으로 형성 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신적 로고스는 육체를 대신하여 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일성을 부정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Nestoribns)는 명백히 그리스도에게 두 본성이 통일되어 있음을 부정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도덕적으로 행동의 목적에 일치하도록 참으로 두 인격을 별개로 갈라놓음으로서 날카롭게 그의 본성을 양분해 놓았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양성(兩性)을 부정하였다. 유티커스(Eutichian)파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인간적인 것도 아니며 신적인 것도 아닌 어떤 제 3의 성질에 융합된 것으로 말하므로써 극단적 대립적 이론을 내세웠다.
3. 그리스도의 신분
이 교리는 17세기에 발달 하였다. 우리는 ‘신분’과 ‘상태’라는 말을 상호 교차하여 사용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분에 관해 말을 할 때, 우리는 율법과 율법 앞에 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특수한 의미로 ‘신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스도께서 낮아졌을 때는 율법 아래 있는 종이었으나 높아졌을 때는 율법을 초월하신 주님이시다. 자연히 이 두 가지 신분은 생명의 상태와 조화를 이루면서 동반하게 되며 이들은 몇 가지 단체로 논의 된다.
Ⅰ) 낮아지신 신분(그리스도의 비하(卑下) 신분)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의미는 빌립보서 2:7~8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비우심’과 ‘낮아지심’에 대한 말씀은 왕의 보좌를 사양하시고, 스스로 노예의 신분으로 하야(下野) 하셨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밑바닥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리까지 내려가 주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말구유에서 부터 십자가와 무덤에 까지 내려가심으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구원할 자격자가 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으신 것은 자신을 낮추셔서 죄 많고 무상한 세상으로 뛰어드신 것이다. 이러한 결단은 성부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구원하시려는 뜻에 순응하신 것이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세상을 더럽다고 피하지 않으셨고 죄인들이 보기 싫다고 산속으로 들어가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 물속으로 뛰어드신 분이시다.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 세상으로 내려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늘로 올라가시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한다.
낮아지신 신분은 그리스도께서 우주의 주관적인 통치자로서 자신의 것이었던 신적 위엄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로 인성을 취하셨으며, 최고의 율법 수여자이신 그가 율법의 요구와 율법의 저주 아래 굴복하게 되셨다는데 있다(마 3:15, 갈 3:13, 4:4, 빌 2:6~8).
그리스도의 비하(卑下) 신분은 그에 상응하는 상태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하나님의 아들은 인성을 취하심으로 육신이 되셨다(요1:14, 요일1:2).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마리아에게 나심으로 인류중의 한 사람이 되셨다. 재세례파(再洗禮派)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로 부터 마리아의 몸을 통과하여 세상에 왔으나 우리 몸과 똑 같지 않은, 유사한 몸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그가 제세례파의 주장과 같이 하늘에서부터 그의 인간성을 부여 받으셨다면 성육신은 참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와 똑 같지 않은 몸으로는 우리와 일치할 수 없고,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와 똑같으나 죄는 없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진리이다(요 1:14). 성경은 동정녀 탄생을 가르쳐 준다(사:714, 마1:20, 눅1:34~35). 이 이상한 출생은 시조로부터 죄의 오염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보호해 준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눅1:35)에 의한 것이었다.
※ 성령수태와 처녀탄생의 의미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으로 수태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신앙고백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화 된 교리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한 신자들이 많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 홀로 영으로 오신 것이 아니다. 성령과 하나가 되어서 성령 안에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마리아의 태중에 사람으로 임하신 것이다. 이 때에 성부께서도 성령 안에서 함께 해산의 수고를 하셨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성령수태와, 처녀탄생 사건은 삼위 하나님의 사건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인간 예수의 평범한 출생으로 이해하고 믿는 것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그 의미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길밖에 없었다고 본다.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처녀 몸에 수태하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구원의 다리를 놓으신 은혜로운 작업이요,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최선의 수단이었다.
십자가 사건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건으로 이해되는 근거는 바로 성령수태사건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건이라는 데 있다. 성령이 성자와 하나가 되시어 수태하였고, 성령이 성자와 함께 일하였다. 성부는 성령 안에서 성자와 함께 늘 계심으로 인류구원의 효험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한 선지자 예수의 출생과 고난과 순교로 끝나고 만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수태는 성자의 인간적인 아버지를 배제하고 ‘죄의 유전’으로부터 피하도록 하였고, 성령의 성결케 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의 오염으로부터 보호를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으셨지만, 원죄와 죄가 없다는 것은 바로 성령수태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가 남편 없이 성자를 수태할 수 있도록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시기에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실 유일한 분이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고난(Suffering)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수난의 생애였다. 그의 생활은 만주의 주가 종이 되신 생활 이었으며, 죄로 저주 받은 세상에서 무죄한 자의 생활이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고난은 끊임없는 사탄의 공격, 자기 백성의 증오와 불신, 원수들의 박해, 그의 고독감과 책임감 등 신체와 영혼을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고난이었다. 그는 실로 슬픔이 사람이었으며 우리의 질고(疾苦)를 아는 분이셨다(사 53:4).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의 원인이 그 자신 때문에가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인함이라고 성경은 밝혀준다(사 53:5).
(3) 그리스도의 죽음
예수 그리스도는 법정의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써 육체적으로 죽으셨다. 그의 죽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만민의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죽음(요 1:29), 극한 고통과 부끄러움이 수반되는 죽음(히 12:20), 우리를 위해 율법의 저주를 기꺼이 받으신 죽음(갈 3:13)이었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데 특별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그의 죽음이 반드시 피 흘리는 죽음(히 9:22), 뼈의 꺾음이 없는 죽음(요 19:36), 그리고 매장이 뒤따르는 죽음(사 53:9)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성경의 예언 성취).
(4) 그리스도의 장사
그리스도의 죽음이 마치 그의 고난의 최후의 단계이었던 것처럼 생각될 것이다. 그는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외쳤다. 그러나 이 말은 아마도 능동적 고난을 말해 주는 것일 것이다. 그의 장례(葬禮)는 하나님의 아들 된 자로서 인식했던바 낮아지심의 형태인 것이다. 인간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의 형벌 가운데 일부이다(창 3:19). 구주(救主)가 무덤에 머무르신 것은 그의 비하의 최종단계였다(시16:10, 행2:37, 31, 13:34-35). 죄인(강도)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은 옛 사람을 떠남과 버림 또는 그 파멸을 의미한다(롬6:1-6). 그리스도의 장사지냄은 구속받은 자를 위하여 무덤의 공포를 제거케 하신 사건이었다(히2:14-16).
(5) 지옥에 내려가심
사도신경에 있는 “그가 음부에 내려가시고” 란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사도신경의 한국어 번역에는 빠짐.) 첫째, 로마교회는 장사 된 그리스도가 선조 연옥(Limbus Partrum)에 내려가서 구약의 성도들을 구속하셨다고 주장한다. 둘째, 루터파는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그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흑암권세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셨다고 주장한다(엡4:9, 벧전3:18, 19, 4:4~6 시16:8~10) 그러나 대부분의 개혁파 학자들은 지옥강하를 ①겟세마네와 십자가상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거나 ②장사된 3일 간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묘사된 것으로 해석한다.
2) 높아지신 신분<그리스도의 승귀(昇貴) 신분>
그리스도의 높아지신 신분(The States of Exaltation)은 중보자의 인격의 높임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세상에 오셔서 모든 고난을 감당하시고 음부에 까지 낮아지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덤 속에 계시던 그리스도를 다시 일으키셔서 하늘의 존귀한 자리에 앉히셨다.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과 재림에 관한 신앙의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의 승귀(昇貴)에 속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自己卑下)과 높아지심(昇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적절한 표현을 하고 있다. 즉 ‘하늘보좌를 비우시고 종의 모양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셨다.’고 증언한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부활, 승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심, 재림 등 네 단계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율법 아래에 있는 저주로 부터 자유로워지셨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 대해서 승리하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만민들을 완전히 구원하셨다. 이러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당하신 모든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보상하사 존귀와 영광으로 면류관을 씌워 주신 것이다. 세상 만민들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의로우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승귀(昇貴)에 대한 부활, 승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심, 재림등 네 단계 대해서 알아보자.
(1) 부활(復活)
그리스도의 부활은 육체와 영혼의 단순한 재결합으로 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인간성, 즉 육체와 영혼이 그 본래의 아름다움과 강함을 회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이름으로 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은 나사로나,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같지 아니하다. 그리스도는 그 몸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그 몸이 실제로 죽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살리는 영이시다(고전 15:45). 그 영과 함께 몸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그 몸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몸과는 다른 신령한 몸이다. 썩을 것을 심어 썩지 아니 할 것을 이루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이전에 부활한 자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인 육체를 가지시고 부활 하셨다(고전15:44, 45). 이와 같은 이유를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의 첫 열매(고전15:20)와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자(골1:18, 계1:5)라고 불려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모든 요구에 응하셨다는데 대한 하나님의 선포이었다(빌2:9). 둘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칭의와 중생과 최종 부활을 상징하신 것이다(롬6:4, 5, 9, 고전6:14, 15:20~22).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와 중생과 최종 부활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롬4:25, 5:10, 엡1:20, 빌3:10, 벧전1:3).
(2) 승천(昇天)
승천은 어떤 의미에서 부활의 필연적 완성이었으나 승천도 독자적 의미를 가졌다고 본다. 우리는 눅 24:50~53, 행 1:6~11에서 이에 대한 이중적 설명을 찾아 볼 수 있다. 바울은 엡 1:20, 4:8~10, 딤전 3:16,에서 승천에 대해 말씀 하였고, 히브리서에서도 이에 대해 강조하였다(히1:3, 4:14, 6:20, 9:24). 승천은 지상에서 하늘로,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따른 중보자의 유형적인 상승이라고 묘사 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현저한 영화를 내포하는 것이다. 루터파에서는 승천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갖는다. 그들은 승천을 하나의 조건의 변화라고 보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인성이 어떤 신적 속성의 완전한 기쁨에 들어가시어서 영구히 편재하시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 그의 희생을 성부께 나타내기 위하여 성소에 들어가서 보좌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하신다(롬 8:34, 히 4:14, 6:20, 9:24). 그는 우리의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하여 승천 하신 것이다(요 14:1~3). 우리는 이미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 처소에 거하게 되었고 그의 승천하심으로 우리도 하늘에 있는 처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엡 2:6, 요 17:24).
(3) 하나님 우편에 계심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게 되었다(엡 1:20, 히 10:12, 벧전 3:22). 자연히 ‘하나님의 우편’이란 표현은 문자적으로 표현할 수 없으나 권능과 영광의 처소를 말하는 상징적 지시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는 동안에 그의 교회를 다스리시며, 보호하시며, 우주를 통치 하시며, 그의 완전한 희생에 근거해서 그의 백성을 위해 중재의 역할을 하신다. 즉 다시 말하자면 하늘로 승천하였을 때, 그는 아버지에 의해 환영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이것은 행2.33~36, 5:31, 엡 1:20~22, 히10:12, 벧전3:22, 계3:21, 22:1에 기록되어 있다. 이 좌정은 마26:64에서 이미 예수님 자신에 의해 예언되었다. 비록 “하나님의 우편”이라는 표현이 의인적이지만, 그것은 그의 지극한 영화와 하나님의 통치권 부여를 의미한다. 부활 후 그에게 주어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드디어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위치를 찾은 것이다(엡 1:20~23).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리스도의 좌정은 편히 쉬는 삶이 아니라, 그의 나라가 완성되어 아버지에게 바칠 때까지 그의 성령과 그 자신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왕 직과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의 삼중 직을 계속 수행하면서 다스리는 분주한 삶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세상으로의 재림과 최후적 복속이 그리스도 승귀의 정점이 될 것이다.
(4) 육체적 재림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러 오실 때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최절정에 달하게 된다. 분명히 그의 재림은 육체적이고 유형적인 것이 될 것이다(행 1:11, 계 1:7). 그리스도께서 심판하러 오실 것이라는 사실은 성경 여러 군데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요 5:22, 27, 행 10:42, 롬 2:16, 고후 5:10, 딤후 4:1).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심판하러 오실 목적과 자기 백성의 구원을 완성하실 목적으로 오실 것이다. 재림은 그의 구속 사역의 완전한 승리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고전 4:5, 빌 3:20, 골 3:4, 살전 4:13~17, 살후 1:7~10, 2:2`12, 딛 2:13, 계 1:7).
제 2 장 그리스도의 사역
1. 그리스도의 직무
성경은 그리스도에게 세 가지 직무 곧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무가 있다고 가르쳐 준다. 이를 일명 '중보(仲保)의 삼직'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만왕의 왕, 대선지자, 대제사장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고 계신다.
1) 선지자 직
선지자란 어떤 의미인가? 신약에서 선지자를 '프로페테스'라고 칭하였다. 이것은 '프로(before-前)'와 '페미(discourse-言)'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란, 하나님을 배경으로 하고 그 앞에서 열렬히 그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사람이다(벧후1:21, 암3:8).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탁월하신 하나님의 선지자이시다(행3:22~23, 요14:24). 그리스도는 그의 선지자 직분을 언어의 전달과 계시의 사실들을 가르치심으로써 수행하셨다. 이적, 성육신, 속죄, 부활, 승천 등은 모두 그리스도의 사실적인 교훈이었으며,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의 천사로(간접적으로), 성육신하신 이후에는 그의 교훈들과 모범으로(직접적으로) 그 직분을 수행하셨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신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계시는 동안에도 우리의 최대의 선지자로 활동하고 계신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은 구약성경 신 18:15은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로 오실 것을 예언 했다(비교;행 3:23). 그리스도는 눅 13:33에서 자신을 선지자라고 말씀하셨고, 아버지로부터 메시지를 가져오셨다고 말씀하셨다(요 8:26~28, 12:49,50, 14:10,24). 그리고 장래 일을 예고하셨으며(마 24:3~35, 눅 19:41~44), 독특한 권위로 말씀하셨다(마 7:29). 그러므로 백성들이 그를 선지자로 인정했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마 21:11, 46, 눅 7:16, 24:19; 요 6:14, 7:40, 9:17). 선지자는 꿈이나 환상(幻想) 또는 언어 전달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선지자적 활동을 하는 가운데 이 계시를 구술적으로나, 가시적으로 백성에게 전달해 주었다(출 7:1, 신 18:18; 민 12:6~8, 사 6장, 렘 1:4~10장, 겔 3:1~4,17). 그의 일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그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백성들을 위해 율법을 도덕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시대에 이미 선지자로 일하셨다(벧전 1:11, 3:18~20).
그는 지상에 계시는 동안 선지자의 일을 행하셨고, 승천하신 후에는 성도들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로 그 사명을 계속하셨다(요14:26, 16:12-14, 행1:1). 지금도 그의 선지자적 사명은 말씀의 역사와 신자들의 영적인 조명을 통하여 계속된다. 이 사명은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도 유일하게 인정해 주는 그리스도의 직능인 것이다.
2) 제사장 직(祭司長職)
제사장이란 의미는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의 대표자이다(히 5:1~2). 선지자들은 도덕적, 영적 의무와 책임 또는 특권을 강조했으나 제사장들은 의식의 준수를 강조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로 접근하라고 가르치는 직분이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에 대해서는 구약은 오실 구속주가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예시했다(시 110:4, 슥 6:13, 사 53:). 신약에서는 그를 제사장이라고 부른 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히브리서이다. 거기에는 여러 번 반복적으로 이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히 3:1, 4:14, 5:5, 6:20, 7:26, 8:1). 그러나 다른 저서들도 그의 제사장적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다(막 10:45, 요 1:29, 롬 3:24, 25, 고전 5:7, 요일 2:2, 벧전 2:24, 3:18). 예언자는 하나님을 백성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지만 제사장은 백성을 하나님 앞에 나타내는 일을 한다. 이 둘 다 선생이었으나 예언자는 도덕적인 것을 가르친데 반해 제사장은 예법(제사법)을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특권을 가졌으며,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특권을 가졌다. 우리는 히 5:1,3에서 제사장이 백성 중에서 그들의 대표로 뽑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백성의 유익을 위해 활동하며, 속죄를 위하여 제물과 희생을 드린다는 것과 또 백성을 위해 중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역과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에 대해서 알아 볼 수 있다.
(1)그리스도의 희생적 사역
구약의 유월절 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그 상징이었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요(요 1:29). 우리의 유월절 양인 것이다(고전 5:7). 그가 자신의 생명을 우리 죄인을 위하여 내어주셨기 때문이다(막 10:45, 벧전 2:24).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를 희생하심으로 참되고 완전한 구속을 성취하시는 우리의 진실하고 영원하며 완전하신 대제사장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와 같이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보다 사죄를 위한 희생을 드리는 것이라고 하겠다. 구약의 희생은 다가올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을 예시해 주는 형태였다(히 9:23, 24, 10:1, 13:11, 12).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요, "유월절 양"(고전 5:7)이라고 불려 진 것이다. 신약은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사역에 대해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막 10:45, 요 1:29, 롬 3:24, 25, 5:6~8, 고전 5:7, 15:3, 갈 1:4, 엡 5:2, 벧전 2:24, 3:18, 요일 2:2, 4:10, 계 5:12). 이는 특히 히브리서에 잘 나타나 있다(히 5:1~10, 7:1~28, 9:11~15, 24-28, 10:11~14, 19~22, 12:24, 13:12).
(2) 그리스도의 중보자 사역 (중재 또는 대언사역{代言事役})
그리스도의 대언사역(代言事役), 혹은 중재사역은 그의 속죄적 제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즉, 제사사역의 계속이요 완성에 지나지 않는다(롬 8:24, 히 7:25, 9:24), 요일 2:2에 그리스도를 '보혜사(파라클레토스; parakletos)'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말은 '돕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 '타인의 소송을 변호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신자의 변호인으로서 사단을 대항하여 성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시는 것이다(슥 3:1, 히 7:25, 요일 2:1, 계 12:10, 롬 8:34; 히 7:25, 9:24 요일 2:1)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말해준다.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은 그의 희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가끔 잘 못 생각되는 것처럼 중보적 기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희생을 드림으로 자기 백성을 위한 신령한 복을 요구하며, 사탄과 율법과 양심의 고소로부터 이런 신령한 복을 보호하며, 이들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용서해 줄 것을 확증하며,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들의 예배와 봉사를 하나님께 바친다. 이러한 중보적 역할은 성질상 국한된 것으로 선택받은 자에게만 관계되어 있다. 이미 믿었든지 아직 불신앙 속에 살든지 간에 선택받은 모든 자를 포함한다는 것이다(요 17:9, 20).
3) 왕직(王織)
왕직의 의미는 왕은 다스리며 통치하시는 자이시다. 그리스도는 선지자, 제사장으로서만 아니라 왕으로도 오셨다(마28:18, 빌2:9~11), 엡1:17~23).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에 함께 참여하신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중재인으로서 그리스도가 부여받으신 왕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왕권은 교회를 향한 영적 왕 권과 우주를 향한 왕권의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1) 그리스도의 영적 왕권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시2:6, 132:11, 사 9:6,7, 미 5:2, 슥 6:13, 눅 1:33, 19:38, 요 18:36, 37, 행 2:30~36). 그리스도의 왕권은 자기 백성을 향한 그의 통치인 것이다. 그것은 영적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그의 왕권이 영적 영역에 속한 것이며, 신자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며, 죄인을 구원하려는 영적 목적을 가지며, 영적 수단인 말씀과 성령에 의해 실시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교회의 모임과 교회를 통치하심과 교회를 보호하심과 교회를 완성하심에 이바지한다. 이 왕권은 신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늘나라"와 동일한 것을 뜻한다. 엄밀한 의미로 보면 무형(보이지 않는) 교회의 회원인 신자들만이 그 나라의 시민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란 말은 가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사는 모든 자 즉, 유형(보이는) 교회에 거하는 모든 자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 된다(마 13:24~30, 47~50). 한편 이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마음과 생활 속에 있는 현재적이고 영적인 실존(마 12:28, 눅 17:21, 골 1:13)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의 재림 때까지 실현되지 않을 미래적 소망인 것이다(마 7:21, 눅 22:29, 고전 15:50, 딤후 4:18, 벧후 1:11). 미래의 왕국은 본질상 하나님의 지배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확립되며, 인정되는 것으로서 현재의 것과 동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미래의 왕국이 유형적이며 완전하게 될 것이라는 면에서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왕권이 그의 재림으로 끝날 것이라는 견해를 주장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준다(시 45:6, 72:17, 89:36, 37, 사 9:6, 단 2:44, 삼하 7:13, 눅 1:33, 벧후 1:11).
2) 그리스도의 우주적 왕권
그리스도는 왕으로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천하의 만사 만물을 통치하시되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를 굴복시키며(히 10:12, 13, 고전 15:25),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며(요 5:22-27, 9:39), 교회의 완성을 목적하여 통치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그의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말씀하셨다. 고전 15:27과 엡 1:20~22에서도 이와 같은 진리를 가르쳐 준다. 우주적 왕권은 하나님의 아들 되신 그리스도의 원래의 왕권과는 그 미치는 영역이 동일하지만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왕권은 그의 교회를 위하여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께 맡겨진 우주를 다스리는 권한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자로서, 개인과 국민의 운명을 다스리시며, 세상의 생활을 지배하시며, 이 왕권을 그의 구속적 목적에 이바지하게 하시며, 그 왕권을 통하여 세상에서 일어나는 위험으로부터 그의 교회를 보호하신다. 이 왕권은 하나님 나라의 대적들을 물리칠 때까지 지속될 것이며, 그 목적이 성취되면 우주적 왕권은 성부에게로 반환될 것이다(고전 15:24~28).
2. 그리스도의 속죄
속죄란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와 죄를 용서받고 신령한 교통을 할 수 있는 방법, 곧 화해를 말한다.
1) 속죄의 동인과 필요성
(1) 속죄의 동인
속죄의 원인은 마치 그것이 죄인을 향한 그리스도의 동점에 있는 것 같이 자주 묘사 되는 때가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진노하시며 죄인의 멸망에 골똘하신 분이시지만 사랑의 그리스도께서는 그 중간에 서시어 죄인을 구원한다고 말하며, 그리스도는 모든 영광을 받으나, 성부께서는 그의 명에를 훼손당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속죄가 그 원인을 하나님의 참된 기쁨 속에 찾는다고 가르쳐 준다(사 53:10, 눅 2:14, 엡 1:6~9, 골 1:19, 20). 속죄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 즉 사랑은 죄인들에게 피할 길을 제공해 주었고, 공의는 율법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요 3:16, 롬 3:24, 26). 그러므로 진정한 속죄의 동기는 대신 속죄로써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이며(사 53:10, 눅 2:14, 엡 1:6~9), 속죄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기초하고 있다.
2) 속죄의 필연성
중세 유명론자(唯名論者)인 던스 스코터스(Duns Scotus, 1264-1308년)나 종교 개혁 시대의 소시너스(Socinus, 1539-1604년), 즉 이들은 하나님의 본성 가운데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한다는 공의의 속성이 있음을 부인하고, 속죄는 본래 필요치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에 따라 그렇게 결정 하신 것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속죄의 필연성을 부인한 것이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년)나 '릿츨'(Ritschl, 1822-1889년)등도 속죄의 법정적 개념을 무시하고 단순히 인간에게 도덕적 감화를 주어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도모하는데 그 의미를 국한시킴으로써 속죄의 필연성을 부인했다. 이와 같이 많은 학자들은 속죄의 필연성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은 어떤 만족을 얻음이 없이도 죄인을 용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께서 죄를 간과할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해 반응을 일으킨다고 가르친다(출 20:5, 23:7, 시 5:5, 6, 느 1:2, 롬 1:18, 32).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사형을 선고 하셨던 것이다(창 3:3, 롬 6:2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면 속죄(죄의 값을 치루는 일)없이는 결코 하실 수 없으셨다. 하나님의 공의, 거룩하심은 죄나 죄인을 그대로 보아 넘기실 수가 없으시다(출 20:5, 시 5:5, 롬 1:18).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죽음, 멸망의 형벌을 이미 선언하신 것이다(창 3:3, 롬 6:23).
2) 속죄의 성질
속죄는 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 포함된 제사의 의미(히 9:11,12),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유화(宥和)의 의미(롬 3:25; 요일 4:10),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허무는 화목의 의미(롬 5:10,고후 5:20),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택한 자를 죄 가운데서 건지시는 구속의 의미(엡 1:7; 골 1:14)를 포함하고 있다.
1) 속죄는 하나님께 만족을 드렸다.
속죄는 주로 죄인을 감화하여 그의 마음에 회개를 불러일으키므로 죄인을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공헌했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범죄자에게가 아니라 해를 당한 편이 보상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속죄의 제1차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죄인에게 화해시키는 것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대한 죄인의 화해는 제2차적인 목적으로 간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의 경우에 있어서 속죄란 하나님을 달래어 범한 죄를 회개함으로써 그의 선한 사랑을 다시 얻으려는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인과 화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롬 5:10).
2) 속죄는 대리적 속죄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인간의 대리자로 세워 사람을 대신해야 한다고 작정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리자로서 죄의 형벌을 짊어지시고 인간을 위해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 속죄를 대리적 속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범죄를 당한 편에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제시해 주고 있다(레 1:4, 4:20, 31, 35, 5:10. 16, 6:7, 7:11). 우리는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 위에 놓였으며(사 53:6), 그가 죄를 짊어 지셨고(요 1:29 히 9:28), 죄인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셨다(막 10:45, 갈 1:4, 벧전 3:18)는 것을 알 수 있다.
3) 속죄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피동적 순종을 내포한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그가 영생을 얻게 할 조건으로 죄인을 위하여 율법을 준수하신데 있다. 그리스도의 피동적 순종은 그가 죄의 형벌을 담당하시고, 그의 백성의 빚을 탕감함으로써 고난을 당하신 데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고난당하심에 있어서도 능동적이셨고, 율법을 복종하심에 있어서도 피동적이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형벌을 담당하셨고(사 53:8, 롬 4:25, 갈 3:13, 벧전 2:24), 죄인으로 하여금 영생을 얻도록 공을 세워 놓으셨던 것이다(롬 8:4, 10:4, 고후 5:21, 갈 4:4~7).
3) 속죄의 범위
성경은 가끔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위하여(요 1:29) 또는 모든 자를 위하여(딤전 2:6) 죽으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그가 세상 모든 민족(유대 민족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의 백성을 위하여, 또는 모든 종류와 모든 계급(특수 계급이 아니라 어떤 계급의 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을 강조)의 백성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선택받은 자만을 구원할 목적으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으며, 그 목적은 실제로 성취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가능케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생명을 버려 주신 모든 자 하나 하나를 실제로 구원하신다(눅 19:10).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생명을 버리셨다(마1:21)고 말한다. 즉, 그의 양 무리(요 10:11,15)와 교회(행 20:28) 곧 선택받은 자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셨다고 지적한다(롬 8:32-35).
※ 속죄론의 여러 유형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인류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가 한 일을 ‘속죄론’이라고 하며, 이것은 곧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라고도 한다.
1)배상설(Ranson theory, The Ranson-to Satan theory)
* 주장자 및 근거 : 이레니우스, 오리겐 및 많은 교부들, 어거스틴 등. 막 10:45, 딤전 2:6.
*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단에게 지불된 속전으로 해석함. 사람들은 범죄한 이후에 마귀의 소유가 되었다. 하나님이 인류를 마귀(죄)로부터 석방 시킬 때 일정한 대가(代價)를 지불해야 했다. 마귀는 그 대가로 예수의 생명을 요구했고, 그 결과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2)만족설(객관설, satisfaction theory)
* 켄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Anselmus)의 주장. 그의 책 Cur Deus Homo?(Why God Man?)에서
*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예가 크게 손상당했다. 이 손상의 회복을 위해 인간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대신 그의 아들을 벌주심으로 그의 영예가 회복되는 길을 택하셨다. 그래서 예수가 죽었다. 결국 예수의 십자가는 사람을 향하여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일어난 객관적 사건이므로 이를 ‘객관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도덕설(주관설)
* Peter Abelard의 주장.
* 안셀무스의 신은 너무 무정하고 냉혹한 신이라고 비난하면서 예수의 죽음은 신에게 만족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감화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 예수의 십자가는 신에게 만족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에게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감화시켜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4)형벌 만족설
* 루터,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의 주장.
* 안셀무스의 입장을 보완한 것이다. 안셀름은 예수의 죽음이 사람의 죄의 결과라는 점을 별로 중요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예 회복이란 점만 말했고, 아벨라드는 도덕적 감화만 주장했다. 그러나 성서는 예수의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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